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기다림, 그 빈 마음을 채우는 '슬픈 사랑'

2012. 2. 24. 11:02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몇 년 전 영화 ‘집으로’를 본 적이 있다. 당시 미혼에 자식이 없던 터라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결혼 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자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자식이 세상의 전부이자 살아가는 이유가 된 것이다. 이런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그들의 사정을 알아보고 싶어졌다.

때마침 격주로 나오는 사진기획이 내 차례가 됐고, 부장으로부터 취재 허락이 떨어졌다. 하지만 조손가정의 취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선 조손가정을 찾아 인터뷰를 허락받는 게 큰 문제였다. 조손가정을 관리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여러 복지단체를 찾아다녔다. 좋은 일로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도 선뜻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큰돈을 주어야 취재에 응하겠다고 한 곳도 있었다.

수십 차례의 발품을 판 끝에 조손가정 몇 곳을 소개받았다. 우선 전북 익산에 있는 현수네 집을 방문했다.


“할머니, 엄마는 언제 와?” 
 

 

 

“할머니, 엄마는 언제 와?”

네 살 현수(가명)의 자그마한 입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할머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현수는 아직 부모의 이혼을 모른다. 그저 엄마, 아빠가 돈 벌러 갔다는 할머니의 말만 믿고, 오늘도 현수는 창밖을 보며 부모를 기다린다. 해가 지고 밖이 어두워지자 체념한 현수는 할머니 손에 이끌려 잠자리에 든다.

 

 

태성이(가명)는 중학교 2학년이다. 학교가 끝나면 태성이는 곧장 집으로 향한다. 하굣길에 만난 친구들은 학원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할머니가 자신과 누나 2명을 키우느라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태성이는 학원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다. 할머니는 3년 전 자궁암 수술을 받았다. 이후 암이 폐로 전이됐지만 수술을 못 하고 있다. 암세포가 많이 퍼져 있고, 몸도 많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집에 온 태성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할머니 어깨를 주무르는 일이다. 매일 1시간씩 할머니에게 안마를 해 주지만 전혀 힘들어하거나 귀찮아하지 않는다. 태성이의 가장 큰 바람은 할머니가 하루라도 더 오래 사는 것이다.

할머니는 또래보다 의젓한 태성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친구들과 어울려 한창 즐거워야 할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짊어져 어른이 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암에 걸린 자신보다 자신이 떠난 뒤 남게 될 아이들이 걱정이다.



내몰리는 아이들


 

실제 많은 조손가정의 아이들은 자립의 기틀이 마련되기 전에 사회로 내몰린다. 18세가 되면 지원이 끊기기 때문이다. 조손가정을 비롯한 위탁가정을 관리하는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 조민선 소장은 “조손가정에 가장 중요한 건 홀로 서기를 할 수 있는 실질적 도움입니다. 즉 교육 지원이 절실합니다”라고 했다.

현재 대부분의 조손가정은 정부 보조금과 복지단체 후원금 등으로 생활하고 있다. 많은 조부모들이 나이와 건강 등의 이유로 경제활동을 못 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원금은 보통 아이 한 명당 30여만 원 정도인데 이 돈으로는 최저생계를 유지하기도 버겁다. 따라서 자립에 필요한 기초적인 교육조차 엄두를 못 낸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빈곤의 고리를 끊기 힘들다. 2007년 통계청의 전국 가계조사에 따르면 조손가정 아동빈곤율은 48.5%로 일반 가정 아동빈곤율(8.8%)의 5배나 된다.




겨울이다. 온기가 필요한 계절이다. 부모와 헤어짐, 가난 등으로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는 조손가정 아이들에게 온기를 나눠 줄 시기다.

기사가 나간 지 한 달 정도 됐다. 처음 기사를 쓸 때 우리 주변에 많은 조손가정들이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내 기사를 보고 취재된 조손가정을 TV에 출연시켜 모금 활동을 하고 싶다는 방송국의 전화도 받았고, 그들에게 성금을 보내고 싶다며 그들의 연락처를 묻는 독자들의 이메일도 받았다. 작으나마 내 기사가 그들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조손가정이 생기는 것을 줄이는 경제적 안전망이 확충되길 바란다. 갑작스러운 실직, 한순간의 부도 등이 단란한 가정을 조손가정으로 만들고 있다. 경제적 파탄에 의한 이혼이 줄어야 조손가정도 줄어든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2년 2월호 중 김지훈(국민일보 사진부 기자)님의 ' "엄마는 언제 와?" ’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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