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23. 13:14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한국에선 ‘언론고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메이저 신문 방송의 경우 채용시험을 치를 때마다 수백 대 일의 경쟁이 벌어집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기자는 어떤 사람이 뽑히며 사회적 위상은 어떨까요?
북한 역시 기자가 되기 매우 힘듭니다. 그렇지만 아무 학부나 나와도 채용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으면 기자가 될 수 있는 남한과 달리 북한에선 관련 학과를 나온 졸업생 중에서 우수한 사람을 노동당에서 뽑아 언론사에 임명합니다. 북한 사회는 기자 뿐 아니라 모든 직업을 국가가 배치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입사시험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한국 대학에 신문방송학과 등 언론관련 학과들이 있는 것처럼 북한에도 조선어문학부 안에 신문학과가 따로 있습니다.
이중 가장 유리한 지위에 있는 것이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생들입니다. 북한 중앙언론기관의 좋은 자리는 거의 다 이곳 출신들이 꿰차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가장 선호하는 언론사는 노동신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조선중앙방송, 조선중앙통신사 순입니다. 민주조선, 청년전위, 조선인민군과 같은 신문이 선호도 순에서 그 뒤를 이으며 지방지들은 북한 역시 기자로서 좋은 직장은 아닙니다.
노동신문 정도의 기자가 되기는 상당히 힘듭니다. 일단 김일성대에 입학하기 위해서 6촌까지 친척 중에 성분이 걸리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노동신문 기자는 이렇게 성분을 엄밀히 검사해 뽑은 김일성대 졸업생 중에서 다시 성분과 실력 등을 검증해 선발합니다. 같은 김일성대 동문이라고 하더라도 집이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지방 노동당 기관지에 배치됩니다. 간혹 지방 사람들도 평양에 남아 중앙 언론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런 사례는 많지는 않습니다.
일단 신문 방송에 배치되면 한국의 수습기자와 같은 수습기간을 거칩니다. 저도 겪어봤지만 한국 언론의 수습과정은 하루에 잠을 2~3시간 재우면서 담당구역을 돌게 하는 등 여러모로 혹독합니다. 북한의 수습기자는 이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고난 속에서 단련을 시킨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언론사에 배치된 수습기자들은 노동현장에서 3~6개월 동안 노동을 시킵니다. 건설장, 농촌 등에 보내서 낮에는 힘든 육체노동을 시키고 밤에는 김일성 부자 교시 말씀을 외우게 하는 식입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잘 먹고 잘 지내면서 공부만 하던 학생들에게는 이런 육체노동이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야 노동당의 ‘문필전사’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수습과정은 필수코너입니다.
북한에는 기자도 급수제도가 있습니다. 수습을 떼고 나면 6급 기자가 됩니다. 이후 3~4년마다 근무기관과 업적 등을 고려해 급수가 올라가는데 이것 역시 시험을 쳐서 통과를 해야 급수가 올라갑니다. 중앙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사에 들어온 기자는 수습 기간이 끝나고 6급부터 시작하지만 지방대학을 졸업한 기자는 무급부터 시작해 6급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일종의 차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들은 이후 승진과정에서도 유리벽에 좌절해야 합니다.
1급 기자가 가장 높은 기자는 아닙니다. 특출한 기자에 한해서 공훈기자, 인민기자라는 칭호를 수여합니다. 공훈기자나 인민기자는 수여 자격이 15년 이상 근무하면서 당적 출판보도 사업과 후배 육성에서 특출한 공훈을 세우거나 출판보도 선전사업에서 창조적 재능을 발휘한 자에게 수여한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규정이고 그냥 김정일의 눈에 잘 보인 기자들이 이런 칭호를 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민기자 정도가 되면 한국 언론사의 편집국장에 맞먹을 정도로 북한 내에서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TV를 통해 자주 접하는 북한 중앙방송 앵커 정도가 되면 운전자가 딸린 승용차까지 받는 등 최고급 우대를 받습니다. 북한에서 운전자가 딸린 승용차를 받는다는 것은 거의 장관급 대우입니다. 노동신문 기자 정도만 돼도 북한에서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6급 기자는 중앙공급대상 6호부터 시작해 점차 공급 기준이 올라갑니다. 모든 것이 배급제인 북한에서는 어떤 공급대상인지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합니다.
참고로 노동당 비서, 군단장 이상급 고위 간부들은 일일 공급대상이라고 하는데 이런 집에는 매일 아침 그들이 주문한대로 각종 신선한 식재료가 배달됩니다. 그 아래 등급을 삼일 공급대상이라고 하는데 3일에 한번씩 공급이 됩니다. 중앙공급대상은 이렇게 며칠에 한번이라는 기준은 없지만 그래도 상당히 좋은 공급을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선 월급이 거의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에 기자들 역시 북한 화폐로 책정된 월급을 받아서 생활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배급은 가족까지 떨구지 않고 공급해주어 굶어 죽을 걱정에선 해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한 기자에 한해서는 국가에서 집도 빨리 배정이 됩니다. 이외에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방송 기자들은 기차를 탈 때 상급침대(1등침대) 표를 뗄 수 있는 등의 소소한 특권도 있습니다. 상급침대는 노동당 중앙당 간부 정도가 돼야 받을 수 있는 특권입니다. 기자들에 대한 공급은 북한에서 일반적으로 대우가 좋기로 알려진 예술단체나 영화부문 종사자들에 대한 대우보다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끔 김정일이 언론 종사자들에게 ‘감격의’ 선물을 보내주기도 합니다. 조선중앙방송에 종사했던 한 탈북자는 2000년대 초반 김정일이 송어 2000여 마리를 하사했던 일이 있다고 회상했습니다. 조선중앙방송 종사자가 2000여명이니 한 사람에게 한 마리씩 차례진 셈입니다. 그나마 조선중앙방송이니 가끔이나마 선물이 내려오지 다른 언론 종사자에게는 이런 일이 없습니다.
그래도 장군님의 선물이라고 강당에 모두 모여 찬양 노래 부르고 주석단에 올라 한 사람씩 차례로 받습니다. 이때도 송어를 머리 높이 쳐들고 장군님 만세를 부른 뒤 초상화에 인사하고 내려가야 합니다. 송어 한 마리를 받겠다고 방송사 모든 인원이 한나절이나 모여 있는 것이죠. 이 탈북자는 이렇게 받은 송어를 사무실에 들고 왔다가 갖고 퇴근하는 것을 깜빡 잊었습니다. 마침 다음날이 일요일이었는데, 월요일에 출근하니 벌써 변질돼 있었습니다. 그는 장군님의 선물을 썩혔다는 이유로 사상투쟁회의에 나가 심각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방송사에서 쫓겨나지 않았으니 다행입니다. 북한 기자들의 삶은 다음 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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