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9. 15: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미디어 리터러시
이홍천, 일본 도쿄도시대 교수
[요약] 지난 9월 12일 한국 경주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은 지진 관측을 시작한 1978년 이래 규모가 가장 큰 지진이었습니다. 경주 뉴스를 다룬 한국 언론은 과장 보도로 경주 지역이 폐허가 된 것처럼 보도해 이재민들에게 과다한 스트레스를 안겨주었고,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에 반해, 일본의 지진 보도는 '인명 우선 보도'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재난보도 형식을 비교하여 알려드립니다.
“긴급 지진 속보”, “긴급 지진 속보가 발령됐습니다. 미야기현 , 이와데현 , 후쿠시마현 , 아키타현 , 야마가타현입니다. 다치지 않도록 안전을 확보해 주십시오. 넘어지기 쉬운 가구로부터 떨어져 주세요. 지금 국회에서도 흔들림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50초 참의원 결산위원회를 중계하는 TV 화면에 동일본 대지진을 알리는 자막과 함께 아나운서의 침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디어를 통해 생중계된 21세기 최악의 재해가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였다. 다음 날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에서 3호기가 폭발하는 충격적인 영상이 전 세계로 중계됐다. 원전 사고라고하면 독자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미디어에 처음으로 보도된 것은 사고가 발생한 이후 며칠이 지나서였다.
#과장된 경주 지진 보도
전례가 없는 거대한 재난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방송 화면에서는 재해의 참상을 알리는 장면의 등장 횟수가 줄어들었다. 지진 발생 직후는 쓰나미 영상과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는 영상을 내보냈지만 점점 이재민의 안부 정보, 피해 지역의 인프라 안전 정보, 피난소에서 필요한 물자에 대한 정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본 언론의 이 같은 재해보도는 한신 아와지 대지진(이하 한신 대지진) 보도의 교훈을 살린 것이다. 한신 대지진은 1994년 오사카, 고베, 아와지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7의 도시직하형 지진이다. 겨우 11초간 일어난 지진으로 6,434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1945년 이후 일본 최대의 자연재해는 24만 9,180채의 건물을 붕괴시키고 10조 엔에 달하는 피해를 입혔다. 오사카·고베 지역은 1596년 이후 큰 지진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없는 지진 안전지대였다. 지진 대책을 소홀히 한 게 피해를 키웠다.
지난 9월 12일 한국 경주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은 한신 지진과 유사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경주 지진은 지진 관측을 시작한 1978년 이래 규모가 가장 큰 지진이었다. 본 지진 발생 이틀 뒤에도 규모 4.5의 여진이 이어져 지역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경주 뉴스를 다룬 한국 언론은 과장 보도로 경주 지역이 폐허가 된 것처럼 보도해서 이재민들에게 과다한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재해 대국(재해 선진국)이라고 하는 일본은 특히 자연재해에 관해서는 재해 백화점이라고 할 만큼 연중 다양한 재해가 발생한다. 일본의 <방재백서>(2014)에 따르면 일본은 국토 면적으로는 전 세계의 0.25%에 불과하지만 지진 발생 횟수로는 18.5%, 화산 활동은 7.1%에 달한다. 1994년부터 2013년까지 재해 사망자의 91.6%인 2만5,078명이 지진, 쓰나미의 피해를 입었다.
재해보도는 일본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일본 언론은 재해를 어떻게 보도하고, 재해보도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으며,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 했는지를 살펴본다.
재해는 정보의 공백을 만들어 낸다. 대규모 재해가 발생하면 피해를 입은 지역의 정보를 파악하기 힘들다. 현지의 정보 인프라와 함께 관공서도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피해 지역에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 정보의 공백화를 초래한다. 정보의 공백화는 이재민들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피해 지역에 2차 재해를 가져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본 지진 보도의 실제
한신 대지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언론 보도가 초기 ‘피해 중심 보도’에서 ‘이재민 중심 보도’로 바뀐 것은 한신 대지진의 교훈을 살린 것이다. 1994년 발생한 한신 대지진에서 언론은 검은 연기가 뒤덮인 시가지 장면, 옆으로 넘어진 고가도로, 도로를 가로막고 쓰러진 빌딩 등 비일상적인 영상을 반복해서 방송했다. 효과음을 사용해서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한 방송국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영상은 현지 언론사들이 피해를 입은 관계로 도쿄에서 편집된 것들이다. 피해 지역의 피해 정도를 직접 체감할 수 없는 만큼 이재민에 대한 배려보다는 더 자극적인 영상, 더 극적인 영상을 만들려는 직업정신(?)이 피해를 더 부각하는 방송을 만들어 낸 것이다.
