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영화 속 지옥도의 풍경(터널, 부산행, 아수라 3편의 영화를 중심으로)

2016. 12. 15. 11:00다독다독, 다시보기/미디어 리터러시



박명호, 서강대 언론대학원 미디어교육 석사·미디어 교육가


[요약] 2016년 터널, 부산행, 아수라 등 다수의 한국 영화가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지옥도라는 테마입니다. 영화가 은유적으로 혹은 사실적으로 지옥과도 같은 풍경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 영화가 던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메시지는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봤습니다.


2016년은 한국 영화 풍년의 해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의 영화가 연달아 개봉하였고, 또 그에 맞추어 영화 담론도 넘쳐났다. 영화인들에게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나 큰 잔치와 같은 1년이었다.


#2016 한국영화의 테마=지옥도?

<!--[if !supportEmptyParas]--> <!--[endif]-->

올해 이슈가 되었던 영화들을 돌아보면, ‘지옥도라고 하는 테마가 떠오른다. 영화가 은유적(metaphor)으로, 혹은 사실적(reality)으로 한국 사회의 지옥과도 같은 풍경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한 편의 영화가 기획되고, 또 그것이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뜨거운 담론을 형성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특히 많은 관객에게 인상을 남긴 3편의 영화 터널’, ‘부산행’, ‘아수라를 통해서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영화 <부산행>은 천만 영화의 반열에 오를 만큼 화제가 되었다.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가 이렇게까지 흥행을 할 것을 예상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인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가 시행착오 없이 너무 큰 성공을 거둔 것도 놀랍다. 이 영화가 이토록 큰 이슈가 된 것은 단순히 좀비 소재의 신선함과 가족애의 감동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안에는 은유적으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그려주고 있다. 특히 영화를 보면 가장 떠오르는 기억은 얼마 전 한국 사회의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인 세월호 사건이다. 그것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그 무시무시한 트라우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우리 안에 있는 그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열차에서 자기 혼자 살겠다고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는 버스회사 전무의 태도를 보면, 세월호 사건 때 침몰하는 배에서 혼자 살기 위해 나온 선장이 떠오른다. 또 하필 열차에 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타고 있어서 그들이 어른의 이기심으로 첫 희생자로 죽임을 당할 때 더욱 가슴이 아프고, 우리의 트라우마를 더 강하게 찌른다.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 정부는 무능해서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지켜야 하는 설정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들추어내고 있다.


▲영화 '부산행' 의 한 장면(출처:네이버 영화)


부산행 열차는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이다. 그 공간은 매우 영화적인 공간이면서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은유적인 공간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많은 관객의 공감을 일으키는 영화 속 메시지

<!--[if !supportEmptyParas]--> <!--[endif]-->

김성훈 감독, 하정우 주연의 <터널>도 꽤 흥행에 성공한 영화다. 그런데 그 성공 이유가 단순한 오락적 재미와 배우의 스타성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이 영화 역시 이야기 속에 세월호 사건의 트라우마와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 등을 들추어내고 있는 것이다. 운전 중 터널이 무너져 그 안에 갇히게 된 이정수(하정우)는 곧 구출될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그 기대는 점점 절망과 분노로 바뀌게 된다. 그가 구출되지 못하는 이유는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 때문이다. 정부는 터널에 갇힌 사람을 빨리 구하지 않고, 효율과 경제성을 따지며 그를 구할지 말지를 고민한다. 특히 그를 구할지 말지 토론회까지 여는 모습은 사회 시스템과 지도층의 태도가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런데 그 장면을 마냥 웃으며 넘길 수 없는 이유는 그런 어이없는 모습이 우리가 얼마 전 경험한 상황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토론회 장면에서 모두 우왕좌왕할 때, 구조대원인 오달수의 대사는 굉장히 교훈적이지만, 우리의 가슴을 찌르는 말이다. 저기요. 저 안에 있는 게 도룡뇽이 아니라 사람이라고요. 자꾸 까먹는 거 같아서...저기 사람이 갇혀있습니다.” 그의 말은 세월호 사건 때 너무 어이없이 학생들을 구조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를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


▲영화 '터널' 의 포스터(출처:네이버 영화)


이처럼 감독은 터널 속에서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애쓰는 장면도 잘 묘사하고 있지만, 터널 밖 사회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에도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능한 정부와 특종에 눈이 먼 언론의 모습, 부실을 낳은 시공업체에 대한 모습에 대해서 말이다. 극적으로 이정수를 구조한 이후에도 빨리 응급실에 데려가지 않고, 기념사진 찍기에 바쁜 언론과 정치인들의 풍경을 볼 때면 그야말로 지옥 같고 아수라장과 같은 우리 사회의 풍경을 거울처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영화 속 주인공, 누구의 모습일까?

<!--[if !supportEmptyParas]--> <!--[endif]-->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는 좀 더 리얼한 묘사로 지옥 같은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영화는 지역 재개발로 수천억이 뿌려지는 상황 속에서 비리를 저지르고자 하는 시장(황정민)과 그 뒤를 봐주는 형사(정우성), 그리고 이들의 비리를 캐내려는 검사(곽도원)의 대결을 그리는 이야기이다. 그야말로 수컷들의 세계다. 영화는 대체로 어두운 밤의 이미지가 많고, 또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사건들이 이루어짐으로써 인물들의 답답한 내면을 시각적으로 전달해준다. 특히나 주인공인 형사 한도경(정우성)의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점점 악과 어둠의 세계 속으로 젖어 들어가는 아이러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지점들이 많다. 그는 근원적으로 악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아픈 아내를 돌보고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뿐인데, 그 평범함 속에서 악이 꽃 피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악은 점점 더 큰 물살이 되어 퍼져나가고, 결국 그의 운명은 비참한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인 장례식장에서의 혈흔이 난무하는 싸움 장면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그리고 그 난장판 풍경 속에 왠지 우리 사회의 모습과 우리 자신의 실루엣이 오버랩 된다. 정말 다시 보기 힘든 지옥 같은 장면이다.


▲'이곳이 지옥이다'라는 문장이 적힌 영화 '아수라' 의 포스터(출처:네이버 영화)


이처럼 올해 이슈가 되었던 3편의 영화에는 단순한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를 넘어서서 우리 사회의 풍경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풍경은 한 마디로 지옥도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회피하는 모습, 심지어 다른 사람의 재앙을 하나의 특종거리로 여기는 모습, 또 서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인까지 저지르는 모습 등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이다. 그리고 영화 속 풍경은 우리 내면에 있는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지옥 같은 사건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영화와 세상은 언제나 그렇게 서로 점점 더 닮아가고, 요즘은 세상 자체가 하나의 영화 스토리처럼 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