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마을 포템킨 마을로 본 인터넷 시대의 신문

2011. 7. 6. 14:52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제정 러시아 시대에 ‘포템킨 마을’(Potemkin villiange)이라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외부 방문 인사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가짜 마을이었습니다. 1787년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는 새로 합병한 크림 반도로 시찰을 갔습니다. 당시 그 지역 지사인 그레고리 포템킨은 빈곤하고 누추한 마을 모습을 감추기 위해 가짜 마을을 만들어 훌륭하게 개발된 것처럼 눈속임을 했던 것입니다.

이후 ‘포템킨 마을’은 실상을 속이고 겉만 번지르르한 것을 가리키거나 임시 방편적인 것을 지적할 때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대에도 또 다른 의미의 ‘포템킨 마을’은 존재합니다. 심지어 뉴미디어가 ‘포템킨 마을’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유사한 방식을 통해 전쟁의 합리화 등의 목적을 위해 교묘하게 이용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뉴미디어의 ‘포템킨 마을’의 등장은 꽤 오래 됐습니다. 10년 전쯤의 일입니다. 2001년 10월 20일 미국 국민들은 CNN 등의 TV 뉴스를 통해 미 육군 특수부대인 레인저스(Rangers)가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남서쪽 95km 지점의 공군기지로 낙하산 침투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시청했습니다. TV 화면에는 낟알 크기의 초록점으로 빛나는 특공 대원들과 파도처럼 움직이는 낙하산들이 가득했습니다.

미국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이 낙하산 침투는 TV 방송용 연출 작전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미 육군 패스파인더(Pathfinder) 팀이 레인저스에 앞서 미리 탈레반의 공군기지에 침투했다가 탈레반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레인저스 대원들을 투입시키면서 야시장비를 이용해 낙하장면을 촬영했던 것입니다. 이 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계속 확대 재생산됐던 것은 불문가지였습니다. 인터넷의 전파 속도가 빠른 만큼 낙하장면은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졌습니다.

‘빠를수록 좋다’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인터넷 세계에서 이처럼 자극적인 장면은 인기 만점으로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전달됩니다.


<탈레반 소탕 작전을 준비하는 미국 특수부대. 이미지출처:서울신문>



미군은 하루도 빠짐없이 전 세계 어디에선가 전쟁을 하고 있는 집단입니다. 그런만큼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미군은 군사작전에서 영상미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장 잘 이해하는 집단입니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상공에도 실시간 영상중계를 위한 무인정찰기를 끊임없이 띄우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전은 화력 못지않게 미디어에 의존하는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21세기 전쟁에서는 전장의 전투장면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면서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습니다. 일종의 ‘미디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군도 영상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저녁 뉴스를 통해 소개됐던 청해부대의 소말리아 해적 소탕작전도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상미디어는 ‘정보 왜곡’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터넷 화면으로 본 장면은 아무리 현실감이 있다 해도 ‘2차 세계’지 결코 본인이 직접 겪는 ‘1차 세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2차 세계’의 가공을 통해 실제 전투에서는 패하고도 영상미디어를 이용한 사이버세계의 선전전(propaganda war)에서 승리해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청해부대의 소말리아 해적 소탕작전. 이미지출처:서울신문>


인터넷 시대의 동영상은 한마디로 ‘양날의 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목적과 의도가 개입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로 벌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파의 속도를 앞세운 인터넷 정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특정 목적의 여론형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경우 또 하나의 ‘포템킨 마을’이 될 수 있습니다. 가령 투표 마감시간을 앞둔 촉박한 시점에서 거짓 정보를 퍼뜨리며 투표를 독려한다든지 하는 행위도 그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기실에서 얌전히 앉아 기다리던 환자들도 이제 인터넷에서 습득한 의학계의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하고 의사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법률 상담 차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사람들도 인터넷을 통해 얻은 나름대로의 법률지식으로 변호사를 괴롭힙니다. 어떤 의미에서 의학과 법률이 전문가에 의해 다뤄지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정보에 불과해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정보화시대에 있어서 인터넷을 잘 활용하는 사람은 학력과 나이에 관계없이 특정회사에 소속하지 않은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합니다. 인터넷 사이버 세계의 정보만 잘 활용하면 일반인도 1인 미디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칫 겉핡기 인터넷 정보로 환자는 병을 키울 수 있고, 겉핥기 인터넷 법률 상식으로 낭패를 볼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포털 사이트의 지식 관련 서비스는 초반에 비해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사이버 전문가는 자칫 남의 글이나 지식을 드래그해 퍼 나르는 ‘인터넷 원숭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터넷에서 대학생이 질문하고 초등학생이 답변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도 ‘인터넷 원숭이’ 현상의 한 사례입니다. 손자병법에서도 그냥 듣고 보는 것은 ‘지’(知)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체득화한 것이 진정한 지식이라는 의미입니다. 인터넷에서는 그냥 눈으로 훑고 지나가기 쉽습니다. 반면 신문은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지식의 체득화에 유리합니다. 신문의 장점은 훈련된 전문가들이 만든다는 것입니다. 굳이 음식과 비교하자면 햄버거 같은 인스턴트 식품이 아니라 검증된 쉐프가 만든 정식입니다. 영양가면에서도 단연 월등합니다.

좋은 음식이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나듯이 신문 기사는 정독을 하면 그 행간도 읽을 수 있고 진정한 지식으로 흡수가 용이합니다. 물론 종이 신문의 질이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면서 속보성을 자랑하는 인터넷 기사의 장점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역에서도 ‘수시변역’(隨時變易•때에 따라서 변하고 바뀌어야 한다)과 ‘지시식변’(知時識變•때를 알고 변할 줄 알아야 한다)을 강조합니다. 이는 인터넷 시대에 종이신문만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의미와도 통합니다.

진정한 삶의 지식을 체득화하고 사회 현상의 깊은 이해를 위해 종이 신문을 집어 들고 은은한 잉크의 향기를 느낍시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보완적 정보를 얻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포템킨 마을’의 허상에 속지 않는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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