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 후 바뀐 읽기 습관

2011. 8. 11. 13:11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책을 잘 읽는 방법? 시간을 견디는 힘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 

제가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주체할 수 없이 남아도는 시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학창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저는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도 특별히 할 일이 없었거든요. 온 들과 산이 놀 거리로 지천이었지만 그런 놀이도 슬슬 지겨워질 무렵 제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책이었습니다. 

교실마다 비치되어 있는 학급도서를 한 권씩 빌려보다 보니 어느새 책을 읽는 재미에 빠져 버렸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진로가 정해질 무렵 또 다시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책을 집어 들게 되었고 제가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라 독서기록장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말이 기록장이지 조잡하기 그지없던 그야말로 단순한 기록이었어요. 읽은 책 순서와, 지은이, 출판사를 적고 책의 내용을 가늠할 수 없는 짧은 느낌이 전부였죠. 

어쩌다 독서 기록장을 꺼내 그 무렵 써 내려간 독후감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실없는 웃음이 나오기도 한답니다. 단 두 줄짜리 독후감부터 쓸데없는 말만 지껄이다 끝나는 글까지 실로 방대하고 다양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쯤 회의감이 밀려왔습니다. 책이 좋아서 읽는 건지, 독후감을 남기기 위해서 책을 읽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거든요. 그 무렵 제가 새롭게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신문이었습니다. 

일주일 용돈이 15,000원이었던 제게 한 달 구독료 9,000원은 부담이었지만 TV가 아닌 신문을 통해 시사를 알아간다는 특별함을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배달된 신문을 들고 등교를 해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읽었죠. 

한 글자도 빼먹지 않는 읽기 습관 때문에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특히 정치면을 읽을 때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허다했고, 사건 • 사고란까지 정독하며 읽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더군요. 그런 식으로 읽다 보니 읽지 못하는 부분을 남긴 채 집으로 다시 들고 오기 일쑤였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신문 읽기 방법을 바꿔보았습니다. 학생이었던 제게 신문은 논술 실력을 키워줄 수 있다는 점을 한껏 살려 사설부분부터 읽고 버거웠던 정치면은 헤드라인 위주로 읽어나가며 관심 있는 부분만 정독했습니다. 

나머지 부분도 그런 식으로 읽어나가자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헤드라인만 읽어도 간단한 한자를 익힐 수 있다는 것(지금은 신문에 한자가 드문 편이지만 제가 신문을 구독했던 90년대 말만 하더라도 헤드라인의 대부분이 한자였답니다.)과 기사에 나오는 인물들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시사에 조금씩 눈을 뜨자 사회시간에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이 와 닿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사회 선생님은 수업 전에 시사 문제를 자주 내던 분이셨는데 몇 번 정답을 얘기하자 질문이 있을 때마다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그 전에는 대답을 잘 하는 학생이 아니었기에 시선이 쏠릴 때면 신문을 구독하고 있다고 얼버무렸는데, 신문의 효과를 경험한 유일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게 약 2년 동안 구독한 신문을 이사 때문에 그만두었는데 초기의 기록장 형태로 남아있던 독서록에 다시 관심이 갔습니다. 거의 2년 동안 읽은 책 목록만 작성하다 보니 도무지 책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짤막하게나마 느낌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신문 읽기와 독서록 작성을 병행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이왕 이렇게 한 가지에 집중해 책을 읽을 거라면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내키는 대로 읽던 독서습관을 바꿔 100권의 책을 읽어보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워낙 책을 늦게 읽거니와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을 일일이 수기로 남기던 때라 책만 덜렁 읽어서 계획이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나름 좋았던 구절도 남기고, 그 무렵 시작하게 된 블로그에도 일일이 올려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 있었죠. 

그런 복잡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자 조금씩 독서습관이 형성되었습니다. 목표를 채우려 자칫 권수에 치중하는 독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 번 잡은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과정에서 인내를 배웠고, 어떠한 책을 만나든 책을 마주했을 때 읽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가 이해 못하는가의 문제는 자신의 독서 수준을 향상시켜가는 과정이었기에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는, 앞으로 계속 풀어가야 할 숙제로 남겨놓았습니다. 

그렇게 매년 계획을 세워 책을 읽다 보니 책이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올 2월에 들어서야 책들을 한군데로 모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구입한 책, 선물 받은 책, 소장할 책, 내보내야 할 책들이 뒤엉켜 있는 서재를 정리하고 나니 후련했습니다. 
 




저와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해온 책들이었고 그 책을 들춰보면 제 삶의 흔적을 좇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책을 들었던 어린 시절이 현재의 서재가 될 거라 생각이나 했을까요? 

돌이켜보면 짧은 인생의 언저리마다 저를 위로해 주었던 것은 책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갖지 않으면서도, 이토록 책을 사랑할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마음이 계속 이어질 거라는 데 한 치의 의심도 할 수 없답니다. 

지금은 신문읽기와 책 읽기, 독후감 남기기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신문을 정독한다거나 독후감을 수기로 쓰진 않지만 지난날 제가 경험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현재 저의 모습에서 존재감을 더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책을 잘 읽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읽은 책의 느낌을 잘 남길 수 있는지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이런 과정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는 무심한 말이 아닌 시간을 견디는 힘,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면에 차 있는 무게에 놀라게 될 것이라고요. ^^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