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종하더라도 기사 신뢰도가 최우선

2016.05.09 12: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신문이나 방송 뉴스에서 심심찮게 접하게 되는 문구가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이나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같은 말들이다. 이 문구를 쓰는 기자들이나, 그런 기사를 승인하는 데스크들이나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이런 얼굴 없는 취재원들의 발언을 직접 인용 처리해주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관행이 뉴스 신뢰성 제고 관련 연구를 할 때마다 단골로 지적되는 익명 취재원이다.

 

 

익명 직접 인용 금지

 

바다 건너 뉴욕타임스에서 익명 취재원과 관련한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져왔다. 딘 베케이 편집국장은 지난 315일 국장단 명의로 기자들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익명 취재원 사용 관행을 정비하겠다고 선언했다. 베케이 국장을 비롯한 국장단 3명이 제시한 원칙은 크게 네 가지였다.


1. 기사의 주된 취재원이 익명을 요구할 경우엔 베케이 편집국장, 맷 퍼디 부국장, 혹은 수잔 치라 부국장 등 핵심 간부 세 명 중 한 명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한 뒤 승인을 받아야 한다.

2. (기사의 핵심 취재원이 아닐 경우) 익명 취재원은 반드시 담당 부서 부장의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3. 극히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익명 취재원의 발언을 직접 인용 처리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 때는 반드시 담당 부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4. 편집 간부들은 기사를 출고하기 전에 (기사에 등장하는) 익명 취재원이 누구인지 반드시 확인해야만 한다.

물론 뉴욕타임스가 느닷없이 이런 기준을 마련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이런 결심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각주:1]샌 버나디노 사건 발생 열흘 만에 중요한 단독 기사 하나를 내보냈다. 탐사 전문기자인 맷 아푸조 등 두 명의 기자가 함께 쓴 기사였다. 익명의 미국 법집행기관 담당자(American law enforcement officials)’를 인용한 이 기사엔 테러범 부부 중 아내인 타스핀 말릭이 미국에 오기 전부터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과격 이슬람성전에 대해 강한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해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부 이민당국이 이런 중요한 사항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파키스탄인인 파룩과 말릭 부부의 이민을 허용해줬다는 게 기사의 기본 논조였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막을 수도 있었던 테러사건을 정부가 방치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오보로 밝혀진 익명 취재원 보도이 보도가 나가자마자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곧바로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후속 보도를 통해 말릭이 페이스북에 이슬람 과격주의를 공개 지지하는 글을 올린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말릭이 개인 메시지나 이메일 등에서 그런 취향을 밝혀오긴 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공공연하게 이슬람 과격파를 지지한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뉴욕타임스 입장에선 심각한 오보를 한 셈이다.

뉴욕타임스 보도가 오보로 밝혀지자 사내외에서 엄청난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뉴욕타임스 내부에서 비판 목소리가 높았다. [각주:2]퍼블릭 에디터인 마거릿 설리번은 오보가 나간 지 일주일 만에 시스템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 칼럼에서 설리번은 샌 버나디노 테러범 관련 오보는 취재와 편집 과정에서 충분히 의심하고 체크해야 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크게 두 가지를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오보를 낼 수 있었는지, 두 번째는 그런 오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어떤 부분을 정비해야 할 것이냐는 부분이었다. 이런 논의 과정에서 익명 취재원에 의존해온 관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베케이 편집국장은 편집국 내에서 가장 경험 많은 기자와 편집간부들과 협의를 거친 뒤에 익명 취재원 활용과 관련된 규칙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기준에 따르면 익명 취재원에 전적으로, 혹은 대부분 의존한 기사는 무조건 베케이 편집국장이나 맷 퍼디, 수잔 치라 부국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 세 사람이 여의치 않을 경우 필 코벳 부국장등 에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이때 담당 부장은 왜 익명 취재원이 필요한지에 대해국장단에게 설명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외 모든 기사의 익명 취재원은 부서장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때는 해당 기사에 익명 취재원 사용을 누가 허락해줬는지도 기록해 놓도록 했다. 기자뿐 아니라 익명 취재원 사용을 허락한 사람에게도 강한 책임감을 부여한 셈이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새롭게 도입한 기준 때문에 뉴스 출고가 느려지고, 그 때문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낙종은 감수하겠다고 선언했다.

 


개인 아닌 시스템의 문제


익명 취재원은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다. 취재원을 보호하면서 중요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특히 이름이 노출될 경우 직접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익명으로 처리해주는 것이 꼭 필요한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관행은 언론플레이의 도구로 이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익명을 원하는 취재원일수록 그런 의도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도한 기사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부작용도 감수해야 한다. 뉴욕타임스가 기사의 주된 취재원이 익명을 요구할 경우국장단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은 뉴스 가치와 기사 신뢰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앞으로 뉴욕타임스의 익명 취재원 적용 기준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볼 문제다. 하지만 조직의 잘못에 대해 겸허하게 반성하 신속한 개선책을 내놓는 문화는 한국 언론들도 본받을 점이 많아 보인다. 어쩌면 그런 문화가 뉴욕타임스의 진짜 경쟁력이자 혁신의 원천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4월호 Media Issue, 2016.04



  1. 지난해 12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 버나디노에서 발생한 총기 테러 사건으로, 무슬림 부부인 사이드 파룩과 타스핀 말릭이 사회복지시설에서 총기를 난사해 14명이 사망했다. [본문으로]
  2. 뉴욕타임스가 지난 2003년 발생한 제이슨 블레어 기자의 표절 파문 이후 신설한 직책으로 저널리즘윤리에 대한 조사 권한을 갖고 있는 막강한 자리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