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리터러시란 무엇인가

2018. 1. 16. 11:00특집

뉴스 리터러시와 미디어 리터러시는 같은 개념인가? ‘비판적 사고 능력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그러나 뉴스 리터러시의 등장 배경주요 이해관계자 및 목표를 고려할 때 뉴스 리터러시만이 갖는 차이점이 분명히 있다



김성해(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모든 것은 생명주기를 갖는다. 뉴스도 예외가 아니다. 로마의 악타 디우르나(Acta Diurna)에서 보듯 최초의 뉴스는 원로원이란 권력기관을 감시함으로써 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등장했다. 역사에서 뉴스가 다시 부각된 때는 렐라치온(Relation)과 아비소(Aviso)[각주:1]등이 발간된 17세기 초반이었다. 인간의 이성이 억압되고 모든 것을 신과 사제가 결정했던 5세기부터 15세기까지 유럽 대중은 일종의 ‘문맹’ 상태에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뉴스’ 덕분에 이 암흑시대가 끝이 났다.


1439년에 소개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이를 이용한 성경 인쇄는 교황과 성직자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깼다. 마르틴 루터가 1517년 종교개혁을 요구할 당시 가장 먼저 했던 것도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일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적 지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로마와 그리스 시대를 복원하자’는 의미를 가진 16세기의 르네상스와 ‘빛을 밝히다’는 의미를 가진 17세기 계몽주의의 본질 역시 임마누엘 칸트가 말한 “편견이나 다른 사람의 지도에 의한 왜곡 없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만든 미성숙으로부터 해방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기득권 집단은 당연히 저항했다. 1559년 교황청은 종교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사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일련의 금서목록을 발표했다. 1633년에는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을 받았고, 인간의 기본권과 국민 주권을 주장했던 존 로크, 볼테르, 장 자크 루소 등의 저작은 모두 차단당했다.1662년에는 ‘인쇄허가법’이 등장했지만 지식의 확산을 막을 수는 없었다. 


1891년 미국의 수정헌법을 통해 “의회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는 시대 정신이 자리를 잡았고 뉴스는 그 이후 전달수단(Medium), 형식(Format)과 내용(Content)의 확장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뉴스 리터러시의 필요성

2017년 현재 시점에서 봤을 때 ‘뉴스 리터러시’는 별로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미디어와 그 생산물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며, 미디어의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을 키우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및 정보 리터러시 등과 구분 없이 사용되는 개념으로 ‘비판적 사고 능력’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프랑스의 끌레미(CLEMI)와 ‘미디어와 정보 리터러시’를 강조하는 유네스코를 비롯해 캐나다의 ‘미디어 스마트(Media Smarts)’, 미국의 ‘디지털 시티즌(Digital Citizen)’은 모두 이런 입장에서 접근한다. 그러나 등장 배경, 주요 이해관계자 및 목표를 고려할 때 ‘뉴스 리터러시’만이 갖는 차이점이 있다. 뉴스는 살아 있다.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불변의 모습이 아니다. 신문이나 방송이 전달하는 그 무엇을 뉴스라고 하거나, 의견이 아닌 사실만이라고 하거나, 또는 텍스트로 된 것으로 특정한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없다. 본질적으로 뉴스는 인간이 주체를 선언하는 데 있어, 세상에 개입하기 위해, 서로 소통하고 조직하기 위해, 미지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공동으로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만들어 온 집단 창작물이다. 해방(Emancipation), 참여(Engagement)와 확장(Enlargement)을 위한 필수적인 공공재다. 공적인 자산이라는 점에서 특정한 계약을 통해 보호하고, 장려하고, 집단적인 책임을 진다. 민주주의라는 시스템 전반에 퍼져 있는 혈관, 감각기관과 신경망처럼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제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영향력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고 문제가 있을 경우 공동체 전체가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뉴스 리터러시 센터 로고(왼쪽), 트러스트 프로젝트 로고(오른쪽).

