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르네상스’시대 개막 그 속사정 살펴보니

2013. 3. 11. 09:57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아버지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지적장애인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딸을 향한 사랑을 펼쳐 보이는 영화 ‘7번방의 선물’은 제작자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1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영화 흥행 5위에 올랐습니다. 영화뿐 아니라 TV도 진한 부성애로 넘칩니다. 얼마 전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의 국민 드라마로 종영한 ‘내 딸 서영이’ 역시 자신을 부정하는 딸을 뒤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아버지의 애절한 사랑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지요. 한편 ‘아빠! 어디가?’는 실제 연예인 아버지와 어린 자녀가 시골에서 1박 2일 간 함께 지내며 좌충우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려 큰 공감을 사는 리얼 예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처럼 영화, TV 등을 가리지 않고 아버지와 부성애가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출처-서울신문]





IMF로 촉발된 대중문화 속 아버지 열풍


대중문화에서 아버지가 주목을 받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IMF 당시 많은 분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소설 아버지가 있었죠. 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이 아버지는 IMF 당시 추락하기 시작한 부권의 상징이자 가부장제 그 이후를 말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죠. IMF 이전까지 대중문화에서 많은 경우 아버지는 가족 위에 군림하는, 주인공의 적 아니면 방패였습니다. 어머니가 많은 경우 자식을 위한 자기희생적 사랑의 아이콘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지요. 



[출처 -YES24]




IMF 이전까지 철통같은 가부장제 속에서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는 가족이지만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에게 소외되고 소통에 서먹한 채 돈 벌어 오는 기계로 전락한 아버지는 시대의 슬픈 초상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게 IMF이지요. 실직과 명예퇴직 등으로 더 이상 돈을 벌어올 수 없는 아버지는 가부장제의 근간을 흔들었고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상실시켰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한창이던 IMF 당시 대중문화 속 아버지는 이렇게 나약해진 스스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상황을 헤쳐나가야 할지에 대해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최근 대중문화에서 주목받고 있는 아버지는 IMF 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출처-서울신문]




최근의 대중문화 속 아버지는 아버지 자신의 가난함보다는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와 소통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는 오해가 끼어 있는 세대 간의 관계 복원이기도 하고, 세대 간 관계와 질서를 새로 만들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내 딸 서영이’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고 결혼했던 서영이가 병실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하자는 대로 다 할게요.”라고 말할 때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후략) 


아버지의 사랑이 왜 주목받고 있을까? (헤럴드경제, 2013-03-06)



IMF 당시 부권의 상실과 아버지의 가난함에 주목했던 대중문화가 이제는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와 소통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죠. 아이러니하지만 IMF 이후 지속해서 약해진 아버지의 이미지, 그 약함이 바로 따듯한 보살핌과 부드러운 보호의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강한 아버지가 아닌 휴머니즘과 가족애에 바탕을 둔 아버지가 대중문화에 등장할 수 있었던 거죠. 7번방의 선물에서 보이는 딸 바보 아버지 류승룡의 모습은 바로 이런 부성애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출처 - 서울신문]




대중문화 소비층으로 떠오른 4060 아버지


이처럼 대중문화의 아버지 붐은 사회적 배경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4060 아버지들이 대중문화의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대중문화가 추구해왔던 어머니와 모성애 위주의 소재 한계와 거기서 벗어나려는 대중문화계의 움직임과 베이비붐 세대 아버지들의 은퇴로 인한 신 소비층 형성 때문도 이유 중 하나죠. 넓게 보아 써니 같은 복고 성향의 대중문화는 은퇴하기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한 대중문화 상품이기도 합니다. 4060 소비자에게 위로가 되는 작품들이 대중문화의 핵을 이루다 보니 아버지 코드도 주목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40대가 영화계에 의미 있는 소비층으로 급부상했다. 영화 예매사이트 맥스무비 집계 결과 지난해 전체 관객 중 40대 관객의 비율이 25.8%로 사상 처음으로 20.1%의 20대 관객을 앞섰다. 이 같은 현상은 단순히 지난해에 한정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문화권력이 움직인다] 대중문화 분야별 소비층 분석‥ ‘접속’ 보던 여고생, 직장인 된 지금 ‘문화는 일상’ 

(이투데이, 2013-02-01)





아버지와 가족이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 계속 되어야


최근 대중문화 속 아버지가 주목 받는 것은 사회적인 상황과 현실적인 수요가 맞물려 생겨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서울신문]




아버지와 관련한 대중문화가 늘어난다고 아버지와 자식이 저절로 화해하고 관계가 회복되는 건 아닙니다.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내 딸 서영이에서도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아버지는 성실한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부정당하면서도 속죄하듯 딸만 걱정했지요. 이 노력은 경제난 속에 해주고 싶어도 마음밖에는 해줄게 없었던 이 땅의 아버지들을 감동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노력은 딸인 서영이도 변화시켰죠. 아빠 어디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초보아빠 김성주의 대성통곡과 성동일이 아들과 가까워지는 과정도 아버지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장면들입니다. 아버지는 가장의 짐을 내려놓고 자식은 이해가 아닌 진심으로 아버지를 이해하는 그런 소통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이 소통이 서로를 힐링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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