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말 기회의 땅일까?’ 미국 사회의 실상 알아보니

2014. 2. 4. 10:44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퀴즈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이 나라의 기대수명은 78세입니다. 일본의 83세, 호주·이스라엘의 82세보다 짧습니다. 순위로 따지면 세계 40위 정도로 쿠바보다 낮다고 하네요. 유아 사망률은 벨라루스, 말레이시아보다 높고요. 수감자 비율은 성인 100명 중 1명꼴로 세계 최고이며, 대다수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9~10배에 이릅니다. 강력 범죄 발생 수치도 심각한 수준이고요. 일 년 중 한 달 이상을 하루 생계비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빈층이 150만 가구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나라는 어디일까요?



의외로 쉽게 답을 맞히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답은 ‘미국’입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이 쇠락하고 있다는 말씀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는 분들이 분명 계실 겁니다. 이 내용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럼비아대 교수가 쓴 <불평등의 대가>(열린책들)에 나오는 얘깁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동아시아)라는 책도 미국의 실상에 대한 비슷한 내용을 전해줍니다. 



미국 전역에서 도로를 파헤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쉽게 닳는 아스팔트 대신 비용이 적게 드는 자갈을 깔기 위함이다. 재정압박 때문에 낡은 도로를 방치하는 주 정부도 허다하다. 미국의 한 교수는 이를 다루는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석기시대로의 귀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석기시대’는 곳곳에서 관찰된다. 뉴욕과 시카고 같은 대도시를 포함해 미국 전역에서는 ‘집에서 닭 키우기’가 유행이다. 경기침체로 주식인 육류를 사서 섭취하기가 어렵게 되자 직접 병아리를 사서 키워 닭고기와 계란을 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2011-09-10] “미국 위기 본질은 승자독식에 의한 신뢰의 위기”



미국의 음울한 풍경은 계속 이어집니다. 2010년에는 4000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식비무상지원(푸드 스탬프)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국 어린이의 21%가 최저생계비 이하를 버는 가정에서 크고 있다고 하고요. 한 도시에서 공공임대주택 신청서를 배부하는 날에는 3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어 혼잡으로 인해 62명이 다치기도 했습니다. 한 해에만 집을 압류당한 사람들이 105만 명이나 되면서 공공주택이 유일한 희망이 됐기 때문입니다.



푸드스탬프(food stamp) ; 미국에서 저소득층의 식사를 위한 지원 제도로서, 주로 실업자, 무주택자에게 주로 지급이 되는 데, 이를 받은 사람은 오직 음식을 사는 데만 사용할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공공부문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1972년 이래 처음으로 미국의 수감자가 줄었는데, 범죄가 줄어든 게 아니라 교정비용을 줄이기 위해 재소자들을 조기 석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 경찰들은 공용 신용카드를 주유소에서 받아주지 않는 탓에 연료를 넣지 못해 순찰을 돌지 못할 지경이라고 하네요. 공공학교들은 학생 수 탓이 아니라 운영할 돈이 없어 문을 닫고 있습니다. 미국인 200명 가운데 1명은 노숙자인데,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 정부가 항공비를 대서 다른 주로 노숙자를 떠넘기기도 한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불평등의 대가>를 쓴 스티글리츠는 책을 내고 난 뒤 워싱턴에서 진행한 출간 기념 순회강연에서 이런 말들을 들었다고 합니다.




[출처 - 교보문고]



“숱한 학생들이 자신이 처한 곤경을 호소했다. 이들은 취업할 곳이 없었고, 따라서 대학원 진학이 최선의 시간 활용법이자 취업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부모의 경제력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대학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미 지고 있는 빚 때문에 이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개인 파산을 하는 경우에도 학자금 대출금 상환 면제를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부유한 부모의 도움을 받아 무보수 인턴으로 일하면서 경력을 쌓고 있는 또래 학생들을 볼 때면 이들의 절망감은 더욱 깊어졌다. 서민층 자녀들은 무보수 인턴 자리를 유지할 경제력이 없었고, 장래성을 따질 이유도 없이 닥치는 대로 임시적 일자리를 잡아야 했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충격적인 얘기였습니다. ‘기회의 땅’ 미국에서 이제는 기회를 잡을 기회조차 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 명문대 재학생 중 소득 하위 50% 출신은 9%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반면 상위 25% 출신은 무려 74%에 이른다고 하네요. 스티글리츠는 미국인의 삶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부자 중에서도 최상층은 더욱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그 수가 많아지며, 중산층은 공동화되고 있다.” 30여 년 전 미국의 상위 1% 소득 계층은 국민 소득의 12%를 차지했지만, 2002~2007년에 이르러서는 국민 소득의 65% 이상을 거머쥐게 됐습니다. 미국은 건국 당시부터 자본주의 국가였지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불평등은 ‘새로운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 틀 안에서 자본주의의 실상을 추적해 온 정통 경제학자인 저자조차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미국 사회는 더 노력을 기울인 이들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부자가 되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부를 창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빼앗는 것입니다. 스티글리츠가 보기에 오늘날 미국의 부유층들은 ‘부를 빼앗는’ 데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스티글리츠는 이를 일하지 않아도 어떤 권리를 독점함으로서 얻는, 토지 소유자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같다는 점에서 ‘지대 추구’라고 비판합니다. 결국 책의 제목처럼 이 ‘불평등의 대가’로 미국 사회는 망가졌습니다. 




[출처 - 교보문고]



감세와 재정적자로 인해 정부의 공공투자가 줄어들다 보니 기간시설, 기초 연구, 교육 같은 공공재 즉 다음 세대의 혁신을 몰고 올 수 있는 ‘우물’은 점점 말라붙게 된다. 빈곤층 자녀들은 잠재력이 있다고 해도 점점 그 발현 기회를 찾지 못한다. ‘지대 추구’가 심해짐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몫을 빼앗는 데만 골몰하게 되니 파이 전체 크기는 줄어든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할 의욕을 상실한다. 사회보장 축소로 삶이 불안정해지면서 하루 종일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에게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긴 어렵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보호받을 안전망이 있어야 고위험 고수익 활동에 투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회보장이 잘되는 나라들은 미국보다 훨씬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향신문 2013-06-01] 우리가 겪고 있는 불평등은 ‘새로운 현상’이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의 저자인 김광기 교수도 미국 사회 위기의 근본 원인이 단순한 경제의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의 위기’라고 진단합니다. 이것은 “결국 상위 10% 사람들이 미국 전체 수입의 절반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때문”이라는 겁니다. 앞서 소개했듯 미국인들이 닭을 직접 키우려 드는 것도 ‘나 외에 타인의 도움은 없다’는 절박한 인식 때문이라는 겁니다. 왠지 서글퍼지는 풍경인데, 자꾸만 한국사회의 모습이 이와 겹쳐지는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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