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3. 14:14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여름 휴가철이 시작된지 벌써 한 달! 각종 고속도로는 극심한 교통체증을 앓고, 전국 해수욕장과 계곡은 사람들로 붐비지만 (나를 비롯해) 아직 휴가를 떠나지 못한 이들도 많다. 사정상 올여름 휴가는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무더위가 두려워 휴가를 포기하고 방콕을 선택한 사람들, 휴가는 다녀왔지만 아직까지 그 달콤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집에서도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여행기들을 모아봤다.
1.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출처-교보문고]
작가의 집 박물관은 허구이며 우리 관람객은 그 독자다. 우리가 그 집에서 의미를 끌어낸다. 결국 바르트가 옳았던 것 같다. 책과 마찬가지로 집도 우리 상상력 안에서 재창조되며,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 마음대로 그들을 체험할 수 있다. 비난할 수도, 존경할 수도, 시대착오적이 되거나, 경험적 진실을 고집하거나, 그들의 존재를 매도할 수도 있다. 우리와 저자의, 그 장소의, 우리 자신의 관계에 의거해서 말이다. _ 226쪽 중에서
미술관에 가서 오래된 그림 앞에 서보고, 고서점에 가 작가의 초판본을 찾아보는 것은 꿈꿔봤지만, 작가의 집에 가서 그의 숨결을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 그림이 그려진 공간, 이 책이 쓰여진 공간에 대한 로망. 왠지 그곳에 가면 나도 무언가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고, 그 공간 그대로 나의 집을 개조하면 나 역시 그렇게 될 것 같은 생각을 한 이들이 꽤 있었나보다. 이곳저곳 작가들의 집이 박물관처럼 운영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헤밍웨이, 에밀리 디킨슨, 데이비드 소로, 마크 트웨인 등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12명의 작가의 집에 실제 찾아간, 어느 문학교수의 작가 집 방문기이다. 그냥 작가집을 방문하고 그곳에 대한 설명을 담았다면 지루하고 밋밋했을텐데, 이 책은 이 저자가 골 때린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작가의 집’을 상업주의에 물든, 작가들이 알면 땅 속에서도 호통칠 거짓된 것이라고 바라본다. 예를 들면 그런거다. 톰 소여의 모험 속 톰은 상상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마크 트웨인의 마을에 가면 톰이 쳐 놓은 울타리가 버젓이 있다는 것이다. 또 헤밍웨이의 집에 있는 책상과 만년필 앞에서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과연 저 자리가 그 자리가 맞는지, 그냥 어느 상점에서 사온 만년필을 두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건 아닌지 그 상황 자체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린다.
그럼에도 그는 12곳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며 작가들의 집과 작가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저자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시크한 시선으로 작가의 집을 묘사하고, 그 지역의 이야기와 작가가 실제 이 지역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들려준다. 몇 곳은 실제로 가고 싶을 만큼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이 책 덕분에 관심을 갖게 된 작가들도 생겼다. 언젠가 미국 일주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책에 나온 몇 곳은 꼭 가보고 싶다.
2. 신을 찾아 떠난 여행
[출처-교보문고]
아직 당신의 신을 만나지 못했나요?’ 간호사는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그냥 신도 아니고, 그냥 하느님도 아니고, ‘당신의’ 신. 마치 오직 나만을 기다리고 있는 신이 어딘가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_ 10쪽 중에서
종교를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종교든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런데 늘 부딪히는 문제는 어느 종교든 존재하는 ‘신’에 대한 확신이었다. 과연 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떤 형식으로 내게 그 존재방식을 보여주는가, 나는 대체 어떻게 그 계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늘 그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이건 딱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 생각했다. 이 사람이 날 대신해 신을 찾아 여행을 떠나줬으니 말이다.
어느 날 응급실에 실려 가며 어쩌면 나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저자는 신의 필요성을 느끼며 퇴원하는 순간 신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의 수는 무려 9900여 개. 이 모든 것을 살펴볼 수는 없음으로 이성적 기준에서 벗어나는 교리를 가진 종교, 환각제를 사용하는 종교, 종교를 부정하는 종교 등등의 기준을 세워 추리고 추려 여덟 개의 종교를 걸러낸다. 그것이 이슬람 수피즘, 불교, 카톨릭 프란체스코회, 라엘교, 도교, 위카, 샤머니즘, 유대교 카발라다. 그리고 그 종교의 발상지를 찾아 이스라엘, 터키, 네팔, 중국, 미국 등을 찾아 떠난다.
그의 책은 전작 <행복의 지도>에서처럼 어떤 해답을 담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 그들이 종교로부터 어떤 위로를 받고 있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신은 어떤 윤활유 역학을 하고 있는지를 경험한 그대로 보여주며 나와 맞는 종교와 신을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주제는 무겁지만 접근은 유쾌한 책이다.
3. 중국 만리장정
[출처-교보문고]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가보지 않은 쪽이 더 나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여행을 길게 하다보면 어떤 나쁜 길도 항상 나쁘지만은 않고 좋은 길도 항상 좋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좋은 길과 나쁜 길은 이어져 있다. _ 355쪽
제목을 잘 읽어야한다. 중국 만리장‘성’이 아닌 중국 만리장‘정’이다. 개인적으로 1년에 한 번은 중국에 여행을 갈 정도로 중국 곳곳을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단 한번도 중국을 자전거로 여행해봐야겠다는 생각은 못 해봤던 것 같다. 드넓은 땅인지라 도시와 도시 간격이 띄엄띄엄있어 자칫 자전거로 가다가는 밤에 길에서 자야할지도 모를 일이 발생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을 자전거로 일주했던 이 아저씨가(그때도 대단하다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그에 맞먹는, 아니 더 고된 행군이 될 중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겠다고 했단다. 무려 60일 동안, 중국 8대 고도를 연결하는 4800여 킬로미터의 여정을 말이다.
자전거의 나라 중국이기는 하지만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문화는 낯선지라, 상해 공항에서부터 시작하는 그의 여정은 처음부터 그리 녹록치 않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조립하는 그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 공항에서 도시로 빠져나가는 길 조차 찾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은 난징, 시안, 뤄양, 장저우, 카이펑, 안양, 베이징, 항저우를 거치면서 진짜 중국의 모습을 하나 둘 보여준다. 그들이 사는 집에 가 이야기 나누며 진짜로 평범한 중국인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갑작스러운 경제발전을 받아들이는 중산층의 격변의 심정도 들어보고, 눈부신 역사적인 유적지를 둘러보며 상업화로 파괴되어 가고 있는 문화제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곳곳에서 여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뜻밖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읽는 맛도 담겨 있다.
전문가의 사진은 아닌지라 보는 즐거움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도 있지만, 그의 경험자체는 당분간은 아니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내가 해 볼 수 없는 경험일지 몰라 그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즐겁다. 혹 자전거 여행을 꿈꾸는 이가 있다면 그의 루트를 따라 중국을 답사해보는 것도 제대로 된 자전거 여행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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