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침해하는 혐오 표현, 중계식 보도 멈춰야

2022. 7. 11. 17:29특집

 

 

인권 침해하는 혐오 표현, 중계식 보도 멈춰야

인권 측면에서 바라본 혐오 표현과 언론 보도

 

 

혐오 표현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사회 문제화 된 것은

2010년 이후 온라인을 통해 혐오 표현이 확산되면서부터다.

혐오 표현은 사회적 소수자의 인격을 말로서 살해하는 인권의 문제인 동시에,

‘기계식 객관 보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언론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논란이 된 유력 정치인들의 혐오 표현 발언과 이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를 살펴보았다.

 

 

김민정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언론은 사회의 분열과 대립을 증폭시키는 혐오 표현을 다룰 때 현상 그 자체를 전달할 게 아니라

발언의 맥락을 짚고, 발언의 의미를 인권의 관점에서 해석하며,

명확한 관점을 갖고 혐오 표현을 비판해야 한다.

 

 


 

 

 

“여기 또 못사는 사람들이 많다. 임대 주택에. 그래서 정신 질환자들이 나온다… (그분들을) 격리하든지 하지 않으면 국가가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 지난 6월 9일 국민의힘 서울 지역 지방 선거 당선자 대회에서 나온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의 망언이다.1) 임대 주택 거주자, 경제적 취약 계층, 정신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고정 관념에 바탕을 두고, 특정 집단이 범죄 등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공포심을 부추기면서, 그 대상 집단을 분리·배제하자고 한 것이다. 혐오 표현이다.

 

 

암호화된 혐오 표현

혐오 표현이라고 하면 흔히 욕설이나 노골적으로 적대적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 경멸적인 이름 붙이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가령 초등학생이 임대 주택에 사는 친구를 ‘임대충’, ‘엘사’, ‘휴거지’로 부른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누구나 그것이 잘못된 표현, 사용하지 말아야 할 혐오 표현임을 쉽게 인지한다. 하지만 욕설이 포함되지 않거나 노골적으로 혐오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도 혐오 표현일 수 있다. 게다가 유력 정치인이 직접적, 명시적 방식으로 혐오 표현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부 사실을 교묘하게 섞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고정 관념을 자극하면서 혐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암호화된 혐오 표현(coded hate speech)’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흑인의 범죄율이 높다’는 통계를 인용하며 ‘흑인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2) 흑인의 범죄율이 높은 까닭은 차별적 법 집행 때문일 수 있고 흑인들이 범죄로 내몰린 결과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은 높은 범죄율을 흑인이라는 인종의 속성으로 치환함으로써 흑인 전체를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동시에 차별을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방식의 말하기는 정작 어떻게 범죄율을 낮출 수 있을지, 인종적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가로막는다. 우리는 정제된 언어 속에 감춰진 혐오의 기제를 꿰뚫어보는 힘을 길러야 한다.

 

언론은 성일종 의원의 혐오 표현을 어떻게 보도했을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BIGKinds)로 검색해 보니 6월 9일~13일 기간 동안 42건의 관련 기사 중 절반에 해당하는 21건에서 기사 제목에 ‘논란’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논란은 “여럿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툼”을 뜻한다. 성 의원의 발언이 하나의 타당한 주장이라는 걸까? 성 의원의 발언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이 여당과 야당 간의 공방이라는 걸까?

 

 

유력 인사 혐오 발언, 더 신랄하게 비판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 전문에 명시되어 있듯, 언론은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증진”을 목표로 하여 “인권 문제를 적극 발굴·보도하여 사회적 의제로 확산시키고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가 정착되도록 여론 형성에 앞장”서야 한다. 국민의 인권 의식 향상과 인권 문화 확산에 기여할 책임이 있는 언론이 인권을 침해하는 혐오 표현과 그에 대한 비판을 ‘논란’의 틀에서 보도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지난해 온라인에서 벌어졌던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에 대한 언어 학대(abuse)에 대해서도 다수의 국내 언론이 ‘논란’으로 보도한 적이 있었다. 네티즌의 문제적 행동이 언어 학대·언어폭력임을 분명히 지적한 것은 해외 언론이었다. 논란이 아닌 것을 ‘논란’이라 틀 짓는 보도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언론은 사회의 분열과 대립을 증폭시키는 혐오 표현을 다룰 때 현상 그 자체를 전달할 게 아니라 발언의 맥락을 짚고, 발언의 의미를 인권의 관점에서 해석하며, 명확한 관점을 갖고 혐오 표현을 비판해야 한다. 또한, 혐오 표현이 초래하는 부정적 결과의 크기는 해당 발언을 한 사람의 영향력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2020년 1월 한국기자협회 등 9개 언론 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발표한 ‘혐오 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3) “주요 정치인, 고위 공무원, 종교 지도자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 하는 혐오 표현은 더욱 엄격하게 비판적으로 바라보겠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같은 혐오 표현이라도 유력 정치인이나 종교 지도자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 발화하는 경우 청중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더욱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정치인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일부러 혐오 표현을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미디어 종사자는 정치인의 의도적인 혐오 표현을 그대로 중계할 게 아니라 그 배경과 맥락을 파악하고 비판적으로 전달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언론은 여당 정책위 의장인 성일종 의원의 발언,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에 대해 ‘볼모’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장애인과 시민 간의 대결 구도를 부추기고 많은 사람들을 혐오에 동참하게 만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발언 등을 더욱 더 경계하고 신랄하게 비판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와 9개 언론 단체가 함께 발표한 &lsquo;혐오 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rsquo;. <출처: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nbsp; https://www.humanrights.go.kr/site/program/board/basicboard/view?menuid=001004004001&pagesize=8&boardtypeid=2&boardid=7605040 >

