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20. 11: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이혜인, 2016 다독다독 기자단
[요약] 언어와 미디어가 결합했을 때의 영향력과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며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알아보기 위해 ‘광고언어의 힘’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
배우 성유리가 화장품을 한 숟갈 뜨면서 한 말이다. 사람들은 이제 이 카피를 듣자마자 특정 광고를 떠올린다. 또한 음식에서 추출한 영양을 피부에 공급하는 것을 ‘먹는다’라고 표현할 만큼 화장품이 순하고 신선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광고카피는 제품의 기능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고, 기업의 이미지 역시 매력적으로 형성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광고언어를 통해 언어와 미디어가 결합했을 때 대중들에게 주는 영향력과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며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더 자세히 취재하기 위해서 ‘광고언어의 힘’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립한글박물관에 다녀왔다.
전시는 「Ⅰ. 광고를 읽는 새로운 시각, 광고언어/ Ⅱ. 광고언어의 말맛/ Ⅲ. 광고언어의 글멋/ Ⅳ. 광고언어, 우리들의 자화상」,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Ⅰ. 광고를 읽는 새로운 시각, 광고 언어
전시 1부에서는 광고언어의 연혁을 소개한다. 1890년대에 독립신문에 게재되었던 최초의 한글 광고부터 1945년 이전의 광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시대의 광고를 보고 있자면 솔직함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직접적으로 약의 효능과 성분을 나열해 놓고, 제목 없이 가게 위치, 광고주 이름, 가격, 효능 등을 제시하는 광고가 있기 때문이다. 심미성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오늘날의 광고와 달리 철저히 정보성을 띠고 있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광고’를 대체하여 사용되었던 표현이다. ‘광고(廣告)’는 ‘넓을 광’에 ‘고할 고’ 자를 쓴다. 그리고 그 의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다음과 같다. (1. 세상에 널리 알림. 또는 그런 일. / 2. <언론>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하여 소비자에게 널리 알리는 의도적인 활동.) 그러나 예전에는 광고를 ‘고백’이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고백과 광고의 의미가 같았기 때문이라는데,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감추어 둔 것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함.’이라는 뜻을 가진 고백을 광고와 같은 뜻을 가진 단어로 해석해 사용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아마 속마음을 고백하듯이 솔직하다는 점이나 매력적이라는 것에서 광고와 일맥상통하는 표현으로 여겨진 듯싶다.
Ⅱ. 광고 언어의 말맛
광고 언어에서 말하는 ‘말맛’이란 무엇일까? 전시에서는 수많은 광고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광고의 특징을 ‘시각적 요소’와 어우러지는 ‘말맛’이라고 말하고 있다. 뻔하지 않으면서도 친근한 느낌의 광고 언어를 ‘말맛이 살아있는 광고언어’ 라고 이해하면 충분할 것 같다. 그런데 영상광고가 아닌 문구 중심의 광고의 경우, 짧고 강렬한 광고 언어가 핵심이다 보니, 한 글자에 따라서 말맛이 생길 수도,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말맛이 살아있는 광고 언어란 무엇일지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운 좋게도 전시에서는 카피라이터들이 추천한 ‘말맛’이 풍부한 광고 카피들을 소개해 주고 있었다. 카피라이터들은 단순한 추천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혹은 생각하지 못했던) 카피문구의 깊은 의미까지 설명해 준다. 또한 말맛이 살아있는 광고 카피 구상을 위한 카피라이터들과 유명 광고서적들의 조언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의 조언에 따르면, 광고 글쓰기의 세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제품명을 반복하라.
즉, 특별한 정보 없이도 쉽고 또렷하게 기억나도록 하라.
2. 제품 특성을 드러내라.
제품 특징을 직접적으로 과장하거나 반복하며, 때로는 경쟁 제품과 노골적으로 비교해라.
3. 색다르게 관심을 끌어라.
이미 알려진 정보를 흉내 내거나, 말과 글자를 새롭게 변형하여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라.
