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못 읽는 교사들, 책 안 읽는 교사들

2011. 10. 4. 09:16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어떤 교사가 좋은 교사일까요? 그 답은 아마도 이 세상에 있는 교사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존재할 겁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생각할 줄 알고, 아이들을 생각하게 하는 교사’가 좋은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아, 배고프다’, ‘오늘은 뭘 하고 놀지?’, ‘근의 공식은 이렇게 적용하는 것이구나’, 이런 것은 ‘생각나는’ 것이지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 교실이 이렇게 소란스러운 이유가 뭘까?’, ‘자율학습을 강요하는 우리 담임은 무슨 생각을 가졌기에 그럴까?’와 같이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것입니다. 교사는 바로 그런 ‘생각하기’를 유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현실은 어떨까요? 생각하는 아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혹 그런 아이가 있으면 ‘반항아’로 취급을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러한 질문은 학교 현장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제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이 한 권 있습니다. 홍세화 선생의 『생각의 좌표』라는 책입니다. 거기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지금도 이 문장은 제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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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은 그렇지 않다. 내가 자라는 동안 꾸역꾸역 들어온다. 나에게 다가오는 생각들이 내 삶을 위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또는 나에게 내 삶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인지, 지배세력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도록 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는 동안에도 내 안에 스며들어 왔다. 내 안에 음식물을 넣은 주체는 나와 나를 위하는 부모뿐이지만, 나에게 생각을 집어넣은 주체는 나와 내 부모만이 아니다. 나와 내 부모, 교사, 이웃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자유롭기 어려운 이 ‘사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안에 채우는 ‘생각’이나 ‘주장’ 또는 ‘이념’은 이 사회에서 강조되는, 이 사회를 관통하는 것들로써 이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요구하는 ‘지배적인 그것’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내 안에 생각을 집어넣는 실제 주체인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춰 나가면서 기존에 형성된 생각을 끊임없이 수정하여 나의 주체성을 확장하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인도, 내 삶의 진정한 주인도 되기 어렵다.”(22쪽)



대한민국의 고등학교는 ‘수능’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그게 싫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같은 교과서로 같은 내용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교사가 해야 하는 전부일까요?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 생각하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교사라면 응당 해야 할 의무입니다.

그런데, 교직에 몸담고 있는 제가 보기에는 ‘내 생각이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지’에 대한 인식을 하고 있는 교사를 좀처럼 보기가 힘이 듭니다. 내 생각이 이 사회가 강요하는 생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 

간혹 이 사회가 강요하는 생각을 과감히 거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소위 왼쪽 편에 서있다고 매도를 해버립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생각하기’를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하기’를 멈춰버린 교사들에게서 ‘생각하는’ 학생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생각하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독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실을 어떠할까요? 독서가 생활화된 교사는 거의 없습니다. 그게 그들의 의무인데도 말이죠. 이 글을 쓰며 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다들 잡무와 교재연구로 바쁩니다. 몇몇 한가한 선생님들은 인터넷 뉴스를 보고 계시군요.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제 집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 책을 읽지 않아?”, 그러자 이런 대답을 합니다. “교재연구하고 잡무 하느라 책 볼 시간이 안 나.” 또 다른 선생님께도 같은 질문을 드렸습니다. “짬나는 시간에는 그냥 인터넷으로 뉴스를 봐요. 책은 일년에 몇 권 정도 읽긴 해요.” 제 주변의 일을 일반화하기에는 성급합니다만, 교사들 너무 책을 안 읽습니다. 물론, 다른 직종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잡무에 시달리고, 교재 연구에 바쁜 교사의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까요? 핑계입니다. 

요 며칠 집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보야, 어제 『톨스토이 단편선』의 「바보 이반」을 읽으며 한참을 웃었어”라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저는 순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내용인지 대충은 알겠는데, 어느 부분이 웃기던데?”라고 물었습니다 집사람은 한참을 종알종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웃지 못한 부분이 집사람에게는 웃겼나 봅니다. 그리고는 책한 권 읽지 않던 집사람에게 변화를 끌어낸 것 같아 기뻤습니다.

교사가 정말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독서가 교사에게 가지는 중요성을 몰라서 그런 것이고, 게을러서 그런 것일 뿐입니다. 수학 선생이 수업 중에 짬을 내어서 톨스토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직무유기일까요? 아닙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더욱 필요한 일입니다. 각자의 과목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은 기본이고, 각자의 전공을 통해 습득한 안목을 스펙트럼 삼아 아이들의 독서활동을 도와주는 것은 필수입니다. 그것이 학교교육이 갖는 최고의 잇점이 아니겠습니까?

학교에서 한 자리 하는 분들일수록 더 많은 독서가 필요합니다. ‘상급기관의 생각이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반성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슬픕니다. 높은 직위로 앉은 분들은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로 책 한 권 읽을 시간이 없나 봅니다. 

그리고 공문이 내려오면 즉시 그대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기존의 사회 관습이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 살아갑니다. 처세가 인성에 우선인 듯한 모습이 슬프게 보입니다. 우리 삶의 주인은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글을 써야 합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입니다. 특히 교사라면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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