<사진 출처 : http://www.centerfornewsliteracy.org, https://thetrustproject.org>


전직 언론인으로 뉴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하워드 슈나이더 교수는 2005년 대학에 부임한 이후 이 문제를 누구보다 먼저 파악했다. 그는 학생들이 잘된 뉴스와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언론사가 전달하는 것을 무조건 믿거나, 아예 뉴스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미국 최초의 ‘뉴스 리터러시 센터(Center for News Literacy)’는 이렇게 태어났다. 뉴스 리터러시 센터는 “뉴스와 선전, 뉴스와 의견, 공정과 편견, 주장과 확인, 실증과 추론의 개념을 이해시키고 신문 기사나 방송 보도에서 이들을 구별해 낼 수 있는 능력 향상”을 목표로 설정했다. ‘뉴스’에 특화된 교육은 그 이후 저널리스트, 언론사 및 언론 관련 공익 기관 등의 주도로 ‘뉴스 리터러시 프로젝트(News Literacy Project)’와 ‘트러스트 프로젝트(The Trust Project)’ 등으로 발전했으며 저널리즘 대학(원)의 정규 과목으로 발전했다. 방송영상, 광고, 영화 및 콘텐츠 사업자는 참여하지 않았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논란이 된 ‘가짜 뉴스’는 이 문제가 국제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계기였다. 2017년 1월 페이스북은 저널리즘 프로젝트(Journalism Project)를 통해 ‘뉴스 리터러시 확산’ 방안을 공식적으로 요청했고 뉴욕시립대 저널리즘대학원, 포드재단, 민주주의재단 등과 공동으로 ‘진실한 뉴스 이니셔티브(News Integrity Initiative)’를 시작했다. 미국 워싱턴주에서 통과된 ‘디지털 시민, 미디어 리터러시와 인터넷 안전’과 관련한 법안에서 밝힌 목적도 “정보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에 기반한 역량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였다.[각주:2] 그 밖에 국제펜클럽[각주:3] 중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펜아메리카가 발표한 보고서 역시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가짜 뉴스와 왜곡 정보가 범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전략은 뉴스 소비자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했다.[각주:4]


국제펜클럽 중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펜아메리카의 보고서 표지. <사진 출처 : 펜아메리카 보고서 – FAKING NEWS : Fraudulent News and the Fight for Truth>


한국형 뉴스 리터러시 교육의 과제

뉴스는 계몽주의, 합리주의, 민주주의와 함께 성장해 왔다. 권력집단이 무슨 결정을 하는지 알 수 없고, 중요한 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없고, 또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했다. 역사적 현장에는 항상 뉴스가 있었고, 뉴스로 인해 권력질서는 영향을 받았으며, 치열한 ‘투쟁’을 동반했다. 그리고 이때 뉴스는 '정보 리터러시’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정보가 아닌 지극히 정치적이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도록 다듬어지고, 공익에도 부합하는 지식이다. ‘미디어 리터러시’에서 주로 다루는 콘텐츠와 달리 허구가 아닌 진실에 관한 것으로 감성보다는 이성에 호소한다는 점도 다르다. 뉴스의 현실적 지위도 달라졌다.


뉴스는 언제 어디서나 편리한 시간에 경제적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다. 뉴스 접근이 자유롭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생활의 대부분이 뉴스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통신망이나 도로망과 같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책임은 각자가 진다. 법을 제대로 몰라서 당하는 불이익이 구제받지 못하는 것처럼 ‘뉴스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는 당연시된다. 그러나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를 구분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뉴스를 어떻게 찾고, 뉴스를 통해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또 잘못된 뉴스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등은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캐나다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주도하는 국가다.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비판적 미디어교육의 필요성을 일찍부터 자각했기 때문이다. 독특한 뉴스 환경을 가진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그간 뉴스에 접근할 수 없었던 때도 있었고, 뉴스에 의해 통제되기도 했다. 지금은 뉴스 과잉을 겪고 있다. 뉴스를 통해 할 수 있는 것도 많지만 뉴스로 인한 폐해도 만만치 않다.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는 뉴스 이용자 교육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제사회에서 뉴스 교육을 주도하는 곳은 미국이다. 그러나 미국식 모델은 뉴스 생산 과정의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보다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데 있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데 필요한 뉴스는 무엇인지, 안정적으로 이를 공급하기 위해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뉴스 활용 정도에 따른 격차(News Divide)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뉴스 소비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지(News Rights)’와 같은 주제는 다루지 않는다. 미디어교육과 달리 체계적이고 명확한 교육과정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다른 리터러시와 차별화된 한국형 ‘뉴스 리터러시’는 이 공백을 채우는 첫 단추다.





  1. 아비소와 렐라치온은 1609년 독일 볼펜 뷔펠, 스트라스부르 등에서 발행됐으며 세계 최초의 주간 인쇄신문으로 알려져 있다. [본문으로]
  2. 법안의 정식 명칭은 ‘Concerning digital citizenship, media literacy, and internet safety’로 SB(State Bill)5449다. [본문으로]
  3. 문학을 통하여 상호이해를 촉진하려는 국제적인 문학가 단체이다. [본문으로]
  4. “Faking News: Fraudulent news and the fight for truth”, PEN America, October 12, 201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