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보도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는?

2011.09.14 13:07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가정추론- 박범신의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신문 방송 기사를 읽고 보다 보면 ‘왜 이렇게 멍청하고 말도 안되는 기사를 썼지?’ 라든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와 같은 다양한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상반된 반응을 가져오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저널리즘 또는 저널리스트의 가설,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취재의 가설, 가정을 무엇을 향해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확인의 방향과 방법, 결과적으로 기사의 방향과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이죠. 저널리즘적 비판 의식과 상상력의 차이를 가져올 수도 있는 취재의 가설, 가정의 설정은 그래서 취재보도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자 절차,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저널리즘, 취재 보도는 구체적인 팩트(fact), 단서, 사건사고 등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취재 가설 또는 가정의 형성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미국탐사기자협회(IRE)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한 존 울만(Ullmann, 1995)은 “좋은 탐사보도는 뭔가 잘못이 있고 그래서 체크해봐야 되는 전제, 가설, 개념이나 팁에서 시작된다”(p. 38)고 지적하면서 탐사보도의 핵심적 과정으로 가정의 수립(forming hypotheses)을 제시하기도 하죠. 



<박범신의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의 책 표지. 문예중앙 제공.>


섬뜩한 폭력과 인간 본연의 악마성을 드러낸 소설로 평가 받는 소설가 박범신 씨의 39번째 장편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문예중앙 펴냄)는 바로 이 같은 저널리즘의 가설, 가정 형성의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소설 주인공 ‘나’는 위기를 느끼거나 분노에 빠질 때, 또는 감정이 격해질 때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에서 말굽이 돋아나 살인을 저지르는, 그럼에도 순수한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입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을 거듭하다가 신흥종교 명안진종 교주이자 원룸빌딩 ‘샹그리라’ 이사장의 ‘영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기억을 회복합니다. 이사장의 폭력적인 과거와 현실의 부조리, 그리고 눈먼 안마사가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소녀가 여린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여린을 구하기 위해 이사장과 맞서게 된다는 것이 줄거리인데요. 소설의 ‘프롤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가령, 언젠가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날는지도 모른다. “살해된 남자의 두개골은 U자형으로 함몰되어 있었다. 마치 말굽으로 강력하게 내리친 것처럼.” 아니 두개골 파열만 사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죽은 남자의 가슴에는 말굽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으며, 그 자국을 남긴 광포한 힘은 갈빗대들을 단번에 부러뜨리고 심장을 압박해 파열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따위의 기사가 게재될 수도 있다. 

핵심은 말굽이다. 물론 살아있는 말이 죽은 자의 가슴을 밟고 지나간 것은 아니다. 말은 예민하고 순발력이 뛰어난 동물이다. 시멘트 콘크리트로 도배되다시피한 이 도시에서 도대체 어떤 말이, 혹은 어떤 이가 말을 몰아 그토록 정교하게 사람의 가슴에 말굽 자국을 낼 수 있겠는가. 더구나 목격자는 전무하다. 말굽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조차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살해된 사람의 두개골이나 가슴에 남은 말굽 자국은 말굽 같은 형태의 흉기 자국일 확률이 높다. 말굽을 살해도구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 말굽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를 지닌 미치광이 사이코패스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센스있는 상상력이고 합리적인 추리이다. (박범신, 2011, 15~16쪽).



소설의 내용은 한 기이한 살인 사건에서 수사관들이 '두개골을 말굽으로 강력하게 내리친 듯한 파열', '가슴에도 말굽 자국 등이 있는 피살자의 피해 상태', '정교한 가격과 말굽 소리의 부재'와 같은 정황과 관련자 증언 등을 토대로 범행 도구는 말굽 형태의 흉기일 가능성이 높고, 범인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가정, 추리를 할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소설은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수사관들은 경마장, 승마장이나 마사회 따위를 뒤질 터이고, 이 엽기적 살인사건의 전말에 비상한 흥미를 느낀 상식적 합리주의자들은 당연한 수순이라면서 손뼉을 칠테지'(박범신, 2011, 15~16쪽).

즉, 주인공 '나'는 수사 당국이 말굽과 관련이 있는 경마장과 승마장, 마사회 등을 뒤질 것이고 의심할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주인공이 우연하게 명안진종의 경내에서 한 남자를 살해하고 사흘 뒤 관련 기사가 보도되는 장면에서도 다시 이어집니다. 죽은 남자가 추락사했을 가능성과 타살된 뒤 추락했을 가능성이 공존하는 가운데 시신 팔목 부근에서 말굽 상흔이 발견되면서 경찰이 근처 승마연습장을 탐문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문제의 기사를 본 것은 사흘이 지나서였다. 세지봉 북쪽 암벽 아래에서 두개골이 완전히 부서진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기사였다. 관음봉이 아니라 세지봉 북쪽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사를 읽었다. 흥미로운 요소가 있었다면 기사는 ‘박스’ 처리되어 쉽게 눈에 띄었다. 암벽 꼭대기에서 ‘추락사’한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법의학 전문가는 ‘살아서 추락했다면 두개골 상단이 그처럼 엉망진창 부서지진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모자차양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누구나 추락할 때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보호하려 하기 때문에 모자를 쓰는 테두리 안쪽은 큰 손상을 입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팔목도 부러졌는데, 부러진 팔목 부근의 장장근에 말굽 모양의 상흔이 선명히 남아 있다는 내용이었다. 말이 시신을 밟고 지나갔을 가능성이 있어 세지봉 일대의 승마연습장을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박범신, 2011, 110~111쪽).



