퓰리처상을 10번이나 받은 지역신문 속 언론인의 자세

2014. 6. 16. 09:04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이미지 출처_ flickr by European Parliament 


미국에는 언론인들이 매년 받고 싶어 하는 상이 있습니다. 바로 퓰리처상인데요. 올해도 그 경쟁은 뜨거웠습니다. 모두 21개 분야가 있는 이 상에서 문학, 드라마, 음악 등 7개 분야를 제외한 14개 저널리즘 분야에만 총 1,132건이 제출됐으니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죠. 그래서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퓰리처상선정위원회는 늦게까지 신중을 거듭했답니다.


이번 퓰리처상에는 ‘공공서비스 부문’이 가장 많은 조명을 받았습니다. 미 국가안보국(NSA)이 동맹국, 적대국, 민간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도•감청을 했다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고발을 보도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미 워싱턴포스트가 이 부문에서 수상했죠. 국익보다는 언론자유를 선정위원회가 중시했다는 해석이 잇따랐습니다.

 

이미지 출처_ pulitzer 

 

스포트라이트는 스노든 관련 보도가 받았지만, 14개 수상 분야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다른 뛰어난 보도도 적지 않았답니다. 특히 지역보도(Local Reporting)부문에서 수상한 탬파베이타임스(Tampa Bay Times)의 선전이 눈에 띄는데요. 이 신문사는 1964년 도심 공공부문(현재는 폐지)에서 첫 수상을 한 이후 올해로 벌써 10번째 퓰리처상을 거머쥐었답니다. 탐사보도, 전국보도 등에서 고루 수상했으며 지역보도부문은 올해가 처음이죠.


지역 일간지로 뉴욕타임스, 워싱텅 포스트 등 유력 전국 일간지에 뒤지지 않는 저력을 보여 온 원동력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관전 포인트가 됩니다. 또 특집기사 부문에서 수상작이 나오지 않은 것을 놓고 미 언론계에서 말들이 많은데, 퓰리처상선정위원회가 내놓은 이유와 이를 둘러싼 논란을 살펴보는 것 또한 흥미롭답니다. 그 내용을 함께 살펴볼까요?

 

이미지 출처_ 위키백과

 

 


탬파베이 타임스의 전신은 1884년 창간한 세인트피터즈버그 타임스(St. Petersburg Times)로 2012년 1월에 현재의 제호로 바뀌었습니다. 이 신문은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 남부 플로리다 주 최대 지역일간지 가운데 하나랍니다. 지난해 발행 부수는 34만 부로 미국 전역에서도 25위권에 포진해 있죠. 이 신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을 봐야 하는데요. 미 대표적인 비영리 언론교육기관이자 연구소인 포인터인스티튜트가 탬파베이 타임스 등을 소유하고 있는 타임스퍼블리싱코퍼레이션의 대주주입니다.


1921년 세인트피터즈버그 타임스를 인수한 인디애나주의 신문출판인이었던 폴 포인터의 뒤를 이어 아들 넬슨 포인터가 1947년부터 이 신문사의 대주주에 올랐죠. 이후 그는 1978년 숨질 때까지 독특한 신문사의 색채를 만들어갔습니다. 이는 넬슨 포인터의 개인적인 캐릭터와도 관련이 있죠. 그는 보수주의가 득세하는 남부 지역에서 자유주의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1950년대에는 공산주의로까지 몰리기도 했답니다. 한때 미국에 몰아쳤던 신문 체인을 거부하고 편집권 자율과 ‘사회의 공기(公器)’로서의 언론을 강조했죠.


그의 이런 확고한 신념은 숨지면서 남긴 유언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자신의 지분을 다른 기업과 신문사, 가족 등에 매각하지 말고 포인터인스티튜트에 넘기도록 했죠. 이곳은 넬슨이 숨지기 3년 전인 1975년 언론인 양성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비영리 법인 아래 놓인 세인트피터즈 타임스는 자본과 권력의 견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독립적인 보도를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죠. 넬슨 포인터의 사망 이후 경영자와 편집국장이 여러 차례 바뀌기는 했지만, 이 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답니다.

 

이미지 출처_ flickr by Bill Couch 


올해 지역보도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윌 홉슨과 마이클 라포르지아 기자의 비판 기사도 이런 전통의 연속 위에 있습니다. 플로리다주 탬파베이 지역의 힐스보로카운티에서 노숙자 지원을 위한 예산이 새고 있는 현황과 이 때문에 비참한 상황에 처한 노숙자들의 상황을 조명한 일련의 보도로 지역 사회는 물론 미 사회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죠. 이 보도로 여러 공직자가 관리 부실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힐스로보카운티의 노숙자 지원시스템에 대해 20년 만에 대대적인 점검이 시행된 것이 가장 큰 성과로 꼽히죠.


