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餘滴)’을 읽으며 설렘과 만나다.

2014. 4. 9. 17:05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매일 아침, 신문을 펴들어 제일 먼저 확인하는 지면이 있습니다. 전 신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오피니언’ 면이 참 좋더군요. 그 중에서도 눈여겨보는 코너가 있으니, 바로 경향신문의 ‘여적’입니다.


여적(餘滴)이란 한자는 남을 '여', 물방울 '적'자라고 해요. 무슨 일이 끝난 다음의 남은 이야기란 뜻이라네요. 여기에선 경향신문의 논설위원들이 쓴 단평(短評)들을 볼 수 있어요. 소개하는 김에 여적에 나왔던 몇 구절을 옮겨 볼까요.


“세상에는 수만금의 부(富)로도 결코 살 수 없는 행복이 있는 법이다. 밥 한 공기, 간장 한 종지뿐인 걸인의 밥상을 왕후(王侯)의 성찬으로 누리는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이 그런 경우다”


이 글을 읽었을 당시가 딱 대학교 2학년 때쯤이었을 거예요.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갑자기 가세가 기울었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그 여파가 가시지 않았었죠. 이 글을 읽었을 당시에도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 원망에 원망을 하고 있었어요. 알량한 자존심에 주변 사람들에게 티는 내지 않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등록금과 용돈 걱정에 전전긍긍하곤 했었죠. 그 때 이 글을 만났어요. ‘행복한 가난’, 이 글의 제목이었죠.


처음엔 반발심부터 생겼어요. 행복한 가난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싶었죠. 사실 그렇잖아요. 실제로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나 ‘가난도 좋은 경험’이라고 쉽게 말하죠. 정말로 아픔을 공감한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정말 힘들고 점점 가난 때문에 수그러들기만 하는데, 가난을 두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 글이 싫기만 했습니다. 글에 대한 첫인상은 정말 그랬어요.






그런데 말이죠, 이상하게도 이 글을 두고두고 읽게 되더라고요.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라 봐주는 모처럼 만의 글이어서 일까요. 글에 소개된 시와 수필을 따로 찾아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지난날의 가난은 잊지 않는 게 좋겠다. 더구나 그 속에 빛나던 사랑만은 잊지 말아야겠다’는 수필 속 구절은 한참동안 가슴에 남더군요.


이 글이 삶을 바꿀 정도로 제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곤 말 못하겠어요. 이 글을 읽은 이후에도 신세한탄하거나 푸념을 늘어놓은 적, 꽤 많거든요. 하지만 말이죠.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누군가가 ‘힘내’하고 등을 툭 한번 두드려주는 느낌을 받았고, 그 느낌 덕에 힘들었던 순간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내 주변에서 함께하는 이들을 둘러보는 여유도 생겼고요.


전 여전히 ‘여적’을 챙겨봅니다. ‘두고두고 간직할 새로운 글을 만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요. 물론 ‘여적’엔 제가 소개했던 글과 같은 따뜻한 글만 있는 건 아니에요.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기도 하고, 씁쓸한 현실을 옮겨놓기도 하죠. 우리네 삶이 슬픔, 고통, 행복이 뒤섞인 잡탕과 같으니, 이를 반영할 ‘여적’ 또한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더 읽을 만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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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사업개발팀 김수지 사원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