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찌우던 시절, 살 빼는 시절

2015. 7. 9.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1913년 3월 19일 매일신보 화평당의 자양환 광고


피골의 상련이 탄식할 만하니.. 살찌우던 시절


예전에 이 광고를 보자마자 혼자 웃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화평당에서 만든 ‘자양환’이라는 약을 먹으면 피골이 상접했던 홀쭉이가 당장이라도 부유해 보이는 뚱뚱이로 변신할 것 같은 극단적인 과장광고가 재밌기도 했지만, 요즘 세태와는 너무나 달라서 꽤 재밌게 본 광고였습니다. 1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사람들은 영양부족으로 많은 질병에 시달려야 했었죠. 그러다보니 예전엔 영양이 듬뿍 들어있다는 약들이 만병을 통치할 것 같은 과장광고로 사람들을 유혹했습니다. 


1920년대 ‘인단’ 광고


1920년대엔 ‘인단’이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팔렸습니다. ‘인단’은 지금의 ‘은단’인데, 원기회복, 주독제거, 위장을 강건하게 해주는 만능의 환약이라고 광고했습니다. 수영 전후에도 꼭 챙겨먹어야 냉복에 대한 저항력이 증가되고, 여행에도 필수품이라고 하니 도대체 ‘인단’의 효능이 어느 정도인지 저도 너무 궁금해서 한번 먹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식민지 조선의 아이들


1933년 총독부 학무국에서는 조선인과 일본인 학생들에 대한 5년간의 건강상태를 조사했는데, 특히 조선인 여자아이들의 발육과 건강이 최악의 상태였습니다. 13,4세에서 20세 전후의 여학생들의 키는 해마다 평균 1촌(寸=약 3cm)의 저하를 보였다고 하니, 식민지시기의 비참함을 어린아이들도 고스란히 겪고 있었던 거죠. 이런 현상의 원인 중엔 적은 먹거리가 생기면 아들을 우선 챙기는 남아선호사상이 문제라고 분석하기도 했는데, 절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별로 맘에 안 드는 분석결과입니다.


1933년 3월 1일 동아일보 <우려할 자녀의 발육상태>


끼니도 채우지 못하는 사람들과 달리 영양제라도 사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이제 한약제재가 아닌 각종 비타민과 칼슘 등의 신약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1932년 5월 25일 동아일보 <어떠한 영양제가 가장 이상적일까-계란과 우유만능시대는 뒤떨어지고 영양제로 병을 고치는 시대가 왔다>


외할아버지의 영양식품, 가재와 개구리


저의 어머니는 해방 이후에 해방촌에서 태어나신 분인데, 종종 추억하시는 영양제는 ‘가재’입니다. 전쟁 이후, 외할아버지께서는 남산 냇가에서 잡아 온 열댓 마리의 가재를 달달 볶고 콩콩 곱게 빻아 가루를 만들어 밥에 뿌려 주셨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천연영양제였죠. 얼마 있다 이태원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니 학교에선 발육상태가 심각한 학생들에겐 동전만한 비타민을 나눠줬는데, 저의 어머니는 가재가루 덕분에 그 영양제를 받지는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외할아버지의 사랑은 저에게도 이어졌습니다. 어릴 때, 외갓집에서 자랄 때, 외할아버지가 잡아서 구워주신 개구리뒷다리, 참새, 메뚜기구이, 지금은 징그러워서 잡지도 못하지만 그땐 정말 많이 먹었죠. 포동포동 살이 찔 정도였으니까요.


국민영양제 원기소 


저의 남동생들은 전 국민의 종합영양제 원기소를 먹고 자랐습니다. 


1950~60년대 원기소 광고


쌍둥이인 5살 동생 둘은 엄마 몰래 서랍장 위에 있는 원기소를 먹으려고 작당을 하고, 5단 서랍장을 층계처럼 만들어서 올라갔다가 떨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십여 년 전 큰 동생은 조카에게 먹이려고 산 원기소를 먹어 보더니, “나아참~ 이걸 먹겠다고, 목숨을 걸다니..허허”


1950년대 각종 영양제 광고


1960년대 각종 영양제 광고


50년대 후반에는 원기소 이외에도 많은 종합영양제와 비타민제들이 판매되었는데, 부모의 자격을 갖추려면 원기소를 먹이면 좋다는 기사까지 실린 걸 보면 원기소의 선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57년 10월 10일 경향신문 <부모의 자격>


기필코, 다이어트!


급속도의 경제성장으로 먹거리가 풍부해지면서 이젠 비만이 사회문제가 된 시대입니다. 몸에 좋다는 영양제도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긴다고 경고를 해야 할 정도로 먹을 게 부족해서 영양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는 날씬하고 균형 잡힌 몸매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죠. 


(왼)1989년 8월 27일 한겨레 8면 <비타민제 몸속에 축적되면 부작용> (오)1999년 4월 9일 매일경제 36면 <무리한 다이어트 거식증 초래>

1999년 9월 1일 동아일보 44면 <아이 살빼기 엄마도 함께해야 쏘옥>


살 빼는 운동, 살 빼는 약, 살 빼는 기구.. 이제는 모두 살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건강하고 보기 좋은 몸매를 갖기 위해 전쟁을 치루고 있을 겁니다. 기필코 승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