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28. 15:00ㆍ특집
여기저기서 4차 산업혁명을 외친다. 미래 대한민국이 살길은 4차 산업혁명뿐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 강국을 자부하는 대한민국의 디지털 교육 현장은 초라하다. 침묵을 강요하던 교실과 교육을 바꾸고 디지털을 통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제대로 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때이다. |
김묘은(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 부회장)
칠판을 바라보고 한 방향으로 배치된 책상들. 교실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반장은 떠드는 아이를 칠판에 적고, 선생님은 칠판에 적힌 아이를 나무랐다. 떠든다는 것은 교실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조용히 해!” 학생들이 교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학생들은 침묵을 강요받고 선생님의 지시대로 읽고, 쓰며 행동하기를 요구받는다.
현재 교육 시스템은 18세기 중반 산업화와 함께 만들어졌다. 산업화로 인력의 수요가 급증하자 대량으로 빠르게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사람을 교육했다. 효율성이 중요했고, 주입식 교육은 당연한 방식이 됐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어느 정도 제대로 작동했다. 우리나라도 뜨거운 교육열 덕에 기적과 같은 발전을 할 수 있었으니 교육의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과거의 인재는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을 배워 시킨 대로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질문하고, 생각하고, 세상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줄 아는 사람을 원하는 세상이 됐다. 4차 산업혁명은 과거 어떠한 산업혁명보다 급진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 두려워하지만 새롭게 생길 일거리를 예측하고 이를 대비시키는 교육은 전무하다.
인터넷 강국의 디지털 접근성은 최하위
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가 지난해 10월 송파구청과 공동 개최한 ‘톡톡 토론회’에서 협회의 박일준 회장이 토론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2016년 10월 송파구청과 함께 ‘우리가 원하는 자유학기제’라는 주제로 청소년 토론회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 토론 참가자는 자유학기제를 경험한 송파구 중학생 100명이었다. 토론회 전 설문조사에서는 95%가 자유학기제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토론회 마지막 결론은 반대였다. 학생들의 흥미를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체험했던 직업의 대부분이 미래에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 자유학기제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오히려 자유학기제를 위해서 또다시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선생님들이 학교 밖 세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꿈과 끼를 찾아 진로 계획을 세우도록 지도’하는 것에 한계가 있고, ‘직업 체험’보다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소양’을 기르는 수업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 학생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중학생들이 집단지성을 보여준 토론이었고,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는 순간이었다.
우선은 인프라에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속도가 상위 10개국 중에서도 1위인 나라이다. 하지만 학교 사정은 다르다. 인터넷 속도가 매우 느리거나 아예 인터넷이 안 되는 곳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5년이 지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곳도 많다. 이런 격차는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교 내 디지털 접근성은 OECD 평균보다 떨어진다. 디지털 기기에 대한 태도도 일본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교 내 디지털 접근성(출처: OECD PISA 2015를 통해 본 한국의 교육정보화 수준 분석, <이슈리포트>, 한국교육학술정보원, 2017.)
디지털 기기에 대한 태도(출처: OECD PISA 2015를 통해 본 한국의 교육정보화 수준 분석, <이슈리포트>, 한국교육학술정보원, 2017.)
인터넷 강국인 대한민국의 학교가 왜 이렇게 됐을까? 현재 학교에서 진행하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인터넷 윤리 교육에 가깝다. 사이버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좀 더 확대해서 인터넷 윤리, 개인정보 보호, 저작권 보호들을 다룬다. 대체로 ‘활용’보다는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하지 마라’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스마트폰 소지를 금하는 것도 맥락을 같이 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디지털 교육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사회가 변하고 있어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입시 중심의 교육 시스템 앞에서는 교사들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고, 디지털에 대한 교사들의 이해도가 낮아 실제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도 한계가 많다.
최근 코딩 교육이 열풍이다. 2018년도부터는 정규과목으로 편성된다. 마치 코딩 교육 하나면 디지털 시대 대비가 끝난다는 허상을 주고 있는 듯하다. 이미 강남에 수백만 원짜리 사교육이 일어나고 있어 지나친 사교육으로의 확대도 우려된다. 코딩을 배우면 미래 인재로서의 소양을 갖춘다고 할 수 있을까? 코딩 교육은 모두가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도 이미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코딩 교육의 목적은 논리적인 사고력을 키우고, 디지털을 더욱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취지를 살려 코딩과 로봇을 융합해 창의적인 교육을 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지만, 코딩 교사가 부족한 현실로 인해 코딩을 암기과목처럼 가르치기도 한다.
