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2. 13:58ㆍ특집
습관적 ‘○○녀’ 사용, 약자·외국인 비하도 흔해
미디어 속 ‘인권’ 침해 사례 파헤치기
언론은 기본적으로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순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부적절한 용어 사용이나
특정 성,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적 보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미디어에 의한 인권 침해와 차별을 감시하는 한 시민 단체 활동가의 글을 소개한다.
김언경(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
장애인을 지칭하는 기존의 용어 및 장애와 관련된 속담, 관용구 등에는
장애인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인식, 장애를 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언론 보도에서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부정적 의미의 장애 관련 속담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언론이 다루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이슈에는 ‘인권’ 이야기가 담겨 있다. 따라서 그 어떤 주제를 다루는 보도이든, 사람이 사람이기에 가진 천부적 권리인 인권을 존중하고 차별을 배제하겠다는 관점이 담겨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언론이 인권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본적으로 언론은 정치·경제 권력,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 등을 비판하는 존재이다.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인권 침해, 명예훼손이 발생할 수 있다. 기사의 제목과 사진, 영상, 본문 속에는 인권 감수성 부족에 의한 다양한 차별적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보도가 어떤 현상만을 수박 겉핥기로 다루면서 인권 증진에 필요한 사회 제도의 문제를 짚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언론이 인권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음에도, 언론이 인권에 미치는 순기능은 무시할 수 없다.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인권 침해 현장과 차별적 시스템을 고발하는 훌륭한 기획 보도도 매해 이어지고 있다. 언론이 다양한 인권 침해 상황을 적극적으로 고발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공론장 역할을 수행할 때, 국민의 인권 감수성은 높아질 것이며 우리 안의 차별과 배제의 언어가 하나둘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언론의 인권 침해 사례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성차별적 표현을 여과 없이 보도
언론은 성차별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외모와 신체, 나이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매기거나, 이를 조롱하고, 비난, 비하, 멸시하는 표현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2016년 6월 1일 낮 12시, 프레스센터 앞에서 ‘불꽃페미액션’의 20대 여성들이 “우리는 기자회견女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기자 회견을 했다. 언론의 여성 혐오적이고 자극적인 보도 방식을 비판한 것이다. 이처럼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언론에서 습관적으로 ‘○○녀’라고 호칭하며 제목으로까지 부각하는 태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5년 10월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50대 여성이 벽돌에 맞아 사망한 사건을 ’캣맘 사망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2016년 3월 2일, 의사가 진료 중에 상습적으로 여성 환자들을 성추행한 사건을 보도하면서 A언론사는 ‘대장내시경女’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직후 몇몇 언론사가 ‘노래방 살인녀’, ‘화장실녀’ 등의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건·사고의 특징과 성별을 결합한 ‘토막살인녀’, ‘트렁크녀’ 등의 표현과 특정 성을 향한 부정적 인식을 부각시킨 ‘김치녀’, ‘된장녀’, ‘맘충’, ‘한남충’ 등의 표현이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2017년 9월 13일 B언론사의 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미국에 진출한 한국 야구 선수의 결혼 소식을 전했다. 이와 관련해 진행자는 “슈퍼모델 출신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돈을 따라간 거예요, 남자의 능력을 따라간 거예요, 뭐에요?”, “이분은 또 훌륭한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라면서, 스포츠 선수들이 미녀들과 결혼. 미녀라 그럴까요? 뭐 얼굴만 예쁘면 뭐해요, 마음이 예뻐야지”라고 발언했다. 이 방송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 제재 주의를 받았다.
