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SBS스페셜-식탁에 콜레스테롤을 허하라’

2015. 9. 18.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9월호>에 실린 SBS PD / 이윤민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미국 식생활지침자문위원회(US Dietary Guidelines Advisory Committee)에서 콜레스테롤을 우려 목록에서 제외한다는 보도는 하나의 전환점이었습니다. “현존하는 과학적 증거에 의하면, 음식으로 섭취하는 콜레스테롤과 혈중 콜레스테롤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없다(available evidence shows no appreciable relationship between consumption of dietary cholesterol and serum cholesterol)”라는 것이 그동안 하루 300mg 미만으로 섭취하라고 했던 권장 사항을 없앤 이유입니다. 사실 콜레스테롤 논쟁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거의 50년 이상 논쟁은 지속됐습니다. 단지 미국의 지침 변화는, 나에겐 이제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는 시점이 왔다는 신호였습니다.


진행자 ‘금나나 박사’


‘콜레스테롤은 무죄’라는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논거들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에서 건강과 관련된 예민한 문제를 다루는 것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시청자들을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고, 전문가들로부터 일부 비주류 과학자들의 견해를 ‘무식하게’ 받아들였다는 냉소와 질타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버드대에서 영양학과 역학 부문에서 박사학위를 딴 2002년 미스코리아 출신 금나나 박사는 이번 프로그램을 위한 맞춤 진행자였다. 또한 촬영을 끝내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바쁜 와중에도 내레이션 녹음을 위해 다시 한국에 올 정도로 열정적이기도 했다.


콜레스테롤 논쟁은 분명 흥미롭지만, 일반 시청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렵고 복잡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제작진은 콜레스테롤과 시청자를 쉽게 연결해줄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했습니다. 우연히 페친(페이스북 친구)인 홍혜걸 박사가 금나나 박사에 대한 언급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보게 됐습니다. 2002년 미스코리아 진이라는 인지도도 있고 더욱이 미국에서 보건학을 연구하고 있다니, 우리 프로그램엔 딱 맞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나나 박사는 5월에 하버드대에서 영양학과 역학 부문에서 두 개의 박사학위를 따고, 잠시 귀국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녀는 비행기에서 ‘운명처럼’ 콜레스테롤과 관련된 캐나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출연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혈중 콜레스테롤 논쟁은 진행 중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는 ‘식탁에 콜레스테롤을 허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는 몇 가지 실험을 계획했고 수술 장면을 촬영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메르스에 대한 공포로 실험에 참여할 사람들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무도 병원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혈관 속 콜레스테롤의 실체를 생생하게 보여주고자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경동맥 수술을 가장 많이 집도한다고 알려진 병원이 사실상 폐쇄되어 섭외가 불가능했습니다. 어렵게 다른 병원이 섭외됐지만 촬영진이 현장에 도착하기 직전에 환자의 상태가 나빠져 수술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고 되돌아와야 했습니다. 결국 수술 장면은 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콜레스테롤에 대한 잘못된 기준은 좋은 영양소들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달걀과 같은 음식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진행을 맡은 금나나 박사가 다양한 달걀 요리를 먹고 있다.


콜레스테롤의 섭취 기준에 대한 논란은 어느 정도 방향을 틀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류와 비주류 학계 사이에 논쟁을 더욱 뜨겁게 가열시키고 있는 것은 혈중 콜레스테롤입니다. 흔히, 우리가 건강 검진표에서 볼 수 있는 총콜레스테롤, HDL, LDL, 중성지방이 그것입니다. 특히 이 논쟁은 스타틴이라는 약물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 심장협회에서는 LDL의 치료 목표치를 없앴습니다. LDL과 심장병 사이의 관계를 입증할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와 유럽은 기존의 기준치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미국 심장협회가 스타틴 처방을 중심으로 한 진료지침을 내놓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스타틴은 세계 의약품 판매량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고 그 제약사들이 혈중 콜레스테롤 기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의학 연구는 오랜 기간과 상당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연구를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것은 거대 제약회사이고, 연구자들이 그들의 입김에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음모론으로도 비춰질 수 있는 이러한 의구심이 조금이라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건강 관련 기준은 과학적 근거에 의해 정확히 칼을 자르듯 정해진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 기준을 정하는 위원회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과학의 새로운 발견은 건강 기준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유발합니다. 


102세의 프레드 커머로우 박사는 트랜스지방을 유해물질로 규제하기 위해 50년이상 투쟁해온 세계적 과학자다. 프로그램을 위해 인터뷰에 응한 커머로우 박사는 혈관 건강 악화의 주범은 “콜레스테롤이 아니라 트랜스지방”이라고 말한다.

건강문제도 시민이 나서자


영양역학 분야의 세계최고 권위자 월터 윌렛 하버드대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의회, 정치적 이슈, 업계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그들은 위원회 보고서의 일부를 희석시키기 위해 노력해요. 그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원래의 메시지가 정확한 과학적 증거에 의해서 전달되지 않고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과학적 증거에 의해서만 만들어져야 하는 기준들이 정치와 산업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건강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자 톰 노튼은 “모든 것에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건, 이러한 연구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죠. 이들 중 꽤 많은 이들은 기업들로부터 지원을 받기도 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연구 발표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고 작은 규모라도 스스로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건강과 관련된 이러한 기준을 만드는 것은 전문가들만의 몫일까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준들이 나와 가족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콜레스테롤에 대한 잘못된 기준은 좋은 영양소들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달걀과 같은 음식을 멀리하게 만들었습니다. 과학적 근거가 정치와 산업계의 입김에 좌우되는 것도 막아야 하고, 이해관계자들이 건강 관련 기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

정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전문가 집단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일입니다.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식탁에 콜레스테롤을 허하라’의 결론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다큐멘터리가 ‘건강을 위해서 이렇게 하세요’ 식의 정보 프로그램으로 머물길 원치 않았습니다. 아직 콜레스테롤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팩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팩트의 이면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과학(의학)도 사회적 산물입니다.


“사회적 합리성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며, 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이다.”

-위험사회(울리히 벡 지음/홍성태 옮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