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2013. 12. 19. 10: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어릴 적 크리스마스의 기억을 떠올리면 두 가지가 생각난다. 하나는 크리스마스 날 아침 머리 위에 놓여 있던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또 하나는 안방 침대에 누워서 동생과 함께 봤던 크리스마스 특집 만화 ‘스쿠루지 영감’과 영화 ‘나홀로 집에’다.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이면 언제나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달라며 카드를 썼고(물론 카드에 적힌 선물이 오지는 않았다),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것보다 이불 속에서 성탄절 특집 만화와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좋았다.


길을 걷다 문득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 송을 듣고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로 집에 돌아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꺼내 들었다. 어릴 적에 크리스마스를 선물과 영화로 보냈다면 어른이 되어서는 디킨스의 소설을 읽는 것이 크리스마스 연례행사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파티는 다가오는 한 해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하는 데 지금까지 그 어떤 성인들이 남긴 설교집 보다도 큰 역할을 한다.


<크리스마스 축제>, 35쪽 중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제목보다 더 유명한 건 주인공 '스크루지' 영감이다. 구두쇠에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를 꼬집어 말할 때 부르는 이름 '스크루지'. 이 스크루지 이야기를 처음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찰스 디킨스다.




찰스 디킨스는 ‘크리스마스 할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영국에서 엄청나게 사랑받는 작가다. 1843년 12월 17일 발간한 ‘크리스마스 캐럴’은 그 이후 단 한 번도 절판되지 않고 다양한 판형과 갖가지 선물용 책으로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책으로 자리매김했다. 찰스 디킨스가 죽었을 때엔 런던의 손수레를 끄는 한 소녀마저 "디킨스가 죽었어요? 그럼 크리스마스 할아버지도 죽은 건가요?"라고 외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을 정도로 영국인의 사랑을 듬뿍 받은 작가였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마치 디킨스 할아버지가 선물해주는 크리스마스 종합 선물세트 같다. 총 7편의 단편이 들어있는데, ‘크리스마스 캐럴’과 ‘교회지기를 홀린 고블린 이야기’에는 각각 존 리치와 피즈의 삽화도 있어 함께 보는 즐거움도 있다. ‘교회지기를 홀린 고블린 이야기’는 염세주의자 가브리엘 그럽이 헌신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움직인다는 내용으로 스크루지 이야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 ‘가난한 일곱 여행자’, ‘늙어가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란 무엇일까’ 등의 단편은 저마다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한다.



일 년이라는 많은 날들 중에 남녀 할  것 없이 닫혔던 마음을 활짝 열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자기 와는 다른 길을 가는 별종으로 생각하지 않고

무덤으로 함께 가는 길동무인 양 생각하는 때가 유일하게 크리스마스거든요.

그래서 전 크리스마스가 비록 제 주머니에 금화나 은화 한 닢 넣어준 적은 없지만 

크리스마스가 저에게 복을 주었고 앞으로도 줄 거라고 믿어요.


<크리스마스 캐럴>, 75쪽 중에서



찰스 디킨스가 여러 편의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무엇일까? 바로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삶,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그 날을 통해 영원히 기억하라는 것이다. 아픔을 억누르지 말 것이며, 과거 속 후회와 아쉬움은 털어버릴 것이며, 더 이상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스크루지의 이야기 역시 그렇다. 찰스 디킨스는 스크루지처럼 아픈 기억을 억누르지 말고, 그저 한편으로 치워놓고 좋은 일만 회상하며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 누구와 함께 있든 중요한 건 '기억'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뮤지컬 <렌트>의 메시지가 '당신은 올 한해를 무엇으로 그릴건가요'인 것처럼 크리스마스를 차분히 자신의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갖는 건 어떨까? 더불어 바쁘게 사느라 챙기지 못했던 주변의 이웃들, 친구들, 가족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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