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 읽고 싶은 책

2016. 5. 9. 19:00다독다독, 다시보기/읽는 존재



송화준, 책읽는 지하철 대표 기획자


많은 사람이 어버이날 하면 카네이션을 떠올리겠지만, 저는 매운' 짜장면이 떠오릅니다. 사천짜장이냐고요? 아니면 고춧가루 뿌린? 둘 다 아닙니다. 어릴 적 아버님이 사업에 실패하시고 어머님은 보따리장수처럼 이것저것 들고 팔러 다니셨습니다. 아직 어린 막내아들을 혼자 놔둘 수 없어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또 하나의 보따리였을 겁니다. 얼마라도 손에 돈이 잡히는 날에는 버스터미널 뒤에서 짜장면을 먹었습니다. 그날도 중국집에 들어갔습니다. 어머님은 늘 짬뽕을 시키셨습니다. 제가 짜장면을 다 먹을 동안 기다렸다가, 짬뽕에서 면을 건져 버무려주고 나서야 자기 입으로 가져가셨습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게 어머니의 사랑은 매콤한 짬뽕 면을 버무린 곱빼기 짜장면입니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책을 몇 권 꼽아봤습니다.

 


#윤석남, 한성옥 그림책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



가볍다

너무 가벼워서

깃털보다 가벼워서

답삭 안아 올렸더니

난데없이 눈물 한 방울 투투둑

그걸 보신 우리 엄마

얘야, 에미야, 우지마라

그 많던 걱정 근심 다 내려놔서

그렇니라하신다.

 

-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 중에서

 

 

할머니'라는 단어가 점점 어울리는 어머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늘 마음이 아픕니다. 책의 주인공 윤석남 화가는 어머님을 그리고 싶어 그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린 32점과 에세이를 덧되어 멋진 그림책이 탄생했습니다. 사이즈도 어린이용 동화책과 같은 크기와 두께여서 얼핏 보면 유아용 동화책 창작동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 법합니다. 에세이는 모성을 바탕으로 세 가지 테마를 담고 있습니다. 윤석남 작가 자신의 이야기, 어머니와 남편, 딸과의 관계 이렇게. 곳곳에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있습니다. 누군가는 따뜻한 눈물을 훔칠지도 모르겠습니다.

 



곡성할머니들이 쓴 <시집살이 집살이>

 

전남 곡성의 할머니들이 느지막이 한글을 배우고 쓴 시를 모았습니다. 글을 늦게 배운 할머니들의 시는 어린아이의 말처럼 진솔하고 순수합니다. 감춤도 허례허식도 없습니다. 저는 <시집살이 집살이>을 읽으면서 어머니가 처음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띄어쓰기도 맞춤법도 엉망이었습니다. 서툴러서 겨우겨우 두 줄을 채운 안부 메시지였습니다. 코끝이 찡했습니다. 힘들 때마다 그 메시지를 혼자 들춰보면서 힘을 내곤 했습니다. 곡성 할머니들의 시골 시집살이는 오죽 힘들었을까요. 그 시집살이가 곰삭아서 이렇게 이쁜 시가 되었습니다. 하나하나 투박한 시는 빼어나지는 않지만, 가슴 깊이 잔잔한 울림이 있습니다. 빼어나다고 정정해야 할 것 같군요.



눈이 사뿐사뿐 오네

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려와서

사뿐사뿐 걸어오네.

 

-, 김점순 할머니 (시집살이 집살이 시집 중)

 


인자 허리 아프고

몸이 아프고

몸이 마음대로 안된께

마음이 쎄하다

저 사람은 저렇게 빤듯이

걸어가니 좋것다

나는 언제 저 사람처럼

잘 걸어 갈끄나.

 

-좋겠다, 양양금 할머니 (시집살이 집살이 시집 중)



룽잉타이, 안드레아 <사랑하는 안드레아>

 

대만의 지성으로 불리는 룽잉타이와 독일인 남편 사이에 둔 아들, 안드레아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입니다. 룽잉타이는 중화권에서 널리 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대만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책 내용은 지성과 모성을 넘나들며 읽는 이를 스며갑니다. 묵직한 얘기를 살갑게 풀어가는 구성과,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해가는 성장기 아들과의 대화는 이 책의 진미입니다. 아이의 10대에서 시작해 자기 길을 찾아 방황하는 20대 초까지 주고받는 편지는 한 편의 성장소설을 보는 듯합니다.


둘은 학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가지고 혁명에 대해 얘기합니다. "불합리한 학칙에 반기를 들 수도 있어. 하지만 기존의 규칙에 반기를 들려면 그만한 시간을 들여야 해. 관건은 이 일을 위해 시간을 들여 권위에 도전할 것인가 하는 거야.” 라면서 무언가를 개선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면서 또 엄마로서, 사회지도층으로서 해야 할 말 사이에 갈등합니다. “엄마는 내 아이에게 권력과 무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한편 부당하게 해를 입지 않도록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것일까?"

 

차츰 자신의 길을 찾아 멀어져 가는 아들을 보면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스무 살에게 부모는 낡은 집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어. 네가 사는 그 집은 비바람을 막아주고 온기와 편의를 제공하지만 집은 집일 뿐이야. 부모란 말이야, 건넛산 돌 쳐다보듯 하는, 익숙해져 버린 낡은 집 같아.” 그러면서 '낡은 집'인 엄마를 떠나 이제 자신을 펼치라고 응원합니다.

 



하지만 부모는 말이야, 끊임없이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쁘면서도 슬프고, 달려가 안고 싶으면서도 불러세우지 못하는 그런 존재란다.” -사랑하는 안드레아, p.135

 

어머님께 믿음직한 뒷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더 열심히, 그럼에도 가끔은 어머님이 달려오셔서 편히 안길 수 있도록 뒤돌아보는 여유가 있기를 바랍니다. 안기고 싶어도 말 못하고 있는 엄마를 위해, 오늘은 먼저 다가가 안아드립시다. 힘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