피해를 강조하는 영상들로 뉴스 시간이 채워지다 보니 정작 이재민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피해 현장의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서 이재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뉴스도 적지 않았다. 이재민들의 슬픔, 절망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은 재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이재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아니다. 이런 현상은 재해보도도 방재의 일부분이라는 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재해를 보도하는 뉴스와 자국의 재해를 보도하는 뉴스에 별반 차이가 없었다.
동일본 대지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재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킨 것은 계속되는 여진, 쓰나미, 원전 사고뿐만이 아니다. 피해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 부족과 가족, 친지, 지인들의 안부가 파악되지 않는 불안감, 피해 지역에 대한 식료품, 약품, 의료 지원 여부의 불안감이 추가된다. 이런 가운데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입수되지 않는 것은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동일본 대지진은 특히 원전이 폭발하고 대규모 쓰나미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를 보도하는 뉴스와 인터넷 정보는 급격하게 늘어났지만 , 정작 언론사뿐만 아니라 관계 기관조차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정부 내부의 연락 체계 미비, 관계 지자체에 대한 불충분한 정보 제공 및 연락, 관계 기관 간의 의사소통 부족이 이재민의 피난에 혼란을 초래했다. 언론이 이를 그대로 보도하면서 혼란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에다노 관방장관의 “(방사능 사고는) 바로 영향은 없다”는 발언이 반복해서 방송되고 멜트다운에 대한 정보 개시, 긴급 시 방사능 영향 예측 네트워크 시스템 (SPEEDI)의 시뮬레이션 정보 개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언론 보도는 정부가 정보를 숨기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 사회적 불신이 더욱 팽배해지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재민들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가 정보 부족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언론들은 한신 대지진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각 방송사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방송 뉴스를 내보내기 시작했다.[표 참조] NHK는 라이브방송 유스트림, 니코니코동화, 포털 사이트 야후를 통해서 3월 11일부터 25일까지 TV 방송을 인터넷에 동시 중계했다. 재해 지역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서 TV를 시청할 수 없는 현지 여건을 고려한 것이다. 또 지진 발생 이후 한 시간 동안 쓰나미에 대해서 집중 보도하는 데 힘을 쏟았다.[그림 참조] 쓰나미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재난보도 원칙
일본신문협회는 보도 윤리 규정에 재해를 취재할 경우에는 이재민의 감정을 고려하고, 집단 취재나 강압적인 취재로 이재민과 가족들에게 위압감을 주지 말아야 하며, 주변 환경을 훼손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NHK는 ‘방재/감재 보도’를 재해보도의 기본 방침으로 삼고 있다. ‘NHK 방송가이드라인’(2015)에 따르면 재해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 방재/감재 보도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선 일상적으로 방재 문제를 다뤄서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시청자들의 지식을 높여야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재해가 발생한 이후 2차 재해가 발생하지 않게 한다는 ‘감재’도 추가됐다. 가이드라인에는 지진/쓰나미, 기상재해, 화산 분화 등 재해를 구분해서 NHK의 보도 내용과 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NHK는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통상적인 편성에서 재해방송으로 전환하는 권한을 보도국장이 가지고 있다. 민방은 편성국장이 방송 편성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한신 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일본의 재해보도 원칙이 ‘피해 보도’에서 ‘인명 우선 보도’로 바뀌었다. 니혼테레비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피해 상황을 전달’한다는 기존 방침에서 ‘생명을 우선’한다는 것으로 보도 방침을 전환했다. 니혼테레비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발생 당일 쓰나미 경보가 발령된 이후에도 즉각 재해보도 체제로 전환하지 않았다. 쓰나미 도달 예상 지도와 주변 해변 영상을 짧게 비춘 다음 도쿄 오다이바에 발생한 화재 현장을 연결했다. 화면 아래쪽에는 ‘미야기 북부 진도 7’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그렇지만 해변 중계를 통해서 쓰나미 도달 예상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고 피난할 것을 호소한 NHK와 테레비아사히와는 대조를 보였다.