코딩은 아이들이 갖춰야 할 여러 디지털 소양 중 하나일 뿐이다. 코딩보다 앞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 디지털 리터러시이다. 파일 위치 찾기, 폴더 생성, 이미지 캡처 등 컴퓨터 관련 기본 지식도 없는 학생들이 많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나 바이러스, 정보 보안과 같은 기본적인 컴퓨터 지식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빅데이터 분석, 인공지능의 이해와 활용 분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도 배우고 익혀야 하는 시대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목표(출처: 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
양방향적 능동적 콘텐츠 생산자
인터넷 예절도 문제다. 올 초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지원하면서 120개 학교 선생님들과 이메일을 주고받게 됐다. 놀랍게도 70%에 가까운 교사들이 인사말이나 자기소개는커녕 이메일 내용도 없이 제목만 넣어 첨부파일을 보내왔다. 심지어는 제목을 빈칸으로 둔 채 보낸 교사도 있었다. 모두 편지쓰기 예절을 배웠을 테고 편지 쓸 때는 예절에 맞게 쓸 것이라 믿는다. 처음 메일을 보낼 때는 ‘안녕하세요. 00님’으로 시작하는 게 옳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고, 첨부파일이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 주어야 한다. 당연히 첨부한 파일인 줄 알고 열었는데 바이러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예의를 잊는 사람이 많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대충해도 되고 모든 게 용서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단한 디지털 지식을 배운들 뭐하랴. 인류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홍익인간의 정신이 없다면 우리가 가르친 디지털 지식과 기술은 원자폭탄이 되어 돌아오고 말 것이다.
미래 인재들이 갖춰야 할 디지털 소양은 크게 디지털 활용 능력과 시민의식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디지털 활용 능력은 일방향적, 피동적 소비자에서 양방향적, 능동적 생산자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검색하고 이용해왔다. 그리고 미디어상의 정보를 무조건 수용하는 편이었다. 대부분 인터넷 이용자는 소비자이기만 했다. 이제는 정보를 자신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소비자를 넘어 능동적으로 인터넷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생산자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두 번째 갖춰야 할 소양은 디지털 시민의식이다. 타인의 저작권, 초상권을 지켜주고 나의 정보를 지킬 줄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다른 디지털 시민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디지털 민주 시민이어야 한다. 자신이 배운 디지털 기술을 자신만을 위해 이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하며, 공동체와 타인에게 칼을 겨누는데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소양을 두루두루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디지털 리터러시 DQ(출처: 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
뉴스 읽기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키울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네이버 뉴스스탠드처럼 디지털 뉴스 가판대를 이용하면, 종이신문의 편집을 볼 수도 있고 기사에 삽입된 동영상, 연관 뉴스 등을 통해 또 다른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뉴스스탠드 화면 캡처>
화석이 된 교육 시스템부터 바꿔야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미래의 새로운 기회가 디지털에 있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디지털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을 바꾸고 교사 역량도 강화해야 하지만, 우선은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모든 교육을 주입식으로 진행해왔다. 디지털 교육마저도 주입식으로 진행하니 재미있을 턱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더욱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게임이나 카툰에 빠지고, 기껏 사용하는 것이 검색과 이메일 정도다. 디지털을 통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만족하게 해줄 수 있다면 교육의 효용성뿐 아니라 효과성도 높아질 것이다.
음악 공부를 예로 들어보자. 음표만 보고 노래를 따라 하는 음악공부와 디지털로 작사, 작곡을 해보고, 스마트폰으로 직접 악기를 연주하면서 클래식을 배운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어떤 교육을 받고 싶은가? 미술의 경우도 책을 통해 작품과 미술사를 외우듯 배우는 것보다 구글 아트앤컬처에서 기가픽셀로 촬영한 작품을 400배까지 확대해 보면서 빅데이터로 시대별 작품을 분석해볼 수 있다. 또, 구글 어스를 활용해서 지구 반대편으로 체험학습을 떠나거나 연도별로 북극의 빙하를 비교해보며 기후변화를 확인해볼 수도 있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교육도 바뀌어야 할 때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150년 전에 쓰던 물건이 지금도 쓰이고 있는가. 150년 전에 마차를 타고 다녔다면 지금은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 전보도 신기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손안에 화상통화가 있다. 그러나 교육은 아직도 150년 전 시스템을 쓰고 있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교실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디지털은 아이들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게 도와준다. 이제 선생님이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게 도와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것, 실패한 아이들도 믿어주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다. 디지털은 냉정하다고 단정 짓지 말고,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목표이다.
'특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교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현황과 해결 과제 (0) | 2017.10.26 |
---|---|
EU, 디지털 단일 시장 전략 속 다양한 디지털 교육 프로젝트 시행 (0) | 2017.10.11 |
디지털 리터러시란 무엇인가 (0) | 2017.09.19 |
현장 교·강사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인식 조사 (0) | 2017.08.09 |
민주시민과 미디어 리터러시 (0) | 2017.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