성희롱, 성폭력, 가정 폭력, 성매매를 정당화할 우려가 있는 표현, 성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2016년 6월, 학부형 3명이 교사를 성폭행한 전남 섬마을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C언론사는 6월 7일 “단독/‘성폭행 의도’ 계획 범행 시인” 보도에서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주민 A씨를 인터뷰했다. 기사 속에서 A씨는 “다 착실한 사람들이잖아요. 기사 난 건 60~70% 과장해서 나오고 있어요. 이상한 쪽으로 나가고”, “바래다주면서 선생님 잘 잠그고 주무시라고 그랬는데도. 그냥 열어주니까, 순간적으로 같이 술 먹다 우발적으로”라고 가해자를 두둔했다. C언론사의 같은 날 보도 “‘꼬리 쳤다’ 황당한 감싸기”에서도 “남자들이니까 아시잖아요. 혼자 사는 남자들이… (나이가) 80이라도 그런 유혹 앞에서는 견딜 수도 없어”, “여자가 꼬리치면 안 넘어올 남자가 어디 있어. 어린 애도 아니고 그 시간까지 같이 있을 때는”이란 주민의 말을 전했다. 이런 발언은 사적인 관계에서 옮기기에도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명백한 2차 가해이다.
장애인 비하하는 전문가 패널
언론은 장애를 이유로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며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고 차별을 조장하는 일체의 언어적 표현과 행동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장애인을 지칭하는 기존의 많은 용어 및 장애와 관련된 속담, 관용구 등에는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반영되어 있거나, 장애인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인식, 장애를 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언론 보도에서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부정적 의미의 장애 관련 속담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2019년 2월 21일 D언론사는 대법원이 육체노동으로 일할 수 있는 최고 연령인 ‘가동 연한’을 만 65세로 상향 조정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이 과정에서 출연자 중 한 명이 “이것이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었다든지 또는 사고를 당해서 몸을 못 쓰게 돼서 소위 말하는 ‘병신’이 됐다든지, 이럴 경우에 그 손해배상금을 얼마를 줄 것이냐…”라고 말했다. 전문가 패널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행정 지도 권고 조치를 받았다.
특히 언론은 조현병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정신 질환 및 정신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018년 6월 7일 E언론사는 만취한 채로 화물차를 몰던 50대 남성이 신호 대기 중인 승용차와 추돌한 후 도주한 사건과 관련해, “저런 경우는 만취자 아니면 정신병자”라고 말하는 출연자의 발언을 그대로 방송했다. 만취자에 의한 사건·사고임이 명백한 사안임에도 방송에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하여 약자를 조롱하고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한 것이다. 이 방송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행정 지도 권고를 받았다.
특정 연령층 비하 표현도 문제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카카오, 한국언론법학회와 함께 전국 20대 이상 남녀 1,02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혐오 표현에 대한 일반 시민과 전문가 인식 조사’(최진호·이승선)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장애, 출신 지역, 정치 성향, 성별, 장애를 대상으로 한 혐오 표현의 인지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인종·민족·국적, 종교, 성적 지향,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혐오 표현 인지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측면에서 미디어는 어린이와 노인에 대한 차별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 방송과 인터넷 등에서 ‘어떤 것에 입문했거나 실력이 낮은’의 뜻으로 ‘어린이’의 ‘어’를 떼어 내고, 일부 명사의 첫 글자로 교체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주식 투자 초보자는 ‘주린이’, 요리 초보자는 ‘요린이’, 부동산 투자 초보자는 ‘부린이’, 등산 초보자는 ‘산린이’, 토익 입문자는 ‘토린이’, 골프 초보자는 ‘골린이’ 등으로 부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어린이날을 맞아 공공 기관, 방송, 인터넷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가 이러한 의견을 표명한 계기는 한 시민의 진정에서 비롯했다. 지난해 인권위에는 이런 유행어가 아동을 불완전, 미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차별적 표현이므로 공문서나 방송 등에서 사용을 금지하거나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한 시민의 진정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인권 침해의 구체적 피해자를 특정하거나 피해 사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사안이 조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각하했으나, 진정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이번에 의견을 표명하게 됐다. 