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6. 11:56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식께 안 헌건 놈이 모르곡 소분 안 한 건 놈이 안다.’
갑자기 외계어가 튀어나와 당황하셨죠? 이 말은 외계어가 아니고 제주도 사투리입니다. 제주도에 내려오는 속담으로 ‘제사는 지내지 않아도 남이 모르지만, 벌초는 안하면 금방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뜻이라고 해요. 이런 속담이 있을만큼 제주도는 벌초를 굉장히 중요한 명절 행사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서울신문
제주에서 조상묘의 벌초를 안하는 것은 ‘불효 중에 불효’로 친다.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 명절 제사에는 못 오더라도 벌초는 반드시 참가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전해진다. 제주에서는 외아들을 육지로 잘 보내지 않으려 하는 것도, 혈육이 끊긴 선친이 임종을 앞두고 ‘화장’을 해달라고 유언하는 것도 다 벌초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음력 8월 초하루가 되면 형제, 사촌 할 것없이 문중이 모여 조상의 묘를 찾아 반드시 벌초를 하는 것은 제주의 오랜 전통이다. 여기에 8촌 형제들까지 모여 증조와 고조부 등 4대조 묘까지 깨끗하게 손질한다. 이를 ‘모듬 벌초’라고 한다.
[주말탐방] 제주도의 별난 벌초문화 (서울신문, 2007-08-24)
심지어 2006년에는 제주도에 사는 80대 할머니가 재산을 물려받은 맏아들이 벌초를 제대로 안 하는 불효를 저질렀다면서 아들을 상대로 재산을 되돌려 달라는 소송을 했다고 해요. 법원에서도 묘소 벌초와 조상 제사 등 봉행을 제대로 하지 않은 아들은 물려 받은 재산을 다시 어머니께 돌려 드리라는 판결을 했다니 벌초가 현실적으로도 얼마나 중요한 명절 행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제주도뿐 아니라 아마 추석을 맞아 가족 단위로 성묘 전에 벌초를 가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효심은 갸륵하지만 이맘 때만 되면 벌초 사고가 뉴스를 장식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고 효도의 첫걸음은 자기 몸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인데 효도를 하러 가서 자기 몸을 상하는 불효를 저지르면 안 되겠죠. 오늘은 많이 일어나는 벌초 사고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벌초 사고 3대장. 벌, 뱀, 예초기
도시에서만 살다가 자연 속에 모신 묘소에 벌초하러 찾아뵈면 경치도 공기도 참 좋은데요. 한편으론 도시에서만 살다보니 자연 속의 위험을 깜빡하기도 합니다. 특히 벌초 때만 되면 벌집을 잘못 건드려 퉁퉁 붓는 기사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났습니다.
출처 - TV조선
지난달 31일엔 경북 성주군에서 74살 최 모 씨가 벌초하다 벌에 쏘여 숨지는 등 전국에서 말벌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늦게까지 이어진 무더위로 말벌 발육이 빨라져 개체수가 급증한 데다 8, 9월 번식기까지 겹쳐 말벌의 공격성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꿀벌보다 몸집이 10배 이상 큰 이 말벌은 한 마리가 30에서 40회 연달아 쏠 수 있어 특히 위험합니다.
[벌떼의 습격 ①] "추석 벌초 때 말벌 조심하세요" (TV조선, 2013-09-04)
벌에 쏘이면 아프거나 붓고 심하면 호흡 곤란과 혈압 저하 등 쇼크가 와서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벌초를 하실 때는 벌을 자극하지 않도록 밝은 계통의 옷보다는 어두운 계통을 입으시고 화장품이나 향수는 가급적 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만약 벌에 쏘이셨다면 물과 비누로 물린 곳을 씻은 다음 가까운 병원으로 가 빨리 치료를 받는 게 좋습니다.
