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국문과 폐지, 국문학도가 씁쓸한 이유

2013. 5. 14.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어려서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좋았다. 맛깔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일단 우리말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 국어국문학과 진학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학창시절 대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해본 적도 없다. 국문학도라는 것에 난 항상 자부심이 있었다. 지금도 어디서든 내 전공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국문과는 굶는과’라는 몹시 비극적인 말을 난 대학 시절 듣게 되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 또한 그랬다.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는 과 학우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취업을 위해 대부분 전공과 무관한 진로를 택했다. 국어국문학과에 뜻은 있었지만 막상 취업의 시기가 오자 돈벌이가 되는 일을 찾아간 친구들도 있었다.  



난 국어를 연구하면서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많은 학생들이 그렇듯 경제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 바로 취업을 해야 했다. 그래도 전공을 놓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글을 쓸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전공을 1순위에 두고 일자리를 찾았지만 난 다른 학과를 전공한 친구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급여를 받았다.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보다 먼저 취업을 해 쉼 없이 10여 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내 생활은 빠듯했다. 우리말 우리글을 올바르게 지키고 생산해내는 일에 대해 사회는 너무 야박했다. 



전공을 살려 일을 했을 때 일은 즐거웠지만 급여는 형편없었고, 이따금 전공과 거리가 먼일에 도전했을 때 급여는 높았지만 정체성을 두고 방황했다. 이건 아마도 평생 딜레마일 것이다. 국어국문학과가 날 굶기진 않았더라도, 전공을 지켜온 나는 일을 해도 배고팠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를 비롯하여 많은 학생들이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하는 이유는 우리말과 글을 보존하고 지키는 것을 돈의 가치보다 더 우위에 두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20년 전의 원고료와 저임금 속에서 인문학도 출신의 수많은 젊은 여성이 출판의 수레바퀴를 사명감 같은 막연한 의협심으로 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번역서와 그 정가로 미루어볼 때 분명 어려움을 무릅쓰고 번역하고 교정을 보느라고 청춘을 불사르는 아까운 인재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공부와 학식, 그리고 순진하게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분주한 날들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고, 대형 서점의 서가도 요즘처럼 휘황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 정진국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中 -



최근 배재대학교의 국어국문학과 폐지 발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관계자는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재학률이 낮고 취업이 잘 안 되는 학과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국어국문학과가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고 밝혔다. '국어국문학과'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과'를 '한국어문학과'로 통폐합하겠다는 계획이다.   



보도를 보고 전공자로서 가슴이 꽉 막혔다. 단순히 그 학교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경쟁력 약화에 따른 대학의 국어국문학과 폐지는 계속 진행됐지만, 배재대는 한글학자 주시경과 김소월 시인을 배출한 전통 있는 대학이기에 배재대의 이번 결정이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큰 것이다. 



학교 측은 한국어문학과로 통폐합한다고 하면서 국어국문학과의 기능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국어와 한국어는 그 명칭의 의미부터 엄연히 다르다. 국어국문학과라는 말은 대한민국의 언어라는 주체적 입장에서의 명칭이다. 그런데 한국어문학과라는 말은 그 중심을 외국인에게 둔 명칭이다. 한국어라는 말 자체가 외국인의 관점에서 그들의 모국어와 구분하기 위해 표현하는 것이다. 한국어문학과는 국어국문학과를 중심으로 세계화에 맞추어 생겨난 학문인데 그 뿌리가 되는 국어국문학과는 폐지하고 한국어문학과를 내세운다는 것은 어찌 보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결국, 학문의 깊이도 점점 얕아지고 언젠가는 시대의 필요로 또 다시 다른 목적을 지닌 이름으로 바뀔 수 있다. 




[출처 - 서울신문]



대학은 본래 학문을 연구하고 지도자를 양성하는 곳이다. 하지만 점점 취업을 위한 전쟁터로 전락하면서 대학의 본분이 흐려지고 있다. 취업률을 적용하는 교육부의 대학평가 방식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예컨대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의 경우 없는 내용도 억지로 넣어 분량을 늘리기 바쁜 데에 반해, 시청률이 저조한 드라마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급하게 종영시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즉 국어국문학과 폐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학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인 힘의 논리로 인해 학과의 존폐가 결정되는 슬픈 현실이다.



내가 국어국문학과 전공자이기 때문에 다소 편파적인 주장이 될지 몰라도, 국어국문학과 폐지는 어떤 상황에서든 ‘무조건’ 안 된다. 대학의 취업률 경쟁을 조장하는 교육부의 평가방식부터 우선 바꿔야 하고, 대학은 교육기관으로서 최소한 우리말과 우리 뿌리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경쟁률이 낮다고 국어국문학과를 폐지시키기 전에, 국어국문학과 전공자가 좀 더 다양한 곳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 교육부 및 대학의 마땅한 소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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