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17. 17: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장선화, 서울경제신문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Ph.D)
[요약] 지난 8일 미국 대선이 진행되었습니다. 예상을 엎고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였습니다. 트럼프는 12월 19일 선거인단 투표를 거쳐 내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공식적으로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 됩니다. 미국 대선의 흥미로운 점은 한국과 달리 언론사가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대선 결과와 한국과 미국 언론의 차이점을 전달합니다.
#트럼프 당선, 왜 예측 못 했나?
반란이자 혁명이다. ‘정치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주류에서 밀려난 블루칼라 백인들, 이른바 ‘분노한 백인들(angry white)’이 그를 선택했다. 하지만 대선 기간 그를 공개 지지한 언론사는 100개 중 라스베이거스 리뷰저널과 플로리다 타임스유니온 2곳뿐이었다. 클린턴을 지지한 언론사는 57곳이었다. 그는 왜 언론사의 공개지지를 단 2곳밖에 받지 못했을까? 미국의 보호주의 무역강화, 유색인종과의 갈등조장, 탈세논란에 막말과 음담패설 그리고 성 추문 등이 잇따라 터져 나와 주요 신문사가 그를 감히 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지난 10월 초 탈의실에서 음담패설을 하는 그의 목소리가 담긴 녹취 파일을 워싱턴 포스트가 공개하면서 트럼프의 당선은 사실상 물 건너간 듯 보였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이 개표 직전까지 클린턴의 승리를 장담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던 ‘앵그리 화이트’의 목소리는 무시하고 클린턴에 유리한 보도로 여론을 몰아가려 했다. 그리고 이것은 실패했다. 지난 3일 투표를 닷새 앞두고 실시한 갤럽조사로는 유권자의 52%가 ‘언론이 클린턴에 편향돼 있다’고 응답할 정도였다. 개표가 끝난 후 정치 분석가들은 일제히 ‘미국의 언론이 루저가 된 날’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언론에 퍼부었다. 언론의 정치적 편향으로 인한 비난은 어느 정도 예측된 결과이다. 2008년 여론조사기관 GSS 조사 응답자 중 45%가 ‘언론에서 말하는 어떤 것도 믿기 힘들다’고 답했다. 이는 1956년 여론조사기관 ANES의 조사 결과를 보면 신뢰도가 얼마나 하락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미국 시민 중 언론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인 66%였다. 50년 만에 미국 언론 신뢰도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미국 언론의 후보 공개지지 이유는?
미국 언론은 특정 정당, 정치 이념 특정 후보 공개지지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 언론이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의제를 설정하고 선거 정국을 주도해 온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투명하게 공개 지지를 선언하는 것이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언론은 후보자 공개지지에 앞서 그들의 과거행적을 낱낱이 추적해서 보도한다. 후보자들의 정책에 대해서 낱낱이 분석하고 비교해서 보도한다. 사생활도 그들의 추적보도 거리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후보가 유세 도중에 하차하기도 한다. 1988년 민주당의 대선 후보 예비경선에서 1위를 달렸던 게리 하트 후보는 마이애미 헤럴드 등 언론의 집요한 추적에 그의 섹스 스캔들이 드러나 불명예 퇴진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대선 당시 거짓말이나 성격 문제 등으로 언론의 추적을 받았지만, 가까스로 시험을 통과했다.
이처럼 주요 언론사들의 후보자에 대한 과거행적을 추적 보도하는 이유는 유권자들이 미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기 지도자를 제대로 뽑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언론사는 미국의 대통령으로 적합한 인물을 골라 공개적인 지지 선언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왜 공개지지를 하지 못 할까?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 언론은 실정법상 특정 정당이나 대선 후보를 지지할 수 없다.
공직선거법
제 8조의3(선거기사심의위원회
③ 선거기사심의위원회는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른 신문, 「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호에 따른 잡지·정보간행물·전자간행물·기타간행물 및 「뉴스통신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호에 따른 뉴스통신(이하 이 조 및 제8조의4에서 “정기간행물등”이라 한다)에 게재된 선거기사의 공정 여부를 조사하여야 하고, 조사결과 선거기사의 내용이 공정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해당 기사의 내용에 관한 사과문 또는 정정보도문의 게재를 결정하여 이를 언론중재위원회에 통보하여야 하며, 언론중재위원회는 불공정한 선거기사를 게재한 정기간행물등을 발행한 자(이하 이 조 및 제8조의4에서 “언론사”라 한다)에 대하여 그 사과문 또는 정정보도문의 게재를 지체 없이 명하여야 한다.<개정 2008.2.29, 2009.7.31>
제96조(허위논평·보도 등 금지<개정 2012.2.29>)
① 누구든지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결과를 왜곡하여 공표 또는 보도할 수 없다.<개정 2012.2.29>
② 방송·신문·통신·잡지, 그 밖의 간행물을 경영·관리하는 자 또는 편집·취재·집필·보도하는 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1. 특정 후보자를 당선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선거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보도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보도 또는 논평을 하는 행위
2. 여론조사결과 등과 같은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지 아니하고 선거결과를 예측하는 보도를 하는 행위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언론은 특정정당 및 후보의지지 표명하면 공정보도에 위배가 되며, 선거 기사 심의위원회가 선거와 관련한 기사의 공정성 여부를 조사해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언론사에 사과문 혹은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언론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선거운동에 준하는 행위로 판단하고 있다.
언론계와 학계는 공개적 후보자 지지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토론해 왔다.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찬성하는 측과 아직 시기상조라고 반대하는 측이 맞서고 있다. 찬성 측은 우리나라 언론사는 간접적·음성적으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보도해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어 대선 후보와 정당을 공개적으로 밝히면 언론 보도는 더 공정하고 투명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대 의견은 우리나라의 언론 풍토가 정파성이 강해 지지 후보를 공개하면 편파 보도가 더욱 심해져 최소한의 공정성마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정치 기사에 대한 우리나라 언론의 불공정 편파보도의 예를 양적 질적으로 구분했다. 양적으로는 기사의 위치 선정, 표제 및 부제의 크기, 할당 지면의 크기, 첨부한 사진 크기의 불균형 등의 기법으로 교묘하게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유리하게 편집하고 있다는 것. 질적으로는 기사의 내용을 자신들이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후보자에게 유리하다면 길게 쓰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단신 혹은 보도자제 등으로 처리해버리는 식이다.
언론이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공정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선행요건이 있다. 언론의 공정성과 신뢰도가 높아야 한다. 지난 7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영국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와 공동으로 연구한 ‘한국뉴스생태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10가지 지표’에 따르면 뉴스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이 조사대상 26개국 중 22위로 하위권을 차지했다.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은 우리나라의 아픈 근현대 역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독재정권과 군사정권 등을 거치면서 정권이 언론을 길들이기 위해 ‘당근과 채찍’ 전략을 구사해 왔다. 언론사의 편집권을 좌지우지하는 바람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언론계가 시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선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때 언론이 제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기에 앞서 우리는 언론이 정·재계와의 유착관계를 끊고 민주사회 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역할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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