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간뉴스] 춤추고 노래하는 한국인의 DNA, 세계를 뒤흔들다

2015.03.24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출처_이미지투데이



한국인의 민족성 가운데 뚜렷한 것 한 가지가 함께 모여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을 즐기는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2002 월드컵 때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운 응원의 열기라든가, 서울시청 앞에서의 싸이 콘서트 때 관객들의 강남스타일 떼춤과 떼창 역시 우리의 핏줄 속을 면면히 흘러온 민족성의 표출이다. 



출처 : 유튜브 


요즘 같이 SNS와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아 외국 소식을 알기가 쉽지 않았을 오래 전 기록에도 동이족의 대표적인 민족성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라고 남겨져 있다.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의하면  "부여사람들은 (상나라 정월에) 하늘에 제사지내고 음식과 가무를 즐겼다"고 했으며, “마한에서는 5월에 씨를 뿌린 뒤 귀신에게 제사지내고 무리지어 노래하고 춤춘다”고 했다. <남사>에도 “고구려인들은 읍락에서 남녀가 매일밤 무리를 지어 노래하고 즐긴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장천 1호분의 <백희기악도(百戱伎樂圖 )>.
(출처_경향신문)




내가 직접 노래를 불러야 제 맛


대중 앞에서 노래하는 가수의 노래와 춤을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전국노래자랑의 인기는 세월이 가도 그칠 줄을 모른다. 전국노래자랑이 열리는 날은 지역의 축제날이다. 함께 모여서 노래하고 박수치고 춤을 추기도 한다. 송해 선생님이 활동을 하실 수 있는 한 전국노래자랑의 인기는 계속될 듯 하다. “가요무대”에는 노래방처럼 가사가 자막으로 흐른다. 오래된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눈물짓고 흥도 돋우는 “가요무대”는 월화드라마 시청률을 앞질렀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기사보기)


출처_세계일보



합창의 집과 가라오케, 아날로그와 디지털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문화는 80년대 암울한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곳곳에서 꽃을 피웠다. 1987년 2월 14일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술 대신 찻잔 앞에 놓고…「젊음」을 함께 노래한다”는 제목 아래 ‘합창의 집’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필자는 이때 이화여고에 재학중이던 고3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 해소라는 미명하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앞에서는 사회자 이규대 씨(예솔이 아빠)가 전자오르간(?)으로 반주하면서 신나는 노래 부르기를 이끈다. 술 없고 깨끗한 분위기에서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며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많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가끔 흥에 겨운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무대 앞으로 나아가 독창을 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큰 박수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


그렇지만, 이 시절의 유흥가는 가라오케 열풍이었다. 가라오케는 일본에서 들어온 자동반주기계였는데 말 그대로 “가짜 오케스트라”라는 뜻이다. 당시 고급 술집에서는 밴드를 불러 노래를 부르는 문화가 있었는데 상당한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가라오케의 등장으로 밴드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여흥에 젖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가라오케는 행락철 유원지에도 보급되어 “이동 가라오케”와 “이동 캬바레”까지 등장했다. 노래 한 곡 부르는 데 1000원, 아가씨와 춤 한번 추는 데에는 5천원이라고 한다.


출처 : 「移動(이동)카바레·가라오케」(경향신문,1987.05.28.)



사우나에도 가라오케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로이터 통신에서는 “「사우나 가라오케」는 서울의 別天地(별천지)”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사우나와 함께 멋진 가라오케 반주로 애창곡을 부를 수 있는 사우나 가라오케는 중년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곧 남탕에도 등장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미국교포들에게도 가라오케 열풍은 이어져 내려와 한국식 가라오케집들이 성행하게 되자, 1994년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재미교포의 가라오케 열풍을 보도하며 “한국인들은 노래하며 자란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출처 : 中年(중년)여성들에 큰人氣(인기)
(경향신문, 1993.07.31.)



노래방 문화의 부산 상륙작전   


가라오케가 큰 홀에 기계를 설치하고 앞에 나가서 신청곡을 부르는 방식이었다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노래방은 노래방 기기가 설치되어 있는 작은 방에 일행들끼리 들어가 이용하는 방식이다. 탬버린을 흔들든 춤을 추든 아는 사람들끼리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신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까닭에 대한민국 회식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노래방이 대한민국에 상륙한 시기는 1990년대 초반으로, 부산을 통해 처음으로 유입되어 천천히 전국으로 퍼졌다. 미성년자 출입 문제로 인해 술을 팔지 않게 되면서 "노래방"이라는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법적인 명칭은 2001년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기본법' 개정으로 노래연습장이 되었다.


필자는 1992년 1월에 마산 후배 집에 놀러갔다가 난생처음 노래방을 경험하였는데, 딱 내가 원하는 그런 서비스였다. 부산에서 마산으로 유행의 물결이 밀려온 상태였는데, 3월 신학기가 되자 신촌에도 노래방이 등장했다. 반가운 마음에 친구들을 이끌고 새로운 문화를 섭렵하기 시작했는데, 순진했던 친구들은 어두운 밀실 분위기의 노래방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건물마다 노래방이 하나씩 생길 정도로 노래방 열풍이 워낙 거셌기에 한 신문사에서는 독자들의 의견을 묻는 기회를 갖기도 하였다. 왜색문화 확산과 탈선을 조장하니 당국에서는 강력이 단속하라는 의견과, 젊은 층의 스트레스를 풀 공간이니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기를 바란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지면보기)



출처_한국일보



노래방, 한국인 생활의 한 부분이 되다   


그러나 대세는 거스를 수 없는 법! 많은 반대와 우려, 부작용이 있었음에도 노래방은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여럿이 함께 놀 수 있는 노래방은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교제중인 연인들이 선호하는 데이트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현재 썸타고 있는 상태의 커플이라면 노래를 통해 슬쩍 마음을 전달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교제중인 커플인 경우 상대방이 어떤 노래를 부르냐에 따라 이별수가 작동할 수도 있으므로, 신중한 선곡이 필요하다. 

출처_아시아경제


노래방 열풍에서 비롯된 노래 부르기 문화는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한 “주부노래교실”, 라디오 방송에서 전화로 연결된 신청자들이 즉석 기타 반주에 맞춰서 노래하는 “당신의 노래방”(처음에는 가수 임창제씨가 해서 인기를 끌었는데, 최근에도 다른 프로그램에서 자주 하고 있다), 연예인들의 예능프로그램 “도전 100곡” 등으로 다양한 현상을 만들어냈다. 최근의 슈퍼스타K, 케이팝스타 등의 오디션프로그램 열풍도 어린 시절부터 노래방에서 노래연습을 꾸준히 하면서 자라난 세대의 결실이 아닌가 싶다.  


재능있는 아이돌들이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심장을 울리게 만들고 있는 K-POP과 한류는 한국인의 핏줄 속에 흐르고 있는 “노래부르고 춤추기를 좋아하는 DNA”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앞으로 더 큰 날개를 달고 세계를 향해 훨훨 날아오르기를 기대한다. 


ⓒ 다독다독


글 : 조정미 (시인, 출판인)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언론대학원에서 문학과 출판을 전공했다. 월간 현대시에서 신인추천문학상으로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교보문고에서 12년간 근무하면서 다양한 콘텐츠 환경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상명대학교 사학과 역사콘텐츠 전공 박사과정에서 수학중이다. 주요 관심사는 커뮤니케이션과 소통으로서, 역사콘텐츠를 공부하는 목적 역시 분열과 단절을 극복할 정체성과 원형을 역사 속에서 찾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