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비극 알리며 탐사보도의 전설이 되다
이재경,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요약] 베트남전 ‘미라이 학살’을 고발한 세이모어 허시. 작은 통신사를 통해 극히 일부 신문에만 기사가 나갔지만, 1보가 나간 뒤에는 세상이 바뀌었다. 1주일 뒤, 두 번째 기사가 나갈 땐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모든 주요 매체가 허시의 기사를 원했다. 그는 이 기사로 탐사 기자의 전설이 되는 첫발을 내딛게 된다. 10년 차 프리랜서 기자이던 세이모어 허시는 1969년 11월 12일 조지아주 포트베닝 미 육군 기지에서 베트남 전쟁의 방향을 바꾸는 첫 기사를 송고한다. 제목은 ‘육군 중위 109명 민간인 살해 혐의로 기소’였다. ‘미라이(My Lai) 학살’로 알려진 사건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기사였다. “윌리엄 캘리 2세는 26세로 ‘러스티’라는 별명을 가진..
2016. 8. 29. 1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