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과연 나쁜 것일까? 우리가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

2014. 1. 17. 09:28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오락실’을 기억하십니까?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됐지만 1980년대 혹은 1990년대까지도 아이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끌었죠. 주머니에 동전 몇 닢만 생기면 우리는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그 ‘뿅뿅’ 소리로 가득한 어두침침한 공간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종종 그곳은 어른들에게 퇴폐와 탈선의 온상처럼 매도되기도 했지요. (실제 ‘삥’을 뜯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했지만요)


그래서 오락실의 유리문은 검정색의 불투명한 비닐로 코팅돼 있었는지 모릅니다. 오락실 간판에는 늘 ‘지능계발’이란 말이 빠지지 않았고요. 오늘날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PC방을 가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걸 좋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끔찍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범인은 평소 잔인한 게임을 즐겼던 것으로 밝혀졌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합니다. ‘세상 말세야’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고, 게임은 세상을 타락시킨 주범으로 끌려나와 매타작을 당합니다.


따지고 보면 게임이 아무리 사실성이 높다고 한들, 아무리 화려한 그래픽을 구현한다고 한들 현실과 똑같지는 않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개발자의 의도에 따라 철저하게 제한돼 있습니다. 게임 속에서 우리는 정해진 길, 정해진 행동 이상으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는 고작 몇 개의 버튼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게임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게임, 게이머, 플레이>(자음과모음)은 흔히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는 ‘게임’이라는 주제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가고 있습니다.




[출처 - 교보문고]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게임 ‘애니팡’이 인기다. (...) 이 단순한 게임의 인기비결은 무엇일까. (...) “게임이 얼마나 사회적 경험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죠. 보통 게임이라고 하면 혼자서 몰입해 즐기는 ‘왕따’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온라인게임도 그렇지만 게임을 왜 하느냐고 설문조사를 하면 친구가 해서 한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아요. 함께 즐기면 더 재밌는 거죠. 정말 재밌는 게임들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해 재미를 만들어냅니다.”


[경향신문 2012-09-21] ]

“게임에 대한 이중 잣대가 문제… 문화의 한 범주로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즐기게 해야”



요즘 스마트폰에서 인기 있는 게임들의 상당수는 ‘애니팡’과 비슷하게 다른 사람들과의 네트워킹 속에서 진행됩니다. 게임의 역사를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한때 오락실을 점령한 슈팅게임을 밀어낸 것은 ‘스트리트 파이터’류의 대전게임이었습니다. 고독하게 컴퓨터와 싸우는 게 아니라 다른 게임 이용자와의 격투를 가능케 했죠. ‘더블 드래곤’ 같은 게임들은 두 사람이 함께 적들을 물리치는 쾌감을 선사해 인기를 끌었습니다. 놀이나 게임은 역시 사람들과 함께해야 제 맛이니까요.


우리가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현실이 게임에 그대로 녹아 있어서가 아닐까요. 한국에서 유독 리니지나 WOW 같은 MMORPG 온라인 게임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레벨이 있고, 위계가 있고, 서열이 엄연히 존재하는 게임 속 전근대적 세계관은 한국사회의 현실과 크게 다를 것도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게임 속에서는 현실에서 ‘루저’로 천대받는 이들이 패배의 경험을 만회하고 설욕하며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고스톱과 폭탄주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놀이는 결국 우리의 삶을 닮아 있습니다.


게임은 이렇게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저자는 이런 말을 던지기도 합니다. “혹자는 ‘게임’ 따위를 고민하는데 왜 현실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묻고 싶다. 게임 세계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생각하는 기계, 그리고 현실의 같은 일을 반복하는 노동하는 기계. 과연 어느 쪽이 더 행복한 것이냐고. 게임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어쩌면 현실에서 생각하는 기계로 사는 방법이 아닐까.”


게임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흔히 ‘잉여짓’이라고 치부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상에서의 개드립 혹은 떡밥 날리기를 되짚어 본 책도 있습니다. <우리는 디씨>(이매진)는 바로 개드립, 낚시, 듣보잡, 디스, 솔까말 등 수많은 유행어의 진원지이자 각종 루머와 인터넷 세계의 유행을 만들어 내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던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를 분석한 책입니다.




[출처 - 교보문고]



디시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디시를 ‘막장’이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디시 사람들은 현실사회의 계층화가 사이버공간에 재연되는 현상을 ‘막장’이라고 부른다. 네이버·다음 카페, 위키피디아에서 관리자와 일반 누리꾼 간에 위계질서가 형성되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디시 사람들은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회원가입을 한 뒤 로그인해야 글을 쓸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자 그에 순응하는 사람들을 ‘기뮤식의 노예’(디시 김유식 대표를 지칭)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그럼에도 익명성의 공간이 차츰 줄어드는 것을 막지 못하자 모든 이름을 ‘리얼’로 통일하자는 ‘혁명’의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경향신문 2012-04-03] 사이버 언어의 위계화 거부는 존재의 함성”



왜 사람들은 ‘돈도 안 되는’ 게시글 올리기에 목을 맬까요? 현실에서의 부나 명예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선 글 자체가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이며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손아귀에 움켜쥐어야만 부나 명예를 얻을 수 있는 현실과 달리, 사이버공간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그냥 공짜로 퍼 나를수록 명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얻은 권위는 영원하지도 않으며, 막 들어온 ‘뉴비’라 할지라도 누구나 순식간에 또 그 자리에 갈 수 있습니다. ‘3대 세습’이 이뤄지는 현실과는 다르죠. 우리는 게임이나 디시에서만큼은 적어도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 ‘평등’과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게임과 디시에 열광했던 건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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