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맞아 ‘멘토’의 의미 돌아보니

2013. 5. 15. 09:31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멘토, 멘토링. 요즘 참 사회곳곳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하버드 교수에서부터 스스로를 촌년이라고 부르는 강사에 이르기까지 요즘은 멘토의 숫자도 많고 종류도 많습니다. 스승의 날인 오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멘토에 대해 한 번 돌아보겠습니다.

 

 

[출처-서울신문]

 

 

 

 

멘토의 어원은 트로이전쟁에서

 

멘토의 어원은 머나먼 옛날 인류의 가장 유명한 서사시 중 하나인 오디세이아까지 거슬러 올라 갑니다. 멘토는 원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의 친구 이름입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집안일과 아들인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친구였던 멘토에게 맡겼는데요.

 

무려 10년 동안 멘토는 텔레마코스의 친구이면서 선생이자 상담자 그리고 아버지 역할까지 해내며 잘 돌보아 주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그의 이름인 멘토는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의 뜻을 가지게 되었지요. 멘토링은 멘토가 그 대상자에게 조언과 지도를 하여 실력을 키우게 하거나 또는 그렇게 만드는 체계를 말합니다.

 

[출처-서울신문]

 

 

 


한국 사회에서 멘토의 범람과 몰락

 

사실 현재 유행하는 멘토는 뜻이 확장되어 어떻게 보면 원래의 의미와 조금 동떨어져서 쓰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상담자이자 지도자인 멘토가 그 대상자가 되는 멘티와 신뢰 있는 상호관계를 맺어야 성립이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현재는 배울만한 점이 있어 보이면 그 사람이 나를 몰라도 멘토라 말하고 있죠.

 

[출처-서울신문]

 

 

 

물론 훌륭한 멘토들도 있었지만 이렇게 멘토가 양산되다보니 최근에는 인권운동가인 고은태 교수의 성희롱 사건과 자칭 촌년인 김미경의 논문 표절 사건 등 이른바 멘토의 몰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일부 멘토들의 책임도 있기는 하지만 무분별하게 무수한 사람들을 멘토로 치켜 올린 우리 사회 멘티들에게도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최근 ‘멘토들의 몰락’을 보면, 멘토를 소비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끝없이 대상을 바꿔가며 멘토를 교체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 동의하게 된다. (중략) 이것은 저자의 잘못은 아니다. 그 시기 웹에서 돌아다니던 그의 글들에 청춘들이 열광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이는 이외수다. 이런 상황에서는 <88만원 세대>를 쓴 당사자도, 그들의 언어를 찾으러 온 선생님도 모두 ‘멘토’로 등극해버린다.

 

멘토의 몰락 이후 우리에게 필요한 것 (2013-04-14)

 

 

사실 이는 멘티들의 잘못만도 아닙니다. 한국 사회는 어렸을 때부터 지나친 경쟁에만 내몰려 시간을 들여 어떤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 서투릅니다. 살기 위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뭔가 배우기를 끊임없이 강요받는데, 최근에는 이 가르침을 줄 무언가로 멘토가 유행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대상에 대한 이해가 서투르기 때문에 가르침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누구나 할 법한 말을 포장만 잘해도 멘토로 취급 받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멘토가 범람했고 이제 몰락이 시작됐죠.

 

 

 


멘토와 멘티대신 스승과 제자

 

국립국어원에서는 최근 무분별하게 쓰이는 멘토를 대신하는 말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강연 한 번 하고 가는 것에도,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인격을 가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말을 해 주는 사람에게도 이 말을 쓸 정도로 멘토라는 말이 무분별하게 쓰이는 경향이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조언자’ ‘삶길잡이’ 등의 순화어를 제안하였고, 인터넷 투표를 통해 ‘인생길잡이’라는 순화어를 정해 발표하였다. (중략) 사실 조언을 해 주는 ‘멘토’와 도움을 받는 ‘멘티’는 굳이 다른 말을 만들 필요가 없이 그 말에 가장 적합한 말인 ‘스승’과 ‘제자’를 사용하면 된다.

 

스승과 멘토 (매일신문, 2013-05-06)

 


우리는 그동안 스승과 제자면 족할 말을 단어의 뜻을 바꿔가면서까지 무리하게 멘토와 멘티로 부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스승의 날, 멘토대신 스승을 찾아보자

 

스승의 어원은 두가지 설이 있다고 합니다. 고대 모계 사회의 대단한 지위를 가졌던 여자 무당을 가리키는 한문 무(巫)가 옛 문헌에는 스승 무로 쓰였다고 합니다. 스승은 모계 사회를 이끌던 여자 무당을 가리켰다는 거죠. 다른 하나는 불교에서는 유래했다는 설입니다. 스스로 수련을 쌓으면서 민초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중을 존경의 뜻으로 높여 불러 사승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스승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어느쪽이든 가르침을 주고 이끌어 주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출처-서울신문]

 

 

 

현재와 같은 스승의 날은 1958년 병환 중인 선생님을 위문하고 퇴직하신 스승님의 위로활동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아무튼 선생을 높이기 위하여 만든 '스승의 날'이 현재는 5월 15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스승의 날' 유래는 1958년 충남 강경여자중고등학교의 청소년적십자에서 시작 되었다. 윤석란을 비롯한 단원들은 병환 중에 계신 선생님 위문과 퇴직하신 스승님의 위로활동을 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63년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처음으로 5월 26일을 '은사의 날'로 정하였다. 그리고 1965년에는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신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다시 정하고 기념하게 되었다.

 

'스승'과 '스승의 날' 유래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여행, 2009-09-16)

 

 

이렇게 잘못 쓰이고 있는 멘토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면 우리 사회에 정말로 필요한 건 스승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그중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공자의 말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따라 붙습니다. ‘이는 그들 중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제자들이 인정하고 진심으로 불러줘야 선생님이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제자들은 무분별하게 선생의 뜻을 추종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본받고 판단하고 고쳐야 합니다. 지금의 무분별한 멘토와 멘티처럼으로는 곤란하죠.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스로 바른 제자가 되어 멘토대신 스승님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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