보도의 시작은 사회부에서 경찰 야근 기자를 맡던 윌 홉슨 기자가 한 노숙인에게 들은 푸념이었습니다. ‘한 공화당 인사가 카운티 정부에서 돈을 받아 트레일러들이 모여 있는 공원에 노숙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너무 더럽다’는 내용이었죠. 편집국에서는 단독으로 취재하지 말고 탐사보도팀의 마이클 라포르지아 기자와 함께 팀을 이루도록 지시했고, 힐스보로카운티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노숙자들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있는 곳을 일일이 방문하는 현장 취재는 경찰 기자인 홉슨의 몫이었습니다. 그는 야간 취재에 나가면서 가끔 신변에 위협을 받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는데요. 노숙자들은 그에게 침실에는 벼룩이 득실거리고 복도에 대소변 등의 오물까지 방치된 현실을 샅샅이 알려주었죠. 탐사보도팀의 라포르지아 기자는 카운티 정부의 공공문서와 기록을 뒤져 노숙자 지원예산이 그동안 어떻게 사용됐는지에 대한 상세한 데이터를 홉슨 기자에게 제공했습니다.


2013년 7월 11일 자 첫 보도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윌리엄호 브라운 탬파베이 교통청장은 개인적으로 노숙자 주거시설을 운영하면서 15년 동안 모두 60만 달러(6억 2,340만 원)의 지원예산을 받았죠. 하지만 예산은 온전하게 쓰이지 않았으며 노숙자들을 더러운 트레일러와 허물어져 가는 모텔 등에 방치해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보도로 브라운 청장은 모든 공직에서 사퇴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두 기자는 지원예산을 받은 사람들을 일일이 취재하면서 4월 18일까지 모두 11편의 연속 보도를 이어갔죠. 결국, 카운티 정부의 담당 관료들이 물러났고 지원예산을 받고도 허술하게 노숙자 숙소를 제공한 사람들도 책임을 져야 했답니다.

 

이미지 출처_ flickr by European Parliament 


 


 

탬파베이 타임스가 퓰리처상 수상으로 마냥 분위기가 좋은 것은 아니랍니다. 세계 신문 산업을 휘감고 있는 부진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올 들어 10%의 편집부 기자 감원을 했으면, 이에 앞서 13주의 급여를 지급하는 명예퇴직까지 지난 3월에 단행했죠. 2009년 2억 7,400만 달러에 이르던 매출액이 2012년에는 1억 5,100만 달러(1,568억 원)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발행 부수는 거의 줄지 않았죠. 미국 미디어 감시기구(AAM•옛 신문잡지발행 부수 공사)에 따르면 2004년 34만 8,502부였던 발행 부수는 약 10년 뒤인 2013년에 34만 260부로 2% 하락하는 데 그쳤답니다. 미 신문사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미미한 감소죠.


언론 전문가들은 이처럼 선방한 이유가 연이은 퓰리처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역 일간지이지만 기사의 높은 퀄리티가 있어 여전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죠.

 

이미지 출처_ 위키백과 


 


 

1917년 퓰리처상이 첫 개정된 이후 지금까지 선정위원회가 각 부문의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은 적은 모두 63차례입니다. 2012년에는 논설 부문에서, 2011년에는 속보뉴스 부문에서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온라인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논객들은 이번에 수상자를 배출하지 않은 것에 상당한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답니다.


최종 후보로 올라온 댈러스모닝뉴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밀워키 저널, 센티널의 기사들이 모두 공을 들인 것으로 충분히 수상이 가능하다는 지적들이었죠. 인터내셜널비즈니스 타임스(IBT)는 정면으로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퓰리처상수상 위원회 측에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위원회 측은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은 채 “충분히 토의됐고 신중하게 고려된 결정”이라고만 답했죠.

 

이미지 출처_ pixabay by geralt 


논란이 거세지자 17명의 선정위원회 위원이었던 포인터인스티튜트의 로이 피터 클라크는 포인터 홈페이지에서 ‘특집기사에 수상자가 없는 네 가지 이론’이라는 글을 통해 자기 생각을 밝혔답니다.


그는 “내가 만약 신문사 편집국장이라면(특집기사 최종 후보에 오른) 세 명의 기자 가운데 누구라도 기꺼이 데리고 일을 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길 것”이라고 운을 뗀 뒤 17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9표를 얻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무엇보다 부문을 잘못 선택해서 응모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집기사 부문은 한 가지 아이템을 갖고 이야기 전개 방식이든 탐사보도 방식이든 깊게 파고들어야 했는데 응모한 세 작품은 시리즈 성격이 강했다고 지적했죠. 그는 “시리즈 기사가 이 부문에서 수상한 적은 있지만 아무래도 단독 아이템으로 깊게 파고드는 기사가 단일 기사라도 더 적합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심사위원들이 너무 긴 기사를 미처 읽어보지 못하고 지쳤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죠. 마지막으로 주제 자체가 독자들은 물론, 심사위원들이 읽기에도 너무 소름 끼쳤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지적했습니다. 후보작들이 유아 고문, 정신병자의 총기 사고로 희생된 무고한 시민 등을 다뤘기 때문이랍니다.


 

 

퓰리처상을 선정하는 데 논란이 있지만, 미국언론인들이 가장 받고 싶은 상으로 앞으로도 매해 시상할 것입니다. 이 상의 취지처럼 올바른 언론이 인정받고 사회에 알려야 할 것을 알리는 기자 정신을 살릴 수 있는 한국의 퓰리처상을 만들면 어떨까요? 그렇게 된다면 더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자들의 노력에 큰 활력이 되지 않을까요? 
 

이미지 출처_ flickr by European Parli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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