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미디어가 소셜미디어 여론에 대처하는 방법
2011. 10. 5. 13:09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과학적 감수성’이 스며든 뉴미디어 세상, 신문이 가야 할 방향은?
9월 말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 중 하나는 ‘디지털 감정정보’라는 이슈에 대해 다뤘습니다. 과학적 감수성에 대한 경영학적 가치가 각광을 받으면서 감정 정보에 눈을 뜨는 기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사실, 이성의 대표적 학문인 ‘과학’, ‘디지털’과 비이성의 대표적인 작용인 ‘감수성’, ‘감정’ 등의 만남은 역설적이지만, 기업뿐만 아니라 여론과 감정 정보에 대한 비중이 커지고 있는 미디어 산업에도 여러 가지 시사점이 있습니다.
이 자료에서 연구원은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정서나 태도의 변화가 인터넷(온라인 네트워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타고 순식간에 확산되는 과정에 대해 주목했습니다. 고객과 시장의 감정, 정서를 파악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특히 기업들이 이러한 감성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위해 각종 데이터 마이닝을 활용한 경영의 과학화, 또는 과학적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감정이 모여 집단의 정서가 되고, 이는 기업에 대한 ‘여론’이 됩니다. 감정정보 분석은 기업의 의사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심지어 일부 해외 펀드나 투자자들은 정서분석 기술을 활용해 투자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까지 생겨났습니다. 비즈니스위크가 지난 3월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정신과 의사인 리차드 페터슨 박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0년 말까지 약 2년 동안 운영한 펀드가 수익률 28%라는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같은 기간 S&P500 지수는 1.6% 하락한 것을 보면 대조적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이 주식을 살 것인지 팔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온라인 글을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사용했던 소프트웨어는 금융 관련 뉴스, 소셜 미디어 글, 기업 인터뷰 등을 기계가 자동 수집-분석해 긍정에서 분노에 이르기까지 400여 종류의 정서를 정량화해 보여준다고 합니다.
영국 텔레그레프가 지난 9월 보도한 자료는 더 충격적입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인 다윈캐피탈마켓은 인디애나대학과 독점계약을 맺고, 트위터의 감정 정보에 따라 투자를 결정하는 25만 파운드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습니다. 이 대학이 만든 소프트웨어는 사람들의 트위팅한 내용을 바탕으로 투자판단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임의로 수집한 트위터 상의 10%의 정보를 긍정적인 트위팅과 부정적인 트위팅으로 분류한 뒤, 이 중에 침착, 경계, 확신, 중대, 친절, 행복이라는 6가지 심리를 정의한 시스템을 적용해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를 통해 뉴욕다우지수의 움직임을 87.6% 정확하게 맞췄다고 합니다. 부유층이나 기관투자가의 자금을 극도로 정교한 방법으로 운용하는 투기성 헤지펀드가, 트위터 내용을 분석해 투자 수단에 실제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입니다.
일반적인 기업들은 오프라인 여론이 온라인에 반영되거나, 또는 온라인 여론만의 영역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시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금융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시장 상황이 악화되자 온라인상의 사람들의 감정이 부정적이 되어간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이 분석 결과는 이러한 생각은 편견이었고,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이라는 것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온라인상의 부정적인 감정이나 불안감이 오히려 시장의 악화를 불러일으키는 수준까지 됐다는 겁니다.
미디어 기업들, 특히 신문 기업들은 어떨까요. 미디어 기업이야말로 여론과 대중의 감정, 그리고 감성에 충실해야 합니다. 정형화된 정보만 담긴 콘텐츠는 더 이상 온라인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감성이 담긴 콘텐츠를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미디어 기업의 정체성을 확보합니다. 온라인의 감성이 종이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7년 전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 선배들은 제가 쓴 기사 속에 ‘인기 검색어’나 ‘네티즌’ 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몹쓸 기사”라며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나 불과 2~3년 전부터는 네티즌이라는 단어는 종이신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여론’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이미 온라인 여론이 오프라인에 영향을 주고 있고, 이는 고스란히 종이신문 읽기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가져 온 감정 정보의 폭증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전세계 트위터 사용자수는 2억 명을, 페이스북 사용자는 6억 명을 넘어섰습니다. 매일 2억건의 트위터 메시지가 뜨고 있고,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까지 더한다면 가늠하기 힘든 양입니다. 또한 스마트폰 등이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깊게 생각하기 보다는 즉각적인 감정 정보의 표출에 더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바뀌는 감정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뿌리게 되고, 결국 온라인에 감정이 풍성해질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온라인을 통한 유행성 감정의 전염이 논리적인 글 몇 개 보다 대중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미디어 기업들도 이해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얼마 전 IT업계에 종사하던 한 지인이 이런 얘기를 건넸습니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신문을 한 부 집어 들었는데, 어느 순간 무의식적으로 신문의 하단을 훑어 내려가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다름 아닌 ‘댓글’을 보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신문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해 통째로 트위터에 게재한 뒤에서야 답답함이 풀렸다고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일부는 분명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접하실 경우도 있을 겁니다.
미디어, 특히 종이 신문은 비록 그 외형이나 역할이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주력 미디어로서 우리 사회에 건재합니다. 많은 분들이 종이를 통해 원하는 정보를 얻고, 감정에 충실합니다. 그러나 온라인 감정의 홍수 시대에 신문은 소통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전향적으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뉴스와 정보를 '이해하는' 기업에서 '느끼는' 기업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면 기존 클래식 미디어를 통한 소통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요. 또한 이를 통해 촉발된 균형 잡힌 신문 읽기는 오프라인 독자들의 변화까지 이끌어낼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신문 ‘종이’가 싫은 것이 아니라 신문이 취해 온 지금까지의 뻣뻣한 태도가 거북했던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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