이런 실패를 토대로 니혼테레비는 연 2회의 재해보도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는 지진 정보가 제공되면 화면 오른쪽 상단에 ‘쓰나미 긴급 대피’라고 표시하면서 언제, 어디서, 어느 정도의 쓰나미가 도달하는지 알기 쉽게 표시하도록 했다. 아나운서도 재해 정보를 전달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
과거 재해보도의 교훈을 살려서 각 방송사들이 협력한 사례도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다. 시각 장애인들을 배려해서 재해 상황을 알리는 경보, 주의보의 색깔을 통일했다. 큰 쓰나미는 보라색, 쓰나미는 황색, 배경은 회색, 바다는 청색으로 표시를 통일했다. 방송사마다 경보, 주의보를 알리는 색깔이 달라서 시각 장애인들이 혼란에 빠진다는 항의가 있었다.
안부 방송을 더욱 강화했다. 안부 방송은 1964년 니가타 지진 때 처음 실시한 이래 재해 발생 때마다 실시되어 재해방송의 기본 패턴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재해 발생 시 이재민이 가장 알고 싶은 정보는 가족의 안부다. NHK는 3만1,000건의 안부 정보 의뢰를 받아서 1만 건 정도를 방송했다. 어떤 정보를 방송할 것인지는 담당자의 재량에 전적으로 맡긴다. 제공받은 정보를 가능한 한 모두 방송하지만, 제공된 정보에서 장난 정보나 유언비어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어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어떻게 분별하느냐가 관건이다.
#진정한 재난보도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인터넷을 이용해서 TV 방송을 동시 중계한 점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단전으로 TV 시청이 불가능한 상황에도 인터넷 회선은 사용 가능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동시중계는 이재민들의 정보 부족을 해소하는 데 큰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그러나 현지의 언론 인프라가 피해를 입은 관계로 언론사 자체도 정보를 제대로 입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터넷상의 부정확한 정보를 확인 없이 내보내서 혼란을 초래한 경우도 있다.
두 번째는 재해보도에 오보가 발생하기 쉽다는 점이다. 재해 지역의 피해를 보도하는 것은 미디어 본래의 역할이지만, 재해 시에는 오보의 위험성이 커진다. 취재는 지자체나 재해대책본부, 경찰, 소방청 등의 관련 기관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재해 시에는 이들 기관조차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부정확한 정보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모이기 쉽다. 이를 그대로 보도에 반영한다면 오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는 이재민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 정보 요구의 차이를 어떻게 반영하느냐의 문제다. 피해 지역 이외의 시청자들은 피해 상황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한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재해보도는 피해가 많은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보도는 시청자에게 피해 정도를 과도하게 전달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반면에 이재민들은 피해의 전모를 포함해서 주택의 안전문제, 도로 교량 등 주변 인프라의 안전 정보에 더 관심이 많다.
재해보도가 사실 보도에 치중하게 되면 자칫 ‘책임 추구형’ 보도에 빠지기 쉽다. 언론은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사실 보도→누구의 책임인가(책임자 찾기)→처분/처벌/사과 요구→ (책임자의 사과로) 보도 종료’라는 순서로 일단락 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보도 형태는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유용한 방법일 수 있겠지만 피해 규모가 크고 복구 기간이 긴 재해의 재발 방지에는 유효하지 않다.
일본의 재해보도는 책임 추구형에서 ‘원인 규명형’으로 바뀌고 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원인은 무엇인가→어떻게 하면 방지할 수 있는가→ 재발 방지(피해 축소)’라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제물 사냥에 몰두 하기보다는 재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교훈을 살리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더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방재의 기본이 지역사회의 자조력, 협동력을 키우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경찰, 소방의 도움보다는 이웃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는 경우가 더 많다.
눈앞에 벌어진 재해의 피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이재민들에게 위험을 알리고, 불안감을 줄이고, 사회적 관심을 끌어모아서 이들을 격려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닐까. 재해 대국인 일본의 언론 활동에서 우리가 조금은 참조해야 할 부분이다.
[참고 자료]
'다독다독, 다시보기 > 미디어 리터러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근 한국 영화 속 지옥도의 풍경(터널, 부산행, 아수라 3편의 영화를 중심으로) (0) | 2016.12.15 |
---|---|
“NIE(신문활용교육)로 생각하는 힘을 키웠어요” ‘서울 동명여자고등학교 3학년 장다연 학생 인터뷰’ (0) | 2016.12.08 |
정보 복지는 미디어 리터러시에서부터 (0) | 2016.11.10 |
데이터를 통한 미디어의 이해 (0) | 2016.10.06 |
신문읽기와 스크랩 어떻게 해야 할까? (0) | 2016.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