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할아버지 기사를 시로 쓴 딸

2012. 9. 18. 10:0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올해 중학생이 된 딸이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장애인의 날을 맞아 백일장을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 하며 걱정을 늘어놓았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물어보니 힘겨운 장애인의 삶을 살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여 감동을 주고 싶단다. 때마침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앞두고 특집 기사를 다룬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충북 보은에 사는 ‘시각장애인’ 추찬혁(71) 할아버지가 온 동네의 칼을 갈아 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속리산의 아주 작은 산골 마을 회인면 갈티리에서 ‘칼갈이 도사’로 불리는 추 할아버지는 다섯 살 무렵 갑작스러운 홍역으로 시력을 잃었다. 비록 앞을 볼 수 없는 처지였으나 아버지가 낫을 갈 때마다 들리던 소리가 좋아 열 살 무렵부터 낫을 갈기 시작했다는데, 그렇게 칼을 갈아 온 지 60년 넘는 세월 동안 추 할아버지는 마음으로 칼을 갈아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딸아이가 찾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신문 기사를 꼼꼼히 다시 한번 읽어 보게 한 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밑줄을 긋도록 했다. 그런 다음 기사 내용을 아빠와 엄마에게 이야기해 주는 형태로 재구성하게 하고, 시의 특성에 맞춰 리듬감을 살릴 수 있도록 배치하게 했다. 그때의 작품이 바로 ‘마음으로 세상을 할아버지의 이웃 사랑’이다.



 충북 보은에 사시는 추찬혁 할아버지는

 다섯 살 때 홍역으로 시력을 잃어

 1급 시각장애인이면서도 

 온 동네 칼을 갈아 주는 봉사 할아버지


 일곱 살 때

 숫돌에 낫을 갈던 아버지 곁에서

 쓱싹쓱싹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칼을 갈아


 소리가 좋아

 취미로 칼을 갈아 온 지 올해로 일흔 두 해

 보은군 회인면 갈티리 주민들의 무뎌진 칼은

 손이 아닌 

 마음으로 칼을 갈아 온 할아버지 덕분에

 어느덧 새 칼로 환생하고


 칼이 잘 든다는 주민들의 말 한마디가

 할아버지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된다는데

 앞을 보지 못하는 봉사이면서도 

 이웃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할아버지


 눈이 아닌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할아버지에 비하면

 눈을 뜨고도 어려운 이웃을 보지 못한 우리가

 특급 시각장애인은 아니었는지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장애인의 날 기념 학교 및 지역 백일장에서 입상한 것도 기쁜 일이었지만, 그보다 딸아이가 신문에서 읽은 기사 내용도 훌륭한 시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이후 신문을 즐겨 보게 된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신문에는 우리의 현재 이야기와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지면을 채우고 있다. 기계문명이 발달하면서 이웃들 간에 따뜻함을 잃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현실이 너무 차갑다고 느껴진다면 지금 신문을 보라. 바로 그곳에는 따뜻한 가슴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2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모음집>중 학부모부 동상 수상작 유영석 님의 ‘신문은 삶을 긍정하게 하는 원동력’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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