다음은 뱀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맹독을 가진 독사는 없기 때문에 벌에 비해서는 빈도도 낮고 위험도 덜한 편이지만 주의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뱀에 물리는 사고이다. 뱀에 물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두꺼운 장화나 등산화를 꼭 착용하고 잡초가 많은 곳은 긴 막대기로 미리 헤치는 방법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지난날의 고향과 지금의 고향 산천의 환경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따라서 막연한 예전의 추억으로 들뜨거나 지나친 자신감은 뜻밖의 안전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
안전사고 없는 추석 보내기 (시민일보, 2013-09-05)
출처 - SBS
마지막으로 예초기입니다. 예전에는 익숙지 않은 낫질을 하다 베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예초기에 다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보고된 예초기 사고가 380건인데 이중 75.5%인 288건이 추석 전후로 일어났다고 해요. 공구 메이커에서도 예초기가 나올 정도로 대중화되었기 때문인데요. 낫질보다 편하지만 그만큼 위험성은 더 커졌으니 다루실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예초기 사용이 능숙하지 않은 일반 소비자들이 이 시기에 대거 벌초에 나서는 데다, 대부분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않거나 안전수칙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예초기를 사용한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예초기를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예초기 날에 안전덮개를 사용하고, 작업 지역 반경에 장애물을 미리 치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예초기가 연료와 오일을 넣으면 무게가 10kg가량 되기 때문에 장시간 들고 있을 때 어깨와 등 허리 발목 등에 통증이 생기고, 모터 회전으로 인한 진동으로 어깨와 팔에 힘이 가해져 상체 전체가 긴장하게 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예초기를 사용하기 전에는 안전장치를 반드시 점검하고 어깨끈을 조절해 등에 붙여 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2~3명이 교대로 예초기로 벌초하고 한 사람 당 벌초 시간은 10분 정도로 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작업을 중단하거나 이동할 때는 예초기 엔진을 정지시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초기 안전사고 주의‥ 예초기가 뭐길래? (조선일보, 2013-09-05)
익숙지 않은 예초기를 사용하다 바닥의 돌이 튀어 눈을 다친 경우가 48.7%로 가장 많았다고 하고, 그 다음으로는 다리나 손, 얼굴 등을 베는 사고가 많았다고 합니다. 보호장비를 꼭 착용하시고 기사에 나온 안전 수칙을 꼭 준수해 주세요.
그밖에도 가을 태풍으로 인한 호우 피해가 있을 수 있으니 일기예보에는 관심을 기울이셔야 겠습니다. 그리고 풀이나 흙에서 옮길 수 있는 쓰쓰가무시병이나 접촉성 피부병에 주의하여 풀밭 위에서 옷을 벗거나 눕지 않도록 하세요. 또한 가을볕에 장시간 벌초를 하다보면 살이 타기 쉬우니 자외선 차단제도 준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맡긴 벌초 대행. 2013년 추석 세태
출처 - 서울신문
도시에 나와 사는 생활 때문에 부모님 찾아뵙기 힘들죠. 농촌고령화가 진행되며 벌초할 묘소는 넘치지만 젊은이가 없어 인력 시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해야할 정도라고 합니다.
추석을 앞두고 농촌에서 벌초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 보니 외국인 근로자가 벌초를 대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농촌은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는 데다 국내인들은 공공 근로사업보다 힘든 벌초 작업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진도의 경우 주민 3만3190명 가운데 9796명(29.5%)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한 외국인 단체 관계자는 “최근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변 소개를 통해 광주 광산구 지역이나 전남 완도로 벌초 작업을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벌초 작업으로 하루 일당 7만∼8만 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가 일용근로를 나가는 것은 불법이어서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참… 외국인에 맡긴 ‘추석 벌초’ (동아일보, 2013-09-05)
자손들의 도시살이와 벌초 사고 등 어려움으로 인해 최근에는 벌초 대행이 성업 중이라고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제주도에서도 최근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 자손들이 벌초할 일 없게 화장을 택하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하고요. 어찌보면 합리적이지만 씁쓸하기도 하네요.
시멘트 묘의 등장과 고령화 문제
시멘트로 씌워진 기상천외한 묘들이 최근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농어촌 인구 고령화로 봉분을 관리해줄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진 데다 멧돼지가 묘를 파헤치는 일이 잦아 고육지책으로 나온 아이디어다. 매장문화의 혁신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조상을 섬기는 정신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시멘트묘 등장… 이래도 될랑가몰라 (동아일보, 2013-04-25)
전남 고흥군 한 마을에 묘 전체를 회색 시멘트로 덮어버린 ‘콘크리트 묘’가 등장했습니다. 가족묘지 입구부터 봉분까지 모두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공사를 한 것인데요. 이렇게 만들어 놓은 이유는 묘지에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여 수시로 봉분을 훼손하기 때문에 매년 보수 작업이 어렵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이 기사를 접한 뒤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습니다. “아무리 묘지 관리가 어려워도 콘크리트로 발라놓은 것은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며 씁쓸해 하기도 하고, ”보기에는 안 좋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보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현상들이 인구 고령화 문제와도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고 하는데요. 전통가치는 지키고 싶지만 실제로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제는 화장이나 수목장 등 좀더 현실적인 대안을 생각해볼 때 입니다.
이처럼 시대가 변하면서 다양한 벌초, 묘지 관리 문화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벌초가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부모님 묘를 찾아뵙겠습니까. 올 추석 전에는 안전장비를 챙기셔서 가족끼리 벌초를 하러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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