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치료제 속 숨은 경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찾아볼까?

2014. 10. 29. 13:01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출처_ 네이버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현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영화라는 문화를 꾸준히 만나게 됩니다. 영화 속에는 판타지도 있고, 사람들이 닿지 못하는 영역의 상상력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현실을 세밀하게 녹여낸 작품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에는 일상에서 만나는 경제, 정치, 사회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녹아 있죠. 이중에서 영화 속의 경제 이야기는 내용을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데요. 오늘은 영화 속의 숨은 경제 이야기를 알려주는 한국경제에서 연재되는 [시네마노믹스]를 소개합니다. 



 허가 받지 않은 에이즈 치료제의 공급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그러니까… 에이즈 양성반응입니다. 앞으로 30일 정도 남았습니다." 


병원에서 의사의사의 말에 남자는 "내가 게이(동성애자)라고요? 다른 사람과 착각했을 거요."라며 현실을 부정합니다. 로데오 경기와 마약을 즐기고, 하루가 멀다하고 여자를 바꾸는 '마초 중의 마초'인 자신이 동성애자나 걸리는 에이즈에 감염됐을 리 없다는 반응이죠.


그렇게 현실을 부정해보지만, 하루가 다르게 몸은 나빠집니다. 비관하던 남자는 임상시험 중인 에이즈 치료제 지도부딘(AZT)을 빼돌려 복용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증세는 더 나빠지죠. 그러던 중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지 못해 멕시코를 통해 불법으로 들어온 잘시타빈(ddC)과 펩타이드T로 큰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걸 미국에서 팔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이 약들을 밀수한 주인공은 클럽을 만듭니다. 그리고 회비를 낸 환자들에게 약을 팔기 시작합니다. FDA가 허가하지 않은 에이즈 치료제의 공급처, 바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야기 입니다.



출처_ [시네마노믹스] 에이즈 환자 3500만명 넘는데..치료제는 왜 여전히 비쌀까 / 2014.09.22. / 한국경제



 환자는 많지만, 에이즈 치료제가 쉽게 나오지 않은 이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배경은 1985년 미국 텍사스 댈러스. 전기기술자 론 우드로프(매슈 매코너헤이 분)가 에이즈 발병 진단을 받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에이즈는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로 전염되는 병으로, 원래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생기는 풍토병이었습니다. 주로 환자의 혈액이 상처나 수혈로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거나, 성관계로 체액이 섞이는 경우 또는 오염된 주사기 등을 함께 쓰면서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졌죠. 때문에 에이즈가 알려지기 시작한 1980년대 발병 환자 가운데는 동성애자나 론 같은 마약 중독자가 많았습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에이즈 치료제가 쉽게 나오지 않는 이유를 여기서 찾았는데요. 사회·경제적으로 소수자인 이들은 치료제가 나와도 비싼 약값을 낼 수 없습니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이 추산한 전 세계 에이즈 환자는 현재 약 3500만 명입니다. 그 중에 아래 그래프와 같이 이들의 80%가량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 제3세계 국민입니다. 수요층의 구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치료제 개발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사업인 것이죠.



출처_ [시네마노믹스] 에이즈 환자 3500만명 넘는데..치료제는 왜 여전히 비쌀까 / 2014.09.22. / 한국경제



환자들의 낮은 구매력은 기존 치료제 가격까지 높게 책정하는 이유가 됐습니다. 어차피 사 먹을 사람이 많지 않다면, 제약사로선 살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약값을 아주 비싸게 책정하게 됩니다. 결국, 질병 자체의 심각성뿐 아니라 그 질병을 앓는 이들의 사회적·경제적 위치가 치료제 연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입니다.


