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에 무관심했던 나, 새롭게 눈 뜬 계기가 된 것은

2011. 7. 4. 13:01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신문에 푹 빠져버린 지 2년째, 나는 이 형용할 수 없는 쾌감을 새 눈을 기증받은 듯 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주입식 교육에 시달리면서 당장 주어진 일만 보던 컴컴한 내 눈이, 신문이라는 기증자를 만남으로써 멀고 밝은 것들을 차츰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흔히 그렇듯이, 나 또한 어릴 적부터 신문을 즐겨 읽지는 않았다. 여느 아이들처럼 신문이라 하면 TV 프로그램 편성표를 뒤적이거나 연예기사를 볼 때 찾았을 뿐이다. 어린 소녀의 눈에, 어두운 종이 위로 쓰여진 촘촘한 활자와 한자들이 반가울 리 없었다.



마냥 어른들만 읽을 수 있을 것 같던 신문을 처음 진지하게 접한 건 엉뚱한 동기에서였다. 중학교 3학년 경제 시간에, 사회 현상에 관한 토론을 하던 중 사회 선생님께서 “한미 FTA를 어떡하면 좋을까?”라는 물음에 내가 우물쭈물하자 “넌 공부만 잘하지 주변을 보는 안목은 없구나.” 라며 망신을 주셨다. 괜한 오기가 생겨 집에 와 곧장 높이 쌓여 있던 신문 중 한 개를 펼쳐 들었다. FTA라는 글자가 나를 놀리듯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나는 순간 부끄러움과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때부터 신문과 나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 것 같다. 시작은 비록 오기 때문이었지만 그 후로 난 신문 없이는 하루를 시작할 수 없을 정도로 신문에 빠져들었다.

신문을 읽고 하루를 시작하면 평소에는 당연시해왔던 것들이 의미를 갖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걸러지지 않은 무분별한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맹신하던 내게 진실과 허위를 구분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사실 뉴스나 인터넷 기사도 신문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뉴스는 신문의 헤드라인을 따와 객관적 정보만을 제공하고, 인터넷 기사에는 선동적이고 편향된 의견들이 난무하다. 이런 복잡한 정보의 범람 속에서 내가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문 덕분이었다. 신문이야말로 객관적인 동시에 치우치지 않은 견해도 접할 수 있는 최선의 매개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내가 현재 지닌 균형 있고 소중한 정보들의 근원지는 대부분 신문이었다.

하지만 지식을 쌓고 세상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만 신문을 접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단편적 정보보다는 세상을 크게, 그리고 진지하게 모색할 줄 아는 힘을 준다는 것이 신문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누구나 무언가를 단순히 안다는 것은 쉽지만, 그 내면을 추리할 수 있는 힘을 지니는 것은 신문과 친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최근 다시 떠오른 일명 미네르바 사건, 천안함 사건, 각종 비리와 국제 정세 등은 편견, 즉 자기만의 선입견으로 바라보기 쉽다. 하지만 신문 속의 또 다른 나인 칼럼들을 읽다 보면 내 고집을 접고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융화성도 얻게 된다. 이처럼, 세상에 어둡던 내게 지식과 통찰력, 더불어 내적인 성숙을 가져다 준 신문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새 눈의 기증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1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모음집>중 고등부 은상 수상작 황현아 (성서고 3학년) 님의 ‘자기 것만 보이던 소녀, 세상을 보는 눈을 기증받다’를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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