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8. 10:45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좀비’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핏기 없는 창백한 피부에 군데군데 뜯겨져 나간 몸으로, 두 팔을 내뻗은 채 멍한 표정으로 돌진하는 괴기스러운 모습을 생각하실 텐데요. 최근 개봉한 <월드워Z>를 비롯해 좀비는 영화와 소설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 ‘좀비’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요? 살아있는 시체라는 것이 정말 가능하기는 한 걸까요? <나는 좀비를 만났다>(메디치)는 한 과학자가 실제 좀비의 존재 가능성을 추적한 책입니다.
1962년 봄, 아이티의 한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클레어비우스 나르시스라는 40대 농부는 사흘 만에 숨졌다. 의사 두 명이 그의 죽음을 확인했으며 큰누이는 사망증명서에 지장까지 찍었다. 시신은 냉장창고에 20시간 보관됐다가 안장됐다. 그런데 이 ‘죽은 남자’는 18년 뒤 고향마을의 시장에서 다시 여동생 앞에 나타난다. ‘티 팜’이라고 불리던 서른 살의 여인은 1976년에 공식 사망진단을 받았지만 3년 뒤 다시 나타났다. 어머니는 관자놀이의 상처를 확인한 뒤 딸이 맞다고 직접 확인했다.
[경향신문 2013-06-22]좀비 실존 보고서 …아이티 ‘비밀조직’은 범죄자를 좀비로 만들었다
[출처 - 교보문고]
저자는 직접 아이티에 가서 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아이티의 독특한 토속신앙인 ‘부두교’의 사제들이 죽음에 가까운 심각한 마비를 이끌어내는 독을 사용해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이 독을 쓰면 사람이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가 되는데요.
독에 중독된 사람들은 잠시 땅에 묻었다가 다시 파낸 뒤 ‘좀비의 오이’라고 불리는 독말풀을 먹였다고 합니다. 이 풀은 마치 사람들을 ‘좀비’처럼 멍한 정신상태로 만들어버린다고 하네요. 이렇게 좀비가 된 사람들은 노예처럼 부림을 당했습니다. 앞서 귀환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도망친 경우지요. 보통 아이티의 전통 공동체에서는 사회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좀비 형벌’을 내렸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죽은 사람이 다시 깨어나는 일이 아이티뿐만 아니라 심심치 않게 종종 벌어졌다는 겁니다. 부두교 주술사들이 썼던 독은 복어 독인 테트로도톡신이 주성분이었는데요. 1977년 일본 교토에 사는 40세의 남성도 복어독에 중독돼 숨이 멎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24시간 뒤 이 남자는 다시 저절로 숨을 쉬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유럽에는 '안전관'이라는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매장된 후 혹시 살아나면 생명을 유지하면서 ‘나 살아있소’하고 알릴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된 관이죠. 1905년 영국의 한 의사는 산 채로 묻힌 사례들을 모아 책으로 엮기도 했다고 전해지네요. 작가 도스토옙스키조차 자신이 죽은 것처럼 보여도 가사 상태일지도 모르니 죽은 지 5일이 지나서 매장해달라고 부탁했다 합니다.
그런 걸 보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명확한 선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우리가 아직 현대과학으로 명쾌하게 밝히지 못한 몸의 상태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상태의 ‘좀비’도 지구상 어디에선가 대량 서식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좀비’처럼 실제로 존재한다는 건 입증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구상 어딘가에 실존할 거라고 믿는 것들은 꽤 많습니다. 전설 속 낙원으로 일컬어지는 ‘샹그릴라’도 그 중 하나일 텐데요. <샹그릴라의 포로들>(창비)은 우리에게 그 ‘샹그릴라’의 이미지가 어떻게 구축됐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출처 - 교보문고]
무릉도원이나 유토피아처럼 전설 속 낙원을 떠올리게 만드는 ‘샹그릴라’는 1933년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처음 등장한다. 소설 속 주인공 일행은 비행기 불시착으로 티베트 어딘가에 떨어진다. 그들은 ‘푸른달 골짜기’라는 곳으로 이끌려가고 절벽 틈에 자리 잡은 장엄하고 아름다운 샹그릴라 라마 사원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쇼팽의 미공개 연습곡처럼 이제껏 사라졌다고 알려진 갖가지 귀중한 예술·문학작품들이 쌓여있었다. 온화하고 행복한 사원 사람들은 수련을 통해 200세가 넘는 수명을 누리고 있었다.
[경향신문 2013-03-08]티베트는 샹그릴라가 아니다… 티베트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깨라
‘샹그릴라’를 처음 소개했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은 굉장한 인기를 끌었고 프랭크 카프라 감독이 영화화하기도 했습니다. 소설과 영화는 서양인들에게 ‘샹그릴라’의 무대인 티베트 자체를 상상 속의 신비한 공간이라고 여기게 만들기도 했는데요.
[출처 - 교보문고]
티베트 불교는 서구인들에게 큰 인기이기도 합니다. 비틀스가 1966년에 발표한 노래 ‘Tomorrow Never Knows'를 녹음할 때의 일화가 전해지는데요. 당시 존 레논은 녹음기사에게 “목소리가 산꼭대기에 있는 달라이 라마처럼 들리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네요.
‘샹그릴라’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자 2001년 중국 정부는 별안간 윈난성 중뎬(中甸)이 바로 그곳이라고 하면서 지명을 ‘샹그릴라’라고 바꾸기도 했지요.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지대로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그곳이 아름답다 해도 진짜 샹그릴라라고 믿는 사람들은 없겠죠.
그렇게 아닌 걸 알면서도 중국에 갔을 때 ‘샹그릴라 OOOkm'라는 이정표를 보고 마음이 잠시 들떴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전히 ‘샹그릴라’가 티베트 어딘가 알려지지 않은 곳에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사는 게 너무 팍팍하니 그런 낙원이라도 기대하는 것이겠죠.
책의 저자는 그런 생각에 경고를 던집니다. 티베트가 마치 ‘샹그릴라’인양 환상을 품는 일만 봐도 그렇죠. 티베트 독립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 건 사실이지만, 실질적 도움은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샹그릴라’란 이미지 때문에 티베트가 실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기보다 신비한 ‘힐링’의 대상, 순수하고 영적인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만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죠.
결국 ‘샹그릴라’는 그 어디에도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행복의 파랑새가 결국 우리 곁에 있었듯, 우리가 사는 이곳을 샹그릴라로 만들어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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