위 원칙들을 이용해 광고 문구를 기획해 보고, 기존의 광고들에 위 원칙들을 적용해서 비교하며 살펴보는 것도 신선하고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Ⅲ. 광고 언어의 글멋
광고 언어는 메시지를 더 정확하고 강렬하게, 오랫동안 기억되도록 전달하기 위해 활용된다. 그리고 그 활용 방식은 광고언어를 보통 언어와 차별화되도록 해 준다. 바로 글멋이다.
광고에서 사용되는 말은 시각화된 글자를 통해 표현된다. 어떤 느낌의 글씨체, 글자 표현 방식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즉, 글멋의 존재여부에 따라서 광고언어의 매력은 급속도로 변화한다. 이 때 사용되는 것들이 캘리그라피와 타이포그라피다.
캘리그라피는 아름다운 서체 라는 뜻의 그리스어 ‘Kalligraphia’에서 유래되어 전문적인 핸드레터링 기술를 의미한다. 타이포그라피는 좁은 의미에서는 활자를 사용한 디자인 또는 조판 중심의 기술과 미학을 가리키고, 넓은 의미에서는 활판 인쇄술, 글자꼴의 디자인, 레터링, 판짜기 방법, 편집 디자인, 가독성 등을 모두 포괄하는 총체적인 조형적 활동을 의미한다.
전시에서는 글씨체의 모양, 굵기 등으로 달라지는 느낌을 이론적인 설명뿐만 아니라 실제 광고를 보여주면서 생생하게 깨닫게 해준다. 전시장 내에는 스스로 캘리그라피를 해볼 수 있는 자리도 작게 마련되어 있다.
Ⅳ. 광고 언어, 우리들의 자화상
광고만큼 세태를 잘 반영하는 언어가 있을까? 광고 언어에는 당시의 유행어, 신조어 등이 빈번하게 사용될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 현실이 담겨있다. 일례로 화장품 브랜드 SK - Ⅱ의 최근 광고에서는 어린아이의 얼굴, 그리고 ‘제 꿈은 건물주가 되는 거에요’라고 쓰여있는 자막이 함께 사용되었다. 관계자는 어린아이의 사진과 함께 이러한 문구를 광고에 사용한 이유를 ‘이 광고가 살아가면서 잊어버린 '나만의 꿈'을 되찾기 위한 캠페인 이어서’라고 설명했지만 이 설명만 듣고서는 다소 뜬금없는 광고 캠페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광고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올해 초에 JTBC에서 초·중·고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을 조사하였는데 고등학생들의 장래희망 2위가 건물주, 임대업자였다고 한다. 현실 때문에 나만의 꿈을 잃어가는 세태를 ‘나만의 꿈을 찾자’라는 취지의 광고 캠페인에 반영해 활용한 것이다. 그만큼 광고는 세태, 현실, 가치관을 생생히 반영한다.
▲2001년도 공익광고
개인적으로 이 광고는 당시 시대상을 가장 잘 반영한 공익광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광고를 기점으로 우리가 ‘살색’이라고 부르던 색상은 ‘살구색’ 혹은 ‘연주황색’으로 바뀌었고, 시민의식까지 급속히 변화하진 못했지만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에도 조금은 변화가 생겼음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다문화 사회로 변화해가는 과정 중이었던 2000년대 초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낮은 시민의식을 보여준 국민들에 변화를 촉구하는 이 광고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의미를 역설한다.
Ⅴ. 광고 언어, 미디어 + 커뮤니케이션 + 언어 결합체의 대명사가 되다
광고 언어의 힘 전시를 관람하면서 내가 정의하고 있던, 혹은 지식백과에서 정의하고 있던 광고의 의미가 풍부해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광고는 언어와 미디어의 결합으로 인한 산물이며, 광고를 수용하는 대중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없다면, 그래서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면 어떤 힘도, 공감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체를 통해 대중들과 가장 활발한 상호작용을 하는 언어를 뽑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광고일 것이라는 ‘광고언어의 힘’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던 전시였다.
광고 언어의 힘
장소 : 국립한글박물관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9 국립한글박물관
전시회 기간 : 2016년 7월 28일 ~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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