 

 

보통 시민의 연대와 지지 필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난 6월 13일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재개했다. 관련 소식을 전한 보도 중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직원들이 전장연 시위로 인해 지각할 경우 지각한 시간만큼을 근무 시간 기록 플랫폼에 ‘연대’로 표시하고 근무 시간으로 인정하겠다고 밝힌 김나리 미디어오리 대표에 관한 기사다. 해당 기사에서 김 대표는 전장연 시위의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빡빡하게 살아가는 보통의 시민”이 해야 할 일은 욕설과 약자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연대’이며 문제 해결을 촉구해야 할 대상은 기획재정부라고 주장했다. 보통의 시민만이 아니다. 52일 만에 재개된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보도하는 언론이 해야 할 일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인의 말에 명확히 반대하는 보도,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시민의 목소리에 더 주목하는 보도, 열악한 장애인 이동권 실태를 짚고 구체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보도를 내놓는 것이다.

 

 

필자가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송형국 <KBS> 기자와 함께 만든 「시민을 위한 혐오 표현 체크리스트」. <출처: KBS 홈페이지.&nbsp;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45657 >

 

 

 

 

 

 


 

1) 비판이 쏟아지자 성일종 정책위 의장은 사과하며 자신이 의미한 것은 ‘격리’가 아니라 ‘격려’였다고 했다.

 

2) 최근 필자가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송형국 <KBS> 기자와 함께 만든 「시민을 위한 혐오 표현 체크리스트」(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45657)에 제시된 예시이다. 「시민을 위한 혐오 표현 체크리스트」의 내용을 참고로 소개하면, 혐오 표현에 해당하는지를 따져볼 때는 크게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누군가의 ‘정체성’을 문제 삼아 공격하는 표현인지 여부다. 여기서 ‘정체성’은 성별, 장애, 종교, 지역, 인종, 성적 지향 등을 말하는데, 다양한 정체성 요소 중 하나를 문제 삼을 수도 있고(예: 장애인에 대한 혐오 표현), 둘 이상을 동시에 문제 삼을 수도 있다(예: 장애인 여성에 대한 혐오 표현, 흑인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 둘째, 공격 대상 집단 및 그 집단에 속한 개인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 조장,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지 여부다. 즉, 혐오 표현이 초래하는 효과에 주목해야 하는데, 혐오 표현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 고정 관념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고 이러한 표현이 지속적,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 배제, 폭력을 정당화하고 조장한다. 셋째, 표현의 유형인데 혐오 표현의 유형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체크리스트’는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혐오 표현의 대표적 유형을 크게 6가지로 분류하고 각 유형에 해당하는 혐오 표현의 예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대표적 유형이기 때문에 ‘체크리스트’에 명시되지 않은 유형의 혐오 표현도 가능하다). ①부정적인 편견이나 고정 관념을 표출하는가? ②비인격적 비유나 경멸적인 이름 붙이기인가? ③웃음거리나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가? ④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보호·동정의 대상으로 묘사하는가? ⑤질병, 범죄 등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공포감을 부추기는가? ⑥차별, 적개심, 폭력 등을 선동하는가?

 

3) https://www.journalist.or.kr/news/section4.html?p_num=16

 

4) 이우연 (2022.6.15.) ‘“지각한 시간도 근무 인정”.... 전장연 시위 ‘지각 연대’ 합니다’ <한겨레신문>,

URL: https://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470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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