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2016. 11. 28. 17: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최일도,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팀 연구위원



세계 시장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뉴욕에선 더 이상 전통적 방식의 광고는 없었다. 광고의 도시라는 뉴욕을 생각하며 입국심사를 기다리던 JFK국제공항 대합실에선 단 두 개의 브랜드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는 대합실 시계에 부착된 ‘ROLEX’였고 다른 하나는 기둥에 새겨진 ‘I NEWYORK' 이라는 도시브랜드 로고였다. 뉴욕의 공공시설운영 관련 제도의 탓도 있겠지만, 공항 밖 승차장 주변이나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서도 이렇다 할 광고물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공항버스나 택시 캡 정도만 이 광고에 활용되고 있을 뿐이었다.



타임스퀘어 주변 빌보드 광고나 네온사인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것은 하나의 상징에 불과했다. 현지 마케터의 말을 빌리자면 과거의 매체는 상징적 커뮤니티 역할로 활용하고 실질적 마케팅은 모바일 등을 이용한다.”고 했다. 기존의 광고는 무조건 소비자 접점 중심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으로 대체 되었다는 것이다.

 

그 형태가 대중매체를 이용한 것이 아니더라도 마케팅 효과가 예측된다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특히 모바일을 통한 소비자 맞춤형 메시지가 커다란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모바일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지만, 뉴욕은 모바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전시장을 보는 듯했다. 모바일 자체의 장점과 기존 매체의 특성을 결합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국내에도 이미 활성화되고 있는 모바일 연동형 광고는 기존 매체의 존재는 인정하되 기능과 역할을 달리하는 형태로 변화시켰다. 기존에는 잡지나 포스터에 알리고 싶은 정보와 메시지를 모두 담았지만, 지금은 상징적인 이미지만을 부여하고 존재를 인식시키는 역할만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잡지나 포스터에 인쇄된 QR코드를 스캔함으로써 알게 된다. 실질적 잠재 소비자를 추려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든다. 국내에서도 단순한 광고보다는 마케팅 목적 달성을 위한 광범위한 커뮤니케이션 활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뉴욕의 변화는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이미 오래 전 뉴욕타임스가 웹 플랫폼으로 전환했을 정도로 변화에 민감한 곳이니 말이다.


뉴욕의 마케팅 현황을 볼 때 앞으로는 광고가 아니라 큐레이팅(curating)이 요구된다고 한다. 인력도 당연히 크리에이티브 능력을 지닌 큐레이터가 필요하다. 세계적 광고제로 꼽히는 뉴욕광고제. 깐느광고제 등의 표제에서 광고(advertising)란 어휘가 창의력(creativity)으로 대체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창의력을 지닌 전문 인력이 어떤 소비자 접점에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뉴욕에서 만난 미디어 산업 관계자들은 모두 이런 창의력을 지닌 전문 인력은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 교육의 핵심으로는 인문학과 예술을 꼽았다.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문학, 음악, 스포츠, 미술, 무용 등 수많은 콘텐츠를 접하고 정서(emotion)’가 풍부해야만 창의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서사소한 변화나 움직임에도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 한다. 정서가 부족한 사람은 가로수에 단풍이나 길가의 풀꽃을 보지 못하지만, 정서가 풍부한 사람은 단풍의 색깔 변화까지 마음에 담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정서가 풍부한 사람이 소비자의 세심한 부분까지 관찰할 수 있고 예리한 메시지를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교육에서 인문학의 비중이 큰 이유를 알 수 있게 한다. 아쉬운 건 국내 교육환경이다. 근래 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해 인문학을 강화한다는 접근이 시도되고 있지만, 실제 제도권 교육 현장에서는 외면되고 있다. 인문학이란 것이 당장 재화나 용역 가치로 연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을 앞둔 수험생이 선호하는 전공은 천편일률적이다.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광고시장의 변화는 매체 변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른바 4대 매체로 불리던 신문, TV, 잡지, 라디오는 뉴스란 콘텐츠를 상품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디지털 융합 기술 환경에서는 광고 플랫폼으로서 가치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뉴스코퍼레이션과 같은 회사의 성장 동력을 보더라도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소비자는 뉴스, 드라마, 영화, 오락, 스포츠 등 영역을 구분해 선택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관심이 있는 것을 소비한다. 이러한 소비자 성향에 시간과 공간적 제약 해소라는 장점이 결합되어 모바일 시장이 급증하고 있는 배경이 된 것이다.


뉴욕의 마케터들이 말하는 내용은 이렇다. 슈퍼볼이나 로즈볼 TV 중계에 천문학적 광고비가 투여되는 이유는 TV의 매체력 때문이 아니라 미국 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풋볼의 존재감 때문이란다. 그 존재감이 노출 효과를 극대화하고 어마어마한 소비자 접점을 만들어 내는 핵심이다. 이제 광고는 매체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존재감을 만들어 내거나 순간순간 다양한 소비자 접점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표현력과 방법 그리고 접점을 찾거나 만드는 창의력이 현재와 미래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해답이다.

 

우려가 되는 것은 글로벌 시장이 개방화 물결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 매체 대행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고 아이디어를 덤으로 제공하는 광고 산업의 미래다. 창의적인 인재가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지적재산권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다. 공학적 기반에서 무언가 구조물이나 형태가 나타나는 것은 가치로 쉽게 환산하지만,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표현이나 아이디어는 덤으로 인식하는 풍토를 바꿔야 한다.

 

소비자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예민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통적인 신화(myth)’에 연결되어 있다. 창의적 전문 인력은 세분화 된 소비자 그룹의 특성과 생활방식을 읽고 접점을 찾아야 한다. 짧게는 생활의 단면(slice of life)을 보지만 길게는 생애시기(life cycle)별 접점을 찾는 것이다. 그 접점과 메시지는 새로운 기술이 연결해준다. 새로운 기술은 수단일 수도 있지만, 소비자에게 하나의 목적일 수도 있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산과 유통, 소비가 이루어지고 시장이 움직인다. 이 시장을 설계하고 관찰하며 변화를 주도하는 큐레이터를 지금 뉴욕에선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KPF톡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