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16. 11:02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이미지 출처_ flickr by Henry Söderlund
제게는 만화에 대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만화는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보는 것, 혹은 그냥 재미있게 보고 지나가는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나오는 만화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던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만화작가들의 사물의 핵심을 꿰뚫는 눈은 날카롭고 매서웠습니다. 디테일도 풍부하고 메시지도 분명하며 때로는 감동도 주면서 말이죠.
만화 작가가 한 편의 만화를 구상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은 최소 1년에서 길게는 10여 년까지 걸린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 세계에 대해 연구하고, 스토리를 구상해냈기에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겠죠. 그들의 정신에 박수를 보내며, 절대 후회하지 않을 만화 4권을 추천해드립니다.
이 책은 한 평범한 샐러리맨의 죽음과 함께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49재라고 불리는 그 49일 동안 저승에서 이루어지는 심판의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총 일곱 명의 심판관에게 일곱 개의 죄 항목에 대해서 7일간 심판을 받는데 그 일곱 관문을 다 통과해야만 극락에 갈 수 있습니다. 만약 통과하지 못한다면? 나머지 심판은 받을 수도 없이 그 자리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모든 심판의 내용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행한 모든 언행으로 이루어집니다. 나를 변호해주는 변호인은 각각의 사례에 대해 반박하며 최대한 가벼운 형벌을 받거나 통과할 수 있게 도와주고요. 그 49일간의 과정에 대해 그리고 있는 책이 바로 이 만화랍니다.
주제의식 자체는 무겁지만, 내용은 굉장히 유쾌하고 기발합니다. 우리가 관 속에 넣는 노잣돈은 저승으로 가는 길에 내복을 사 입는 돈으로 쓰이고, 우리가 행한 선행의 횟수로 변호사의 급이 정해지죠. 저승사자도 예전의 그 무서운 모습이 아닌 양복을 빼 입은 젊은 남자들이 등장하고요.
이승과 저승을 교묘하게 연결하며 우리가 이승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죽어서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지금 내가 과연 잘살고 있는가를 되묻곤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불합리해 보이지만 결국은 인과응보, 사필귀정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착하게 살면 결국 모든 것이 행한 대로 돌아온다는 것을 말해주죠. 꽤 교훈적이면서도 재미난 만화랍니다.
이미지 출처_ 교보문고
이 만화를 처음 봤을 때 하일권은 천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목욕탕이라는 주제를 생각해냈으며, 그 한정된 공간에서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놀라웠거든요. 게다가 신의 손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때밀이라니요. 이 우스꽝스러운 설정이 놀랍게도 그들의 진지함에 전혀 웃기지 않습니다. 금자탕 안으로 들어가면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허세가 쩌는 주인공 허세 군은 취업에 실패하고 방황하던 어느 날 금장탕이라는 목욕탕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금자탕 회장에게 신의 손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때밀이 일을 시작하게 되죠. 그 안에는 신의 손을 꿈꾸며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때밀이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연습생에서부터 목욕 관리사로 성장한 이들이죠. 처음에 허세는 이들을 무시하지만, 차츰 허세 군도 그들의 세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모두가 대단치 않은 일, 하찮은 일이라고 무시하지만, 이들에게 때밀이는 그 어떤 일보다 고귀하고, 전문적이며, 사람들의 영혼까지 닦아내는 맑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소중히 여기며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인지 그들은 세상의 소리와 상관없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었으니까요. 가끔 내가 하는 일이 싫어지면 이 책을 찾아 읽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저를 반성하게도 하는 책이거든요. 영화화도 확정되었다고 하니 그것도 잔뜩 기대하고 있답니다.
이미지 출처_ 교보문고
샐러리맨에게 위로가 되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줬던 국민의 만화가 있습니다. 바로 윤태호의 <미생>입니다. 프로바둑 기사를 꿈꾸던 장그래. 하지만 그 꿈은 좌절되고 한 종합상사회사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합니다. 사원이 되기 위해 벌이는 인턴사원들의 치열한 경쟁, 그리고 입사 후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전쟁터 같은 회사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장그래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흑과 백이 엄청나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고 있는 바둑판에 우리가 일하고 있는 직장을 대입해 비유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등등 다양한 이유에서 회사로 모여든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 팀장에서 사원까지로 역할이 나뉘어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업무를 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바로 이 만화 <미생>입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했을 법한 고민, 누구나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그라진 '열정'들, 하루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직장 동료들에 대한 에피소드가 이 만화에 등장합니다. 국민만화라는 명성에 걸맞게 많은 직장인이 이 책으로 위로를 얻었다고 합니다. 혹시 지금 직장생활이 너무 힘드시다면 이 만화를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_ 교보문고
이 책은 좀 무서운 책입니다. 인간의 3대 욕망 중 하나이자 가장 은밀해야 할 성욕을 건드리며 그것이 온 세상에 까발려졌을 때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혼란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어느 날 사람들의 머리 위에 빨간 줄이 생겨납니다. 어떤 사람은 세 개가 있고, 어떤 사람은 한 개도 없으며, 또 어떤 사람은 수십 개가 뻗어나 있죠. 그리고 그 빨간 줄은 또 다른 누군가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생겨난 선은 없어지지 않지만, 선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 선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차츰 그 선의 의미를 알아갑니다. 바로 그 선의 숫자는 내가 살아오며 성관계를 맺은 사람의 숫자였고, 그 선은 바로 나와 성관계를 맺은 상대방과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선은 S라인이라 명명되고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고 판단할 때 그 S라인을 먼저 보게 됩니다.
인간 세상에 S라인이 나타나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죵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만화가 바로 이 <S 라인> 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위선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만화죠. 전 처음 이 만화를 봤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답니다. 이름, 직업, 학벌, 나이가 아닌 단 하나의 정보가 더 까발려졌을 뿐인데 사람들 간의 관계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거든요. 엄청나게 무서운 상상력을 담고 있는 만화임은 분명합니다.
이미지 출처_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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