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기자가 바라본 ‘독자 낚기’의 달인들

2012.02.22 09:39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이거 최초 맞아요?”(기자)
“네, 저희가 다 확인해 봤어요. 맞습니다”(당국자)
 
안보 관련 취재를 주로 하다 보니 군 당국으로부터 관련 보도자료를 수시로 받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군인들과 관련한 화젯거리 보도자료 가운데는 유난히 ‘최초’란 단어가 들어간 것들이 많습니다.

이는 군 당국자들이 ‘최초’란 단어에 기자들이 약하단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자가 절대 다수인 군대 세계에서 여군에 대한 얘기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저도 군 내에서 비록 수가 적은 여군이지만 이들에 대한 기사는 참으로 많이 써왔습니다. 이 가운데는 기사를 통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한 경우도 있습니다.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지만 한국군 최초의 ‘여성 장군 1호’가 누가 되는지를 특종 보도해 회사로부터 상금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출처: www.flicker.com ⓒpixelconscious>

 
사실 지금까지 언론에 나오는 여군에 대한 기사 대부분은 ‘최초’로 점철돼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군에서 제공하는 ‘최초의 여군 ○○○’과 같은 보도 자료를 받아보면 쓰는 기자도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여군 전투헬기 조종사 탄생’이라는 자료를 받은 기자와 군 관계자의 대화를 한 번 들어 볼까요.
 
“어, 여군 헬기 조종사는 그전부터 있었잖아요.” (기자)
“그냥 여군 (수송)헬기 조종사는 옛날부터 있었지만 전투헬기 조종사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군 관계자)

개인적으로는 ‘수송헬기 조종사면 어떻고, 전투헬기 조종사면 어떻다는 말인가.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독자들은 조종 헬멧을 쓰고 엄지 손가락을 내미는 여군의 모습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좋아한다는 핑계를 대고 아무 거리낌 없이 약간은 과장스럽게 여군 조종사의 활약상을 묘사하는 기사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편집기자는 ‘최초의 여성 전투헬기 조종사 탄생’ 운운하는 제목을 답니다. 독자들은 이 제목을 보고 호기심에 이끌려 기사를 읽게 됩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즐겨보는 사람들은 ‘헤드라인’을 먼저 보기 마련입니다. 헤드라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기사에 눈길을 주거나 시청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기사의 제목을 다는 일은 보기에는 쉽게 보일지라도 전문가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사의 제목을 다는 전문가들은 가끔 교묘하게 신문 독자나 TV 시청자와 같은 뉴스 수용자들을 속입니다. 요즘은 뉴스 수용자들의 수준이 높아져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과거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가령 서민들의 ‘발’이나 마찬가지인 버스나 지하철 요금이 올랐다 치죠. 버스나 지하철 요금과 같은 공공요금이 오르는 것은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선거 표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정부 여당에게는 큰 부담이 됩니다. 이때 ‘버스 요금 000원 올랐다’나 ‘지하철 요금 00% 인상’이 가장 보편적인 기사 제목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친여•친정부 매체는 ‘버스 요금 현실화’란 제목을 크게 달아 밑에 조그맣게 뽑은 ‘00% 인상’과 같은 부제목은 눈에 띄지 않게 했습니다. 또 국회에서 여야가 충돌, 심하게 실랑이가 벌어지면서 야당 의원이 과격한 언동을 했다고 칩시다. 이때 “야당, 신성한 국회에서 우격다짐”이라는 제목과 “여당의 무리한 의사진행에 야당 강력 반발”이라는 제목은 같은 사안을 놓고 뉴스 수용자들에 주는 이미지는 크게 다를 것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가끔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왝더독’ 현상을 유발하기 위한 조작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온라인 상 기사의 제목은 사안을 조작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언론계 종사자들 사이에 가장 좋은 인터넷 기사 제목은 독자들이 클릭을 가장 많이 하게끔 하는 제목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탓입니다. 어찌 보면 독자를 ‘낚는’ 기술이 좋은 제목이 ‘최고’의 제목이 된 셈입니다.
 
인기 포털 ‘네이버’에 캐스팅 된 언론사들의 기사 제목을 한번 살펴 볼까요. 특정한 날짜를 선택해 몇 개 뽑아 보았습니다. 기사를 출고한 언론사 이름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①“헉! 한국男 ‘바람’피우는 수준이 세계 2위!”
 ②“기아차 ‘소울’ 이럴수가•••, 미국이 ‘발칵’”
 ③“방송인 A양 동영상 멋모르고 다운받았다가•••”
 ④“‘눈을 뗄수가 없네.’ 女 모델 파격패션 난감”
 ⑤“차세대 전투기 사는데 쓰는 돈? 이럴수가”

제목만 봐서는 기사의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 종 잡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유난히 “누가 무엇 무엇”, “왜?” 등 ‘왜’로 끝나는 기사 제목이 유난히 많습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궁금하면 들어와서 기사 내용을 보라는 ‘맛보기용’인 것입니다.
 
결국 독자들은 ‘왜’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해당 뉴스를 클릭하게 됩니다. 몇 번 ‘낚인’ 후에는 기사 내용이 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상 처음 보다는 클릭하는 횟수는 줄어들지라도 속을 걸 뻔히 알면서도 또다시 클릭을 하게 됩니다.
웃기는 것은 여러 매체가 제목을 ‘가지가지’로 제각각 달아 놓지만 기사 내용을 보면 연합뉴스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연합뉴스 기사 하나를 가져다가 여러 매체가 제각각 ‘피싱’ 제목을 달아 놓은거죠.
 
그리고는 어떤 언론사의 경우 방문 조회수(대부분 낚인 클릭수)를 근거로 내놓으며 자사의 영향력이 이 정도로 크니 광고비로 얼마를 내놓으라고 기업체에 요구합니다. 인터넷 신문과 달리 종이신문은 신문기사 내용을 한 줄로 압축해야 합니다. 인터넷상에서 제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기사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종이신문은 신문이 발행되는 순간 제목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사 내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고치려면 다음에 발행하는 신문에서 ‘바로잡습니다’라고 정정기사를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기사를 쓰는데도, 제목을 뽑는데도 공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부 다는 아닐지라도 온라인 기사의 제목이 인스턴트 라면이라면 종이신문 기사의 제목은 주방장이 엄선해 만든 파스타쯤으로 봐도 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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