소설에서는 주인공 ‘나’ 자신의 손이 말굽으로 변하고 기이한 살인을 이어가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이 같은 가정, 가설, 추론 등은 전혀 맞지 않게 됩니다. 즉 ‘센스있는 상상력이고 합리적인 추리’는 코미디로 급격히 추락하는 모양새죠. 

소설의 영역에서는 그렇지만, 실제 저널리즘과 수사의 현장에서도 그럴까요. 아마 경찰 등 수사당국 수사와 저널리즘 현장에서는 오히려 소설에서 부정된 '센스있는 상상력과 합리적인 추리'가 더 현실적으로 존중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이뤄진 ‘상상력과 추리’야 말로 사건사고, 팩트, 단서 등에서 출발하면서도 총체적인 진실과 사실, 현실에 부합하고 확인과 검증이 가능한 가정과 추론을 수행하기 때문이죠. 

특히 저널리즘에서 주목하는 취재 가설 또는 가정 설정 방법으로 셜록 홈즈의 탐정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설명되는 ‘가정추론’ 또는 ‘귀추법’(abduction)을 우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가정추론법은 저널리즘에서 팩트와 단서로부터 출발해 사실과 진실의 재구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매우 유용한 가설 설정 방법이라는 것이죠(심재철 외, 1996). 

가정추론은 어떤 팩트, 현상 등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가설을 추론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법(deduction), 귀납법(induction)에 이어 미국의 철학자 찰스 퍼스가 가정추론 또는 귀추법이라고 부른 추론 형태을 제시하기도 했죠. 아무튼 가정추론은 연역법처럼 법칙이나 원리, 공리 등에서 출발하지 않고 자료나 사실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연역법과 다르고, 법칙이나 공리, 원리 등의 추출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귀납법과도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하게 설명한다면, 연역법이 A(대전제, 법칙, 원리, 규칙 등)-B(중전제)-C(결론, 구체적인 사실, 팩트), 귀납법이 C-B-A의 논리구조를 갖는다면, 가정추론법은 C-A-B의 논리구조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여성이 죽었고 그 여성의 옷소매가 많이 닳아 있다는 팩트를 확보했다면, 가정추론법은 C(피살된 여성의 옷 소매가 많이 닳아 있다)-A(타이피스트는 타자를 많이 치기 때문에 보통 소매가 잘 닿는다)-B(그 피살된 여성의 직업은 타이피스트이다) 논리를 따라, 피살자 직업은 타이피스트일 것이라는 가정 추론을 하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취재보도 과정에서 가정 추론을 활용, 가정을 만든 뒤 이를 확인해 보도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2005년 3월 일부 기업이나 단체 소속 사람들이 정치자금을 낸 것을 보고, 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한 정치자금법을 어긴 불법 기부 행위로 가정 추론하여 이를 확인,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출처:『세계일보』, 2005년 3월24일자, 2면>


물론 가정 추론만이 진실에 부합하는 가정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연역과 귀납이 적절하게 병행돼야 풍부한 상상력을 낳을 수 있습니다. 또 팩트와 단서 등이 결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파편처럼 흩어져 있을 가능성 또한 큽니다. 이럴 경우 팩트와 단서에 대한 가정 간의 관계, 구성과 세트 등에 대한 추론과의 관계성도 있어야 합니다. 귀납, 연역, 가정추론의 방법 모두가 결합돼야 하기 때문이죠. 

미국의 톰 호닉(Tom Honig)은 구체적인 취재 가설의 방향과 관련하여 '절차나 제도에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사람이 절차와 제도를 따르지 않았는가' 하는 두 가지로 압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우연히 어린이 보호기관에서 한 아이가 죽었다면 어린이 보호기관 직원이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전체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죠(Weinberg, 1996/2000, p. 22). 

아무튼, '훌륭한 보도는 과학적 전통과 공통점이 많다'며 '합리적인 가설 설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울만(Ullmann, 1995)의 말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훌륭한 탐사보도는 가장 훌륭한 과학적 전통과 공통점이 많다-가설을 공식화하고 나온 기사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고 인터뷰를 행하며 관련문건을 추적(실험단계), 가설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고려하여 모아 둔 증거들을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하면 기사가 보도되는 것이다(p. 37).”


<참고문헌>
박범신(2011).『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서울: 문예중앙.
심재철(1996). 탐사보도 모델개발을 위한 시론. 한국언론연구원 편.『탐사보도』(37~99쪽). 서울: 한국언론연구원.
Ullmann, J.(1995). Investigative reporting. New York: St. Martin's press.
Weinberg, S.(1996). The reporter's handbook(3rd Eds). New York: Bedford/ St. Martin's press. 이용식 역(2000).『미국 기자들, 이렇게 취재한다』. 서울: 학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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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톡통톡2011.09.14 15:02

    가정추론을 취재에 사용하신다는 얘기를 들으니 무언가 과학수사도 떠오르고, 상상만 해도 흥미진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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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단서를 통해 사실을 밝혀내는 취재는 마치
      명탐정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네요~ㅋ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실에 근거한 보도겠죠?
      오늘도 방문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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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콩크림빵2011.09.15 09:48

    내용이 좀 어렵긴 했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저 소설도 엄청 재밌을 것 같아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