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스마트폰, 종이 신문 중 어느 것이 잘 읽힐까?

2012. 2. 20. 09:25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사시미(刺身)와 신문

생선회를 일본말로는 ‘사시미(刺身)’라고 한다. ‘칼로 살을 찌른다’는 살벌한 말이지만 여기에는 그럴 듯한 유래가 있다.
 
‘사시미’라는 단어는 일본의 사무라이(무사) 정권시대에 처음 사용됐다고 한다. 당시 오사카 성에 거주하는 한 장군이 귀한 손님을 맞게 돼 자신의 조리장에게 최고의 요리와 술을 준비하게 했다.
명령을 받은 조리장은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을 좋은 기회로 여기고 여러 가지 음식 가운데 특히 열 가지가 넘는 생선회에 전력을 다했다. 주군인 장군조차 듣지도 보지도 못한 최고의 생선회였다. 마침 손님도 생선회를 맛있게 먹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장군에게 “이 회는 무슨 고기로 만든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생선 이름을 몰랐던 장군은 당황했고 즉시 조리장을 불러 대답하게 했다. 조리장은 횟감에 쓴 생선 이름과 조리법까지 요모조모 설명을 잘했고 다시 한번 큰 칭찬을 받았다.
이후 조리장은 어떻게 하면 주군이 생선 이름을 외우지 않고도 생선회를 즐길 수 있을까에 대해 궁리했다. 그러던 끝에 나온 것이 작은 깃발을 만들어 그 깃발에 생선 이름을 적은 후 생선회 살에 꽂아 상에 올린다는 아이디어였다.
 
주군은 조리장의 친절한 아이디어 덕분에 생선 이름을 기억하려고 골머리를 썩일 필요없이 손님들을 접대하면서 맛있는 회를 즐길 수 있었다.
사시미의 사스(刺)는 ‘찌르다’ 또는 ‘꽂다’를 의미한다. 미(身)는 ‘몸’ 또는 ‘물고기나 짐승의 살’을 의미한다. 즉, 생선의 살에 작은 깃발을 꽂았다는 뜻에서 일본에서는 생선회를 사시미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도 일본 요릿집에 가면 진열장에 배 모양의 그릇에 담긴 생선회에 조그만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일본 사람들조차 사시미의 원래 뜻을 잘 모르는 이가 많다고 한다. 혹자는 ‘신문’(新聞)도 세월이 흐르면 어원이 잊혀진 사시미의 전철을 밟을 지 모를 저치에 놓였다고 말한다. 아니, 아예 ‘신문’이라는 단어가 사멸될 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신문(新聞)은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을 듣는 매체다. 그러나 새로운 뉴스가 바로 바로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뜨고, 심지어는 스마트폰으로 즉각 전달되는 디지털 시대가 무르익으면서 종이 신문은 그야말로 ‘신문’(新聞)이 아닌 ‘구문’(舊聞) 처지에 놓여 있다. 실제로 종이신문 스트레이트 기사의 경우 일부 특종 기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독자가 TV나 온라인에서 접했던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종이신문의 시대는 종말을 고할까. 거기에 대한 해답은 우연찮게 접했던 한 TV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종이신문 기사와 개인용 컴퓨터 뉴스코너에 올라온 기사, 그리고 스마트폰에 뜬 뉴스 기사에 대한 독자의 시선 집중도를 조사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글을 읽을 때 시선이 따라서 움직이는 ‘아이 트랙커’(시전 추적장치)를 착용하고 각각의 기사를 읽었다.
 
40여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컴퓨터로 글을 읽을 때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실험 참가자들이 전체 여섯 꼭지 기사를 읽으면서 한 꼭지당 걸린 평균 시간은 컴퓨터가 102.85초. 스마트폰이 89.1초. 종이 신문이 80.8초였다.
그 이유는 컴퓨터 뉴스코너에 올라온 기사의 경우 웹페이지에 있는 자극적인 제목의 다른 글이나 호기심을 끄는 광고가 실험자들이 기사를 읽는 데 방해가 됐기 때문이었다.
 
한 실험 참가자는 “자극적인 제목에 끌려 궁금해지니까 한번씩 클릭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웹페이지 주변에 잡다한 게 많아서 글을 읽기가 편하거나 쉽게 읽혀지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독자들이 ‘피싱의 바다’에서 글을 읽는거나 마찬가지다.
 
반면 종이신문 기사는 실험 참가자들의 시선 방향이 일정했고 이들은 상대적으로 편하게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실험 참가자들이 읽은 기사를 기억해 내는 비율도 컴퓨터 41.33%, 스마트폰 43.17%, 종이 신문 46.5%로 나타나는 등 종이 신문의 기억도가 가장 높았다. 실험 참가자들은 스마트폰으로 본 게 가장 쉽게 읽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내용을 잘 기억해내지 못했다.

조사 분석자는 인터넷을 통한 읽기의 경우 그냥 스크롤(화면이동)을 하면서 빨리빨리 보게 돼 정작 기사의 기억도는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정보 홍수 시대에 쏟아지고 있는 너무 많은 정보가 사람들에게 진짜 필요한 정보에 대한 기억을 방해한다는 의미다. 즉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본다고 그 많은 것을 모두 다 기억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섞여 있을 경우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온라인 세상에 지쳐 일상사에서 특정 시간을 정해 디지털을 ‘오프’(OFF)하고 아날로그를 ‘온’(ON)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디지털을 ‘오프’하는 것이다. ‘플러그를 뽑자’나 ‘인터넷이 없는 주말을 보내자’는 캠페인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한 온라인 세상이 역설적으로 접속이 차단된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조차 “디지털 기기는 삶에 큰 부분을 찾아줬지만 이것을 가끔 끄고 균형 잡힌 삶을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삶의 본질을 찾는 사람은 결코 종이신문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미국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도 와이파이 무선통신망을 차단한 카페나 레스토랑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곳에서는 노트북이 있던 자리에 다시 신문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신문이 주는 여유로움. 사람들이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게다가 독자가 시선을 집중해야만 하는 심층 분석 기사는 종이신문이 제격이다. 품격 높은 종이신문에는 충성도 높은 독자가 따라오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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