인권위는 “특정 사람에 대한 표현은 사회 구성원의 행동과 사고에 관한 판단에 기초를 두고 있기에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멸시나 조롱의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표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특정 사람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고 강화하게 되어 사회‧문화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어린이 당사자들이 가장 불쾌하고 많이 인지하고 있는 어린이 혐오 표현은 ‘잼민이’다. ‘잼민이’는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가 제공하는 음성 지원 서비스의 어린 남자 아이 이름 ‘재민’을 따서 만든 신조어로, 어린이를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데 자주 쓰이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 3월 전국 초등학교 4학년~고교 2학년 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70.2%(351명)가 ‘잼민이’라는 단어가 어린이를 낮춰 부르거나 비하하는 단어라고 응답했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도 2020년 11월부터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이들이 선정한 어린이·청소년 차별 표현 10선 중 1위가 ‘잼민이’였다. 이 밖에도 이들은 ‘중2병’, ‘등골 브레이커’, ‘급식충’ 등의 표현도 문제로 지적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빅카인즈에서 2021년 6월 1일부터 2022년 4월 30일까지 ‘잼민이’를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잼민이’를 사용한 보도는 모두 32건이었다. 또 같은 기간 ‘요린이’ 52건, ‘주린이’ 535건, ‘산린이’ 36건인데, ‘골린이’ 368건이 검색됐다. 이 밖에 ‘테린이’(테니스+어린이) 36건, ‘부린이’ 36건, ‘헬린이’(헬스+어린이)도 22건이나 있었다. 간혹 이런 표현이 문제가 있다는 언급이 있지만, 대부분의 기사에서 이런 표현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한편, 노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 표현인 ‘틀딱충’, ‘노땅’, ‘노인충’, ‘노슬아치’와 같은 표현도 사용하지 말아야 할 표현임은 분명하다. 다만, 이러한 노인 혐오 표현은 유튜브나 커뮤니티 게시글, 댓글 등에서 언급된 반면 언론 보도에 많이 등장하지는 않았다.
이주노동자 혐오를 부추기기도
언론은 특정 국가나, 민족, 인종을 차별하거나 비하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피해 규모가 방대한 사건·사고의 원인 제공자가 외국인일 경우 국적, 민족, 인종 정보를 부각하는 것은 혐오 범죄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자제해야 한다. 경찰에서 용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더라도, 그것은 수사 단계의 발표일 뿐임을 감안하여 이를 공표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도 지역, 국가, 인종을 특정하거나 지목하여 책임을 전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독일언론협회 보도 준칙’은 소수자 보호와 선입견 방지를 위해 범죄 용의자의 국적과 종교는 보도 금지가 원칙이며, 공개할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보도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 언론 보도 중에는 이런 기본을 지키지 못한 사례가 많다. 2018년 10월 7일 경기도 고양시 저유소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다음날 오후 경찰은 저유소 화재 사건의 용의자 A씨를 ‘중실화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이후 F언론사는 “경찰 ‘고양 저유소 화재 관련 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긴급 체포’”란 제목의 속보를 내보냈다. F언론사뿐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언론은 경찰이 제공한 정보이니 여과 없이 받아써도 된다고 판단하고, A씨의 국적을 강조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보도 내용에서 용의자가 ‘스리랑카 노동자’임을 언급한 것은 거의 모든 언론이고, 제목에서 이를 부각시키지 않은 기사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다.
2019년 인천과 서울 일부 지역에서 ‘붉은 수돗물’ 소동이 벌어졌다. 6월 21일 G언론사는 “문래동도 붉은 수돗물…‘일부 이슬람 난민 소행일 수도’”라는 제목의 보도를 냈다(6월 26일 기사 삭제). 따옴표 처리를 통해 이슬람 난민 소행 가능성을 부각한 기사의 제목도 악의적이지만, 기사 내용에서 제시한 근거도 한심한 수준이었다. 이런 보도는 1923년 일제 강점기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거나 일본 여자들을 성폭행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로 인해 재일 조선인 수천 명이 학살당했다. ‘붉은 수돗물’이 ‘이슬람 난민 중 일부 극단주의자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한 G언론사의 보도는 관동대지진 당시 헛소문과 큰 차이가 없는 ‘혐오 조장 보도’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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