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도서관 기자가 본, 드라마 그 겨울

2013. 3. 13. 10:05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최근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데요. ‘스타콤비’로 손꼽히는 노희경 작가와 김규태 감독의 작품인데다가, 송혜교-조인성 주연으로 화제가 되었죠. 마치 한 편의 시를 감상하는 듯한 아름다운 영상이 펼쳐져 드라마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주연배우들의 열연 또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지요.


 

[출처-서울신문]

 

 

특히 송혜교 씨는 극 중 시각장애인 오영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데요. 드라마 초반 시각장애인 설정에도 하이힐을 신고 출연한 송혜교씨에 대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일부 시청자들은 과연 “시각장애인 역할을 맡은 송혜교 씨가 풀 메이크업에 하이힐을 신은 것이 옳으냐”며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는데요. 노희경 작가는 “시각장애인 교본을 보면 실제로 화장하는 법과 하이힐 신는 법이 있다”며, “송혜교가 하이힐을 신었을 때는 보호자를 동반했을 때”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아마 장애인의 세계를 잘 모르는 비장애인들의 오해 때문에 빚어진 작은 해프닝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시각장애인 역시 외모를 꾸미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곱게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아름답게 몸매를 가꾸고 싶은 마음은 장애-비장애와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습니다.

오늘은 점자도서관 기자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시각장애인들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소개하고자 합니다.

 

 


전체 출판물 중 2~3%만 점자책 제작

  

시각장애인들은 책을 눈으로 읽지 않고, 귀로 듣거나 손으로 점자를 더듬어 읽습니다. 또는 시력이 남아 있는 경우 큰 글자 책을 읽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년간 출판되는 책 5만 종 중 점자책으로 제작되는 경우는 2~3%에 지나지 않아요.


 

[출처-서울신문]

 

 

점자도서관이나 일부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는 출판된 책을 점자도서로 제작하고 있는데요. 대부분의 출판사에서는 저작권 문제로 출판물의 텍스트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점자책을 제작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먼저 인쇄된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컴퓨터에 텍스트로 입력하고, 입력된 텍스트를 점역 소프트웨어로 점자 변환하며 이것을 교정 및 편집합니다. 그다음에는 알루미늄 판에 기계로 점자를 새긴 뒤, 판 사이에 종이를 끼워 한 장 한 장을 롤러로 밀어내거나 점자 인쇄기로 점자를 인쇄합니다. 많은 봉사자와 점자책 제작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도 3~6개월의 시간이 걸립니다. 녹음도서는 낭독자가 책을 낭독하면 이를 편집 및 수정하여 CD 형태로 된 녹음도서로 제작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역시 수개월이 걸립니다.

 

 

따라서 시각장애인들은 새롭게 출간되는 도서를 빨리 만나볼 수 없습니다. 책이 출판된 뒤 2~3개월 후에나 신간을 접할 수 있게 되는 건데요. 그나마도 전체 출판물의 극히 적은 양만 점자 또는 녹음도서로 제작되니, 시각장애인은 원하는 책을 빨리 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요.

 

 


우체국 택배와 장애인도서관 서비스

 

시각장애인들은 도서관에 직접 방문하기보다는 전화 또는 인터넷상으로 도서를 신청합니다. 전화를 걸어 점자도서관에 책을 신청하면, 책나래 서비스를 통해 집으로 책이 배달되는데요. 책나래 서비스는 지식경제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업무협약을 맺어 장애인의 지식정보 접근 기회를 넓히기 위해 마련한 우편서비스예요. 책을 대출할 때나 반납할 때, 도서관으로 전화를 걸면 우체국 택배가 방문해 책을 배달해주는 서비스지요.

 

 

점자책은 일반도서보다 크기가 크고 두껍습니다. 또한 점자는 초성, 중성, 종성을 풀어서 쓰기 때문에 묵자를 점자로 변환하면, 글자 수가 더 많아지게 되어있어요. 일반도서 30쪽 분량이 점자도서로는 150쪽으로 불어나지요.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한강’은 묵자책으로는 10권이지만, 점자책으로는 총 60권 분량이에요. 부피가 큰 점자책을 택배로 받아볼 수 있는 책나래 서비스는 장애인들의 도서관 이용에 크게 보탬이 되고 있답니다.


 

[출처-서울신문]




시각 외의 다른 감각 발달해

 

얼마 전 극 중 오영(송혜교 분)은 약혼남과 함께 술집에서 술을 한잔하게 되죠. 오영은 약혼남에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늘어놓고, 약혼남은 적당히 대답하며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합니다. 오영이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자신이 무얼하고 있는지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 한 행동일 겁니다.


극 중에서 오영은 약혼남이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 것을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지만, 실제 시각장애인이라면 알아챌 수도 있답니다. 물론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시각장애인은 청각이나 후각 등을 동원해서 상대방의 행동이나 표정을 알아챕니다. 시각장애인은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이 정안인(비시각장애인)에 비해 무척 발달하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전맹인(시력이 전혀 없는 사람)과 함께 식사한 적이 있는데, 필자가 식사를 다 마쳤다는 것을 소리와 감각으로 알아채더군요. 또한 지하철 플랫폼에 들어서면 그곳에 스크린도어가 있는지 없는지를 감각으로 판단하는 전맹인도 있었습니다. 스크린도어가 있을 때와 없을 때는 바람의 세기, 공기의 흐름 등이 미세하게 다르다고 하는데요.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정안인들이 놓치고 지나가는 많은 것들을 시각장애인들은 온몸으로 하나하나 느끼고 있습니다.

 

 

 

목소리로 먼저 인사하기

 

눈을 감고 길을 걸어보신 적이 있나요? 또는 앞을 보지 않고 식사를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시각장애인들은 눈을 감고 길을 걷기 위해 길에서 나는 냄새와 소리에 집중하고, 앞을 보지 않고 식사를 하기 위해 음식의 위치와 방향을 머릿속에 저장하지요.

 

 

[출처-서울신문]


 

만약 길에서 만난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손부터 붙잡지 말고 목소리로 다가가세요. “도움이 필요하신가요?”하고 묻고 다가가면, 온 감각을 동원해 길을 걷고 있는 시각장애인도 당황하지 않고 대답할 겁니다. 간혹 다짜고짜 손을 잡아 길을 안내하려고 드는 분들이 있어서 시각장애인들은 깜짝 놀란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 배려하는 에티켓을 알아두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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