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대중적인 소설이었던 ‘딱지본’을 만나다.

2011. 12. 2. 09:3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요즘은 책이나 잡지가 봇물처럼 넘치는 시대죠.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쏟아지는 많은 정보 때문에 때로는 머리가 지끈거릴 때도 있는데요. 이럴 때는 도서관에 가서 손에 잡히는 책을 술술 넘기면서 마음을 비우고 싶어집니다.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은 어떤 책을 읽으며 자랐을까요? 국립중앙도서관 개관 66주년 특별기획전시인 ‘열두 서고, 열리다’를 통해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대동여지도부터 희귀 잡지까지…300여점 공개 

이번 전시는 반세기 넘도록 쌓아온 우리 지식정보와 미디어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대동여지도 같은 보물은 물론 근대 잡지 창간호, 근대 교과서 등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 당시의 간행물 등 300여점을 볼 수 있는데요. 도서관 측은 개관 이래 갖는 첫 번째 프로젝트로 1년여 동안의 준비 작업을 통해 수백만 자료 중 특화된 장서만을 엄선했다고 하네요. 

어두운 전시실은 곳곳에 조명과 영상을 띄워 테마에 따라 공간을 구분했는데요. 전시를 보는 이들도 침묵 가운데 조용히 사진을 찍거나 작품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죠. 
내부를 함께 살펴볼까요? 우선 잡지의 역사를 훑어보는 ‘잡지창간호―100권의 창간호로 훑어보는 100년의 사회사’ 코너가 눈에 들어옵니다. 도서관 소장자료 중 가장 오래된 잡지인 ‘대한자강회월보’(1906)와 한국 첫 근대잡지로 통하는 ‘소년’(1908) 등 33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잡지의 역사는 교양과 앎의 민주주의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잡지인 ‘소년’을 만든 최남선의 철학만 봐도 알 수 있죠. 당시 백성의 교육을 담당할 대학이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던 그는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의 기초를 쌓기 위해 잡지를 창간하기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전시에서는 ‘소년’ 등 잡지 창간호들과 함께 1945년 이전에 발행된 중앙일간지 원본도 함께 둘러볼 수 있었는데요. 1983년 10월11일 창간한 한성순보, 독립운동가 장지연(1864∼1921)의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황성신문 등 중앙일간지 17점과 디지털 영상이 함께 선보였죠. 


춘향전은 ‘음탕 교과서’, 홍길동은 ‘허황 교과서’다? 

개화기부터 근대 교과서까지 총 40종의 교과서를 시대별로 살펴보는 서고도 있었는데요. 낮은 책상과 걸상 등 추억 속 교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도 무척 독특했습니다. 
다섯 번째 서고인 ‘딱지본―나도 책이다! 밤을 밝혔던 육전소설’ 코너에서는 19세기 말 책읽기의 대중화와 근대화에 기여한 딱지본 소설 소장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춘향전을 ‘음탕 교과서’로, 홍길동전을 ‘허황 교과서’로 묘사한 1900년대 최고의 신소설 작가 이해조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죠. 딱지본은 서양 인쇄기술의 도입으로 들어온 납활자로 인쇄한 책인 구활자본의 별칭을 뜻하는데요. 당대엔 이처럼 딱지본으로 만든 풍자 소설이 꽤 인기를 끌었던 모양입니다. 1910년 7월 20일자 ‘대한매일신보’의 논설에서는 이를 두고 “여자들과 무식한 시정잡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 비하하기도 했죠. 이를 보더라도 당시 소설이 국민 감성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는가를 잘 알 수 있죠. 



 
이러한 딱지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16년 신구서림에서 발행한 것으로 전생과 이생, 내생에도 함께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사랑이야기를 다룬 ‘숙영낭자전’, 1911년 동양서원에서 발행한 딱지본으로 남녀 쌍둥이가 옷을 바꿔 입어 위기를 모면하는 극적인 장면으로 알려진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 이해조의 작품인 ‘빈상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기 북한 문서, 재독 소설가 이미륵 친필원고 눈길




▲이미륵 박사의 작품들 
재독작가 이미륵 박사의 친필 원고입니다. 그는 1946년 독일에서 발표한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로 독일 문단과 독자들의 호응을 받았죠.

한 쪽에서는 서양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색다른 서고도 마련돼 있었는데요. 17세기 이후 한국 관련 외국자료 소장본 29점과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기구로부터 기탁자료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도서관에 들어오는 국제기구간행물 등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의 전쟁노획 콜렉션 중에는 한국전쟁기에 북한에서 수거해 간 북한문서를 디지털로 복원해 구축한 컬렉션 중 공문서, 공간행물, 개인수기, 학습장, 사진자료, 편지류, 심리전단지 등 31점이 선보였죠.
 

 

이밖에도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의 만화가 김성환의 원화와 판화, 도자기 등 기증자료 20여점을 볼 수 있는 ‘고바우 영감님을 도서관에서 뵙다’와 재독 소설가 이미륵(1899∼1950)의 친필원고와 사진 등 14점을 모은 ‘이미륵의 문학과 삶의 흔적’ 등 개인 서고도 주목할 만합니다. 

경기도 수원에서 온 주부 이미라(34) 씨는 “평소 잡지를 좋아하는데 예전 잡지들의 모양새는 어떤지 궁금해서 전시를 찾게 됐다”며 “손으로 그린 그림과 글씨가 낡은 멋이 있어서 오히려 요즘 나오는 잡지보다 멋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12월 28일까지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며 관람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입니다(관람료 무료).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가족, 혹은 친구와 함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옛날 책 구경 한 번 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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