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막 시작했다면, 홍대리에게 물어보세요.
2011. 12. 1. 09:09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 아침을 마치기 전에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 바람 소리, 학의 울음, 닭의 회치며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이 글자를 가지고 적을 수가 있다.”
엉뚱하게도 SNS를 생각하는 순간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이 떠올랐다. 한글 창제에 크게 기여한 정인지가 써서 훈민정음 해례본 뒤에 붙인 글이다. 한글은 대단히 과학적이어서 배우고 익혀서 쓰기에 쉬우며 활용의 가능성이 무진무궁함을 강조하고 있다.
정말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이 한나절 안에, 아무리 우둔한 사람이라도 열흘 안에 그것을 다 배워 깨우칠 수 있고, 이 세상에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는 글자라면 그 값어치를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정인지는 이 서문에서 “이 글자로써 소송사건을 심리하더라도 그 실정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어떠어떠한 소리를 적을 뿐 아니라 복잡하고 미묘하기 짝이 없는 소송사건을 기록하는 수단으로서도 손색이 없다는 말은 한글이 인간 간의 모든 소통의 수단으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새삼 한글의 가치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얘기하면 세종대왕이 좋아할지 어떨지 모르겠으나, 정인지의 서문이 새로운 소통의 플랫폼인 SNS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제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생활의 필수품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쑥스럽다. 일상에서 SNS를 사용하는 것은 이미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생황의 일부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아침 출근길에 트위터 살펴보다가 “일 시작하기 전에 뜨끈한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하고 싶다”고 몇 자 적어 트윗 날리고, 사무실에서 페이스북 들여다보다가 한동안 잊고 있던 옛 거래처 사람의 근황에 덧글을 남긴다. 전화나 이메일로 대화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부담도 적다. 자신의 상황과 하고 싶은 말을 언제 어디서든 전할 수 있고 관계망이 이어져 있음을 서로 확인할 수 있다.
이토록 ‘손쉽고 유효한 소통수단’ SNS 없이 21세기 초반을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에는 나와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80대의 원로장로님께서 ‘친구 요청’을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벼르고 벼르다 직접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고 사용해보니 너무나 편하고 좋다는 말씀이셨다. 80대의 어른과 친구라니…… 정말 다른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SNS를 사용하면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트윗의 타임라인을 타고 올라오는 소식들 가운데 ‘홍보성 트윗’이 간혹 섞여 있다는 점이었다. 일방적으로 팔로우하고 들어오는 데에는 막을 도리가 없다. 그 내용도 반가운 마음으로 트윗을 훑어가던 마음의 리듬을 끊어버리곤 하는 것들이다.
“응모해보세요!! SM7 아니면 아메리카노!”
“생활사진 활용 가이드북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정답을 RT해주신 분 중 3분 추첨해서 선물 제공~”
“멋지게 성공하고 싶은 개발자 채용 신입/경력, 사원/대리/과장급…”
대개 이런 식이다. 참 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자기네 회사나 제품에 대해 유용한 정보를 알리고 이 공간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야 모르는 바 아니나 왜 나의 영역에 무단 침입해 나의 즐거움에 잡음을 만들어내고, 나의 평화마을에 혼선을 조성하느냐는 억하심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정말 역효과를 자초하는 일이다. 하려면 좀 제대로 하든지….
말하자면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무작정 밀어내기 식으로 아무나 팔로우해서 폭풍 멘션을 날려서는 언팔 당할 가능성이 80-90%라는 사실을 정말 이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 염치없이 아무한테나 이벤트 응모를 권유해서는 그 이벤트는 물론이고 그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까지 평가절하된다는 사실도 정말 모르는 건가?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고, 전후 좌우 상황을 헤아릴 줄 아는 마음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그런 고려 없이 무조건 뉴미디어를 홍보와 마케팅의 수단을 삼는다는 것은 어린 아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다. 그러던 차에 <SNS천재가 된 홍대리>(다산북스)를 접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 같은 해당 시리즈물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 직장인들을 겨냥한 실용서의 범주에 속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유사한 종류의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몇 가지 미덕을 갖추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우선, 회사나 조직의 필요에 따라 SNS를 활용할 때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받는 사람에게 유익’한 정보를 멘션으로 작성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요소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개인이 특정한 가치관이나 목표를 갖듯이 회사나 조직도 얼마든지 목적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을 마다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SNS를 활용할 때에는 자기 목적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려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소통을 하라는 얘기다. 이건 개인이건 조직이건 다를 수 없는 일이다.
당연한 일이건만 의외로 이런 점에 무신경하거나 무감각한 조직SNS 운영자가 너무 많다. 이런 운영자는 그 일에 부적격자인 것은 물론이고 그 조직은 뭔가 착각을 해도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손에 쥐고 이런 ‘SNS의 기본’ 한 가지만 인식할 수 있어도 충분히 책값을 했다고 생각된다.
두 번째 미덕은 몇 가지 스토리 라인이 가미된 소설적 재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실수에서 배우는 과정,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러브스토리, 직장 상사의 개인적 관심사가 일과 얽히는 사례 등이 씨줄과 날줄처럼 짜여 있다. 그래서 첫 페이지를 읽은 독자를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아주 부드럽게 인도한다.
독자로 하여금 ‘어, 이거 내 얘기(혹은 우리 회사 얘기) 아냐?’라는 생각이 들게끔 플롯을 구성한 저자의 솜씨가 대단하다. 일찍이 블로그와 SNS를 조직적 소통의 중요한 수단으로 착안하고 이 영역을 개발해 온 저자의 안목과 내공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은 SNS를 앞에 놓고 ‘이걸 우리 회사 또는 조직을 위해 어떻게 써먹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튼실한 길잡이가 될 만하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일독을 권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미진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나 회사의 필요에 따라 SNS를 운영하는 경우에 도움이 될 만한 사례들이 조금 더 많았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어차피 공자님 말씀보다는 시행착오가 훨씬 중요한 스승이 아닌가? 배울 바에야 조금 더 피부에 와서 닿게 배웠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아마도 이 분야에는 무수히 많은 실패 사례가 있을 것이다. 영역은 조금 다르지만, 스티브 잡스도 잘못 판단한 경우가 많고, 빌 게이츠도 엉뚱한 판단으로 중요한 계기를 무산시켜버린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걸 보고 배우는 것과 같다. 기회가 된다면 그런 내용을 중심으로 다음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서두에 세종대왕을 인용하는 만용을 저질렀으니 한번 더 실례를 하자. 만약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새 저서를 <집현전>이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뒤 트위터를 통해 140자 범위 안에서 이 책을 홍보한다면 과연 어떻게 멘션을 날렸을까? 혹시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모처럼 책을 한 권 냈습니다. 한나절만 투자하면 완전히 마스터할 수 있는 새 글자체계를 소개합니다. 일독 요망. 또 이 글자로 표기할 수 없는 소리가 있거든 알려주세요. 반상 구별 없이 두 분 뽑아서 곧 나올 <훈민정음 언해본>을 선물로 증정.”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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