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25. 14:00ㆍ포럼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읽지 못하는 바보’를 만든 거 아냐?
미국의 미디어 비평가이자 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가 2008년 <애틀랜틱(Atlantic)> 7-8월호에 쓴 구글(인터넷)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니냐(Is Google making us stupid?)는 에세이는 종이신문이 아닌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는 시대에 더욱 호소력 있는 글입니다. 카는 올 초 국내에 번역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도 인터넷이 우리의 두뇌와 읽기 능력(literacy), 사고력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합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인터넷 토막 정보를 모니터 상에서 스크롤하며 대충 눈으로 훑고선 내용을 다 파악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요? 스마트폰 액정 화면으로 짧은 뉴스를 빨리 읽는 데 익숙해지다 보니 저도 긴 호흡의 글들은 좀처럼 잘 읽히지 않더군요. 독해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뉴스 이용자들이 글을 꼼꼼하게 보지 않아 낚시성 기사가 많아졌을까요? 아니면 자극적인 제목의 내용 없는 뉴스가 많아져서 기사를 제대로 읽지 않는 습성이 생긴 걸까요? 어쨌든 스마트 미디어 시대에 글을 해독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책이나 종이신문‧잡지가 흥하던 시절보다 낮아진 것 같습니다.
미디어를 교육에 활용할 방안을 고민하고 토론했던 자리
읽기와 사고 능력 저하에 관한 우려를 일선에서 누구보다 절감하는 분들이 바로 초‧중‧고 교육 현장의 교사들입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교육부‧EBS가 후원한 ‘2015 미디어교육 전국대회’는 전국의 미디어 교육 교사들이 경주에 모여 1박 2일(9월 18~19일) 동안 5개 주제 10개 세션을 통해 미디어를 교육에 접목시킬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하며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저는 세미나 마지막 날 3개 세션에 참석했습니다. (1) 장세라 교사(서울 역촌초)의 미디어 교육 수업 시연 ‘신문은 재밌다, 읽기는 즐겁다(초등 6학년 대상)’ (2) 각계의 미디어 종사자들(EBS 송경화‧강정민, 네이버 정민하, 페이스북 박대성, 중앙일보 유성운)이 방담 형식으로 꾸민 ‘미디어 리터러시 토크’, 그리고 (3) 일본 NIE 학회 이사이자 아키타 대학 교수인 아베 노보루의 ‘NIE(Newspaper in Education, 신문활용교육)는 풍부한 사고력, 판단력을 키운다’였습니다.
종이신문을 활용한 읽기 교육은 아직도 유효하다
인상적인 수업 시연을 했던 장세라 교사와 아키라현의 NIE 사례를 가지고 초청 강연자로 나선 아베 교수 두 분에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미디어, 그 중에서도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이 잘 읽지 않는 ‘종이신문’을 활용한 읽기 교육의 유익함을 강조한 점입니다. 장세라 교사가 발표한 현장 경험에 따르면, 매일 종이신문의 기사를 유심히 읽다보면 특정 사건이나 이슈의 발단, 전개 및 경과, 결과, 반응 등의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읽기를 멀리하는 학생들에게도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냥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문 기사에 나온 정보로 서로 퀴즈를 내기도 합니다. 교사가 기사에 나타난 사실, 생각이나 느낌, 기사의 장‧단점 등을 말하도록 적어 놓은 6가지 색상의 ‘사고(思考) 카드’(육색 사고모자 기법) 중 하나를 들어 올립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각각의 카드가 주문하는 내용에 따라 자신이 읽은 기사에 대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사고하면서 자기 의견을 말합니다. 교사가 제시하는 ‘사고 카드’에 맞게 신문을 읽고 답하다 보면 신문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리고 비판적이고 논리적으로 기사를 읽고 생각하는 훈련도 된다고 하네요. 합리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참신한 교수법입니다.
성숙한 민주 시민 양성으로 이어지는 미디어 리터러시
아베 교수가 NIE를 통해 습득할 수 있다고 말한 ‘21세기형 역량’도 기사를 읽고, 생각하고, 말함으로써 사고력을 증진시키는 장세라 교사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아베 교수는 신문 읽기 능력 배양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가 제시한 3가지 핵심 역량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OECD와 PISA가 말하는 핵심 역량은 ‘문장을 읽는 역량’(reading literacy), ‘수학을 읽는 역량’(mathematical literacy), ‘과학을 읽는 역량’(science literacy)입니다. 수학과 과학을 읽는 역량은 언뜻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거나 이과 계열의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만 요구되는 능력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건 신문기사를 활용해 수학과 과학을 읽는 역량을 키우면 타당한 증거와 논리를 가지고 추론하며 설명할 수 있는 분석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수학적‧과학적 읽기 역량과 문장 읽기 역량을 배양해 비판적으로 생각할 줄 알게 될 때 예상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사회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21세기적 역량을 가진 성숙한 민주 시민을 양성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장세라 교사와 아베 교수가 지향하는 신문 읽기를 활용한 미디어 교육은 단순한 기사 독해력 향상이나 분석적 사고력 함양에 그치는 건 아닙니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궁극적으로는 공교육의 틀 속에서 주체적이며 비판적인 판단과 실천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겁니다.
미디어 활용에 대한 교육도 좀 더 민주적이고 수평적으로
미디어 교육은 앞서 말한 미디어를 활용한 교육 외에도 ‘미디어를 활용하는 교육’도 포함합니다. 이 부분은 포털사이트, 방송, 신문, 소셜미디어 관계자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토크’에서 논의 됐습니다. 미디어 콘텐츠의 발달 현황에서부터 수용자들의 이용 패턴, 미디어 리터러시가 중요한 이유와 사회적 효과에 대해 전방위적인 토크가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합리적이고 열린 소통이 가능할 줄 알았던 디지털 공간이 어떨 땐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비난과 비방, 폭력, 음란물이 난무하고 상이한 입장들 간에 간극만 더욱 확대되는 아수라장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이나 자녀들에게 미디어 이용을 지도할 때도 그들의 이용 동기나 행태에 대한 공감 없이 권위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계도하는 부분도 없지 않고요. 인터넷이나 SNS의 장점이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의사소통에 있다면 교육 현장이나 가정에서 이뤄지는 미디어 이용 교육도 이런 요소들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라는 발언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이미 교실에서 시작된 미디어 교육을 통한 점진적 혁명
역사학자 오항녕이 쓴 <조선의 힘>(2010)이란 책을 보니 세상을 바꾸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네요. 하나는 ‘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입니다.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는 혁명가도 세상을 바꿀 수 있고, 교실과 거실의 교육을 통해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 혁명에 언론계 전체가 혼비백산하고 우리 삶 역시 급변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미디어 교육에 앞장 선 교사들의 손끝에서 ‘조용한 혁명’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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