실제 희귀병은 말 그대로 환자들이 '희귀'하기 때문에 신약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약사가 많은 비용을 들여 약을 개발해도 사줄 사람이 많지 않으면,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이나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약물 규제


영화로 돌아와서 FDA의 승인을 받은 AZT를 복용한 뒤, 부작용을 경험한 론은 본인이 멕시코에서 직접 효과를 본 약을 들고 의사인 이브 삭스(제니퍼 가너 분)를 찾아갑니다. 이 약의 처방전을 써달라는 요구에 이브는 "이 약들 중 어느 것도 FDA의 승인을 받은 것이 없다"고 고개를 젓는데요. "환자가 필요로 하고 있다고요. FDA는 필요 없어요!"라고 외치는 론의 항의도 소용없었죠. FDA의 방침은 "약물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FDA는 미국에서 생산·유통·판매하는 모든 종류의 품목을 통제·관리·승인하는 기관인데요. 음식이나 의약품, 의료기기가 안전하고 효과적인지 확인하고 조사하는 것이 주 업무입니다. 약물 규제는 1960~1961년 일어난 '탈리도마이드 사건' 이후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탈리도마이드를 입덧 진정제로 처방 받은 46개국 임신부 1만 여명이 기형아를 낳고, 5000~6000명이 사망해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의약품 사건'으로 꼽힙니다. 이후 각국은 약물의 허가와 심의를 더욱 강화했답니다.


존 버논 듀크대 경제학과 교수 등 보건경제학자들은 약물 규제 정책의 장단점을 분석했습니다. 철저한 규제로 효과가 없는 약물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엄격한 검사 절차와 임상시험으로 안전성을 높인다는 것은 장점입니다. 또 약물이 갖는 편익과 위험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 제약업체 사이의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것도 긍정적입니다. 다만, 검사나 인허가 과정이 길어지면서 개발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단점으로 꼽는데요. 이렇게 되면 신약의 수가 줄고 시장에 도입되는 기간이 늦어지기 때문입니다.



출처_ [시네마노믹스] 에이즈 환자 3500만명 넘는데..치료제는 왜 여전히 비쌀까 / 2014.09.22. / 한국경제



 보건 당국의 과보호는 제약 산업 발전을 막기도 


영화 속에서 정부의 과보호는 결국 론이 스스로 처방한 약을 전세계 각지에서 밀수하게 만들죠. 본인만 먹는 것이 아니라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열고 다른 환자에게도 팔기 시작했는데요. 월 400달러의 회비를 내면 처방을 해줬으니 달리 치료약을 구할 수 없던 많은 에이즈 환자는 이 클럽에서 약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클럽은 점점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번창합니다. 


그러자 FDA와 주정부가 제지에 나섭니다. "각종 논문과 다른 나라의 의학저널이 이 약의 안전성을 입증한다. 제약회사만 보호하지 말고 내가 가져온 이 자료들을 검토해달라"는 론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FDA와 같은 보건당국의 과도한 보호가 제약 산업의 발전을 막을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일본인데요. 과거 일본은 약품의 안전성을 강조하며 외국 제품이 일본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보호무역 정책을 썼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이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판단 아래 1975년부터는 외국 기업 설립을 허용하고, 연구개발(R&D)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내놨답니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일본 제약사는 매출의 15~20%를 R&D에 투자하며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집중할 수 있었죠. 현재 일본 제약 산업은 세계 2위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해외 제약사와 끊임없이 경쟁하며 가격·제품 혁신을 이뤄낸 결과입니다.



출처_ 네이버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물론 생명과 연관된 의약품의 규제는 엄격해야 한다는 논리에 이견이 있기는 어렵습니다. 영화 역시 FDA를 마냥 나쁘게 그리지 않았는데요. 그 예로 제약회사로부터 로비를 받는 듯한 직접적인 연출이 없었습니다.


단지 30일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남자는 두 달을 버티고 2555일을 싸우며, 결국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삶을 유지합니다. 성장하며 변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와 에이즈 치료제에 대한 이야기는 두 시간 동안 담담하게 그려집니다. 그 덕에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친 론을 연기한 매슈 매코너헤이가 또렷이 남습니다. 아카데미가 그에게 올해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요?




위 내용은 한국경제에 연재 중인 기사 

‘[시네마노믹스] 에이즈 환자 3500만명 넘는데..치료제는 왜 여전히 비쌀까’를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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