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1. 14: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곧 개봉 예정인 최민식 주연의 영화 <대호大虎>는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 강점기인 1925년 지리산이며, 당시 많은 사람들은 호랑이의 용맹스러움을 칭송하며 신성한 존재로 여겼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사실적으로 잘 옮겨 놓았기 때문일까요? <대호>는 기대되는 화제작 중의 하나인데요. 여기서 궁금증! 왜 일제는 조선의 호랑이를 필사적으로 포획했을까요?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다룬 최민식 주연의 영화, 대호 (2015년 12월 16일개봉 예정)
한민족 용맹함의 상징이자, 두려움의 존재였던 호랑이
호랑이는 예로부터 한민족의 용맹함을 상징해왔고, 옛사람들은 산의 왕이라는 의미로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 칭했습니다. 반면 민간에서는 인명을 앗아가는 두려움의 존재이기도 했는데요. 호환虎患은 조선 시대 사망의 직접적인 제 1 원인이었고, 일제 강점기에 더욱 증가하기도 합니다. 당시 발행된 기사를 한번 보시죠.
1920년대 신문에 보도된 호랑이 인명 피해 : 1925.11.29 동아일보 2면 - 狩獵(수렵)하든靑年(청년) 大虎(대호)에게물려죽어 / 1924.08.26 동아일보 2면 - 잠자는少女(소녀)를 호랑이물어가 평북선천에서
그럼 어떠한 이유로 인명피해가 더욱 늘었을까요? 조선 시대에는 호랑이를 사냥하는 부대를 운영하고 호랑이를 사냥한 사람에게 포상하는 등의 방식으로 개체 수를 조절해왔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 조선인들의 소요를 막기 위해 엽총 소지를 금하면서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호랑이 수가 급격히 증가한 거죠. 그 결과 해마다 200명 이상, 가축 7,000마리 이상이 호랑이 등 맹수의 피해를 보았다고 합니다. 엄청나죠?
호랑이 멸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일제의 해수구제 정책
이에 일제는 조선인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해로운 짐승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호랑이, 늑대, 곰 등을 토벌하는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칩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1915~1942년에 이르기까지 잡혀 죽은 조선 호랑이는 141마리입니다. 이는 공식기록상으로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500여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제의 해수구제를 다룬 당시의 일간지 기사 : 왼쪽부터 1926.1.12 동아일보 4면 - 孟山害獸驅除(맹산해수구제)/ 1925.03.03 동아일보 3면 - 通川(통천)에害獸驅除(해수구제) / 1925.12.15 동아일보 4면 - 長淵(장연)의害獸討伐(해수토벌) 警察獵師合力(경찰엽사합력)
현존하는 전 세계 야생 호랑이가 7,000마리 정도라고 하니, 일제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호랑이 포획에 열을 올렸는지, 얼마나 많은 호랑이가 한반도에서 살육당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이런 일제의 대대적인 해수구제 정책으로 호랑이를 비롯한 곰, 표범, 늑대 등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한반도의 대표적인 맹수들이 멸종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그렇다면 왜 일제는 이렇게 대대적인 호랑이 토벌작전을 펼친 것일까요. 단지 민간의 안전을 위한 것이 전부였을까요?
tvN '응답하라 1988’에 정봉 역의 안재홍이 서울올림픽 당시 마스코트인 호돌이 티셔츠를 입고 있다. 호돌이는 호랑이를 모티브로 만든 마스코트.
호랑이 사냥에 숨겨진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지만, 호랑이 사냥은 당시 조선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살펴본바 대로 야생의 맹수들로 인해 민간에서 많은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가 극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볼거리가 없던 그 시절 호랑이 사냥은 그 자체로 대단한 구경거리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한가지로 한민족의 용맹함을 상징하는, 섬나라 일본에는 없는 맹수 호랑이가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을 자극했다는 것입니다. 섬나라 일본의 자연 생태계에서 제일 맹수는 늑대였고, 그들에게 조선의 호랑이는 선망의 대상이자 열등 콤플렉스로 작용해왔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의 호랑이를 공수해서 먹은 일화도 유명합니다.
정호군(호랑이 사냥 원정대)의 모습 - 제국주의 야심에 비롯되었지만, 이를 모르는 조선일들의 환영을 받았다. / 출처_한겨레
일제가 조선 호랑이 사냥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표면적으로 민간의 요청에 부응하는 차원이었지만, 그 뒤에 제국주의적 야욕을 숨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호군(征虎軍, 일본인 사업가 야마모토 다다시부로에 의해 결성된 호랑이 사냥 원정대)을 결성하여 조선 호랑이를 무차별적으로 살육했습니다. 그들에게 호랑이의 말살은 한민족 혼의 말살을 상징했던게 아닐까요?
중국에서 기증받은 백두산 호랑이 광릉 국립수목원에서 만날 수 있어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호랑이를 볼 수 없는 걸까요?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광릉 국립수목원에 가면 백두산 호랑이 한 쌍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안타까운 사연이 있습니다. 이는 2005년 중국의 동북호림원東北虎林園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입니다. 동북호림원은 1980년에 개장하여 개체 수 16마리를 500마리까지 늘렸다고 합니다. 멸종 위기는 넘긴 셈이죠. 그에 반해 한국은 기증받은 호랑이조차 번식하는 데 실패하고 있어, 우리 힘만으로는 한민족의 상징과도 같은 호랑이를 지키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호랑이의 용맹스런 포효 다시 들었으면
일제에 의해 핍박받아 한반도에서 쫓겨나고 중국에 의지해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의 호랑이, 그 모습에 한민족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건 저만의 착각일까요? 나라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했습니다. 힘이 약하면 주변 강대국의 결정에 운명을 맡겨야 합니다. 그 많던 조선 호랑이의 용맹스러운 포효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더 부단히 노력하고 뼈아픈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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