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낸 자기치유 방법은?

2013.05.16 09:00수업 현장




방과후 NIE 수업 중에 갑자기 핸드폰벨이 울렸다. 수업은 중단되고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A양은 태권도하다 다쳤다는 깁스한 한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선생님, 아빠가 전화했어요. 꼭 받아야 해요. 복도에서 통화하고 오면 안 되나요?”


수업 중에 부모님께서 긴급하게 전화를 하신 이유가 있을 터라고 판단하고 통화를 허락했다.


다른 학생들과 수업을 이어갔는데 내 귀는 복도에서 들려오는 A양의 통화소리에 신경이 쓰였다. 분명 A양은 울부짖으면서 아빠에게 원망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왜 그러지?’



A양의 통화에 적잖이 신경 쓰고 있는데 나 말고도 한 명 더 교실 밖 상황에 염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가 있었다. B양이다. B양은 A양과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3학년 친구 사이이다. 학교 안 그 어디에서 보아도 늘 붙어 다녀 누가 봐도 둘이 절친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곧이어 1교시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리고, B양은 통화를 끝내고도 진정이 되지 않았는지 울먹이는 A양에게로 달려나갔다. 잠시 후 A양은 두 손으로 눈물을 싹 훔치고는 씽긋 웃으며 자신은 B양과 같은 보육원에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몇 달 전에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아빠랑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아빠 전화를 많이 기다리는데 통화하다 보면 괜히 아빠한테 짜증부리게 된다고 말했다. 왜 출석부의 두 학생의 보호자 전화번호가 같았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A양을 처음 만난 건 전년도 여름 방학 특강에서였다. 그때도 A양은 운동하다가 다쳤다며 한쪽 발에 깁스를 한 채 혼자 조용히 앉아서 열심히 NIE 수업에 참여한 학생이었는데 3학년이 되어서는 수업 참여 태도가 좀 달라져 있었다. 역시 말은 잘 하지 않았지만 수업에 참여하는 데에는 좀 굴곡이 심했다.


‘왕따 문제로 본 아이돌 육성 시스템 문제’라는 주제 토론에서는 후배들이 저 언니 A양 맞아 할 정도로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서로 잘 모르는 아이돌들을 기획사가 끼워 맞춰서 아이돌 그룹을 만들었는데 어떻게 멤버끼리 소통이 잘 되겠느냐, 멤버들 사이에서도 누구는 떠서 돈을 더 많이 벌고 서로 경쟁하는데 왕따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기획사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미등록이주노동자 강제 단속’ 주제에는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다. 불법체류자를 무조건 단속하면 안 된다 불법체류자가 가족일 수도 있지 않느냐며 한마디 던지고 수업을 관망했던 것이다.



[출처-서울신문]




씩씩하게 자신의 가정 환경이 어떤지 지금의 상황을 털어 놓았지만 A양이 오늘 남은 수업에 잘 참여할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A양은 조용히 신문을 뒤적이며 보더니 스크랩하고 뭔가 활동지에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좀전에 울면서 소리지르며 아빠에게 짜증내며 전화했던 A양이 아니었다. 


1교시, 시한부 삶을 사는 15세 소녀의 17가지 버킷리스트 기사를 읽고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는 활동에서는 A양이 그렇게 진지한 것 같지 않았다. 2교시에는 작성한 버킷리스트 가운데 한 가지를 골라 이루는 계획을 세워 보려고 했는데 A양과 B양 그리고 NIE 수업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에게 특별(?) 미션을 주었다. ‘내가 나에게 주는 기사 선물’ 기사를 선정하고, 이유를 밝히는 활동이 특별 미션이었다. 


교실을 한바퀴 돌며 학생들의 활동을 살펴보았다. A양에게 다가갔다. A양은 나누어 준 신문의 한 기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A양은 자신에게 줄 선물로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공부뿐이었어요”라는 기사를 골랐다. A양이 신문에서 절망을 이겨낸 로긴스를 만나기를 희망했었는데 분명 그 기사를 자신에게 선물 줄 기사로 선정했다. 활동이 마무리되고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A양에게도 발표해 보면 어떻겠느냐 제안했더니 그녀는 머뭇거리지 않고 발표했다. 





미국의 17세 소녀 돈 로긴스는 집도 없이 학교 청소부로 일하며 공부해 하버드대 입학할 예정이라는 기사이다. 약물중독자였던 로긴스 양의 부모는 자녀들을 돌보지 않아 그녀와 오빠, 동생은 물과 전기가 끊긴 집에서 살다 냄새난다며 친구들에게 따돌림도 당하며 살았다. 부모가 아예 가출하자 로긴스 양은 학교와 지역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아 학교 청소부로 일하며 생계를 잇고 학업을 계속 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자신이 그 기사를 고른 이유는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생겼어요” 라고  말했다. 



(전략) 2년 전 똑똑한 로긴스 양이 숙제를 안 해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교사들이 집에 전기가 안 들어오고 양초를 살 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중략) 공부는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는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힘든 일이 많이 일어났지만 공부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학교 성적 3.9점(4.0 만점)에 대학수학능력시험(SAT) 2110점(2400점 만점)을 받은 그는 주립대 3곳과 하버드대에 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3월 하버드대에서 입학 통지서를 받은 것. 그것도 장학금과 생활비까지 대주는 특별한 입학 허가였다. 그는 생물학을 전공할 예정이다. (후략)


‘학교 청소부’ 美소녀 로긴스 절망 딛고 하버드대 입학 (동아일보, 2012-06-09)



엄마 잃고 슬픔에 잠겼던 A양, 아빠와 함께 살 수 없는 현실, 그 아빠를 전화 목소리로밖에 들을 수 없는 외로움. 15세 소녀의 아픔은 미국의 소녀 ‘학교 청소부’ 로긴스 양을 만나고 자신과 닮은 아픔을 공감하고, 아팠던 감정들을 분출해 낸 것이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생겼어요”라고 한 말에는 A양이 참 많은 것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공부방에 가지 않기 위해 NIE 수업을 택했다지만

, A양이 로긴스 양을 만난 이후 자신의 불우한 현실을 이겨낼 긍정의 힘을 얻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NIE 수업 때마다 학생들이 읽는 신문 기사 한 꼭지에서 자신에게 힘이 될 기사를, 자신의 마음을 위로해 줄 누군가를 만나는 기사를, 자신이 격려해 줄 대상을 만나는 기사를, 자신이 축해해 줄 대상을 만나는 기사를, 자신의 하루를 신나게 해 줄 행복메이커 기사를 만나길 바란다. 사회면을 가득 채우는 사건 사고 기사가 많더라도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어쩜 내 이야기가 아닌지 동일시할 수 있는 그 어떤 기사를 만나게 된다면, 읽기를 통한 긍정의 치유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지금 시대가 언급하는 힐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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