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개 언어를 구사하는 ‘초다언어구사자’, 그 비결 알아보니

2014. 2. 25. 10:45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무려 72개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한 사람이 있다면 믿어지십니까? 영어 하나도 못 해서 허덕허덕 하는 게 우리네 현실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19세기 이탈리아의 주세페 메조판티 추기경인데요.



그는 최단시간에 새로운 언어를 학습하는 능력이 있었다. 우선 상대방에게 주기도문을 계속 외우게 해서 그 언어의 소리와 리듬을 파악한 뒤 명사, 형용사, 동사 등 여러 부분으로 쪼개 그 언어의 구조를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이다. 메조판티의 이 일화는 과장된 전설일까, 아니면 사실일까. 만약 메조판티의 언어학습법을 알 수만 있다면 누구나 초다언어구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국민일보 2013-10-11] ‘언어의 달인’은 없다… ‘학습의 달인’만 있을 뿐




[출처 - 교보문고]


미국의 언어학자 마이클 에라드가 쓴 <언어의 천재들>(민음사)은 그 메조판티 추기경의 이야기로 책을 시작합니다. 저자는 메조판티 추기경의 흔적을 추적하며 과연 수십 가지 언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인지를 파고듭니다. 예컨대 러시아의 학자 A.V. 스타쳅스키는 1840년에 메조판티를 만나 그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냈다고도 하죠. 스타쳅스키는 이 비밀을 알아낸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다언어구사자 대학’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은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사라지고 비밀은 묻히고 말았다고 하네요.


저자는 메조판티 추기경의 흔적을 더듬을 뿐만 아니라 현대에 개최된 초다언어구사자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다언어구사가 생활 속에서 정착돼 있는 인도 남부의 대도시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과연 저자는 메조판티의 비법을 찾아내는데 성공했을까요?


저자는 메조판티의 문서를 보관하고 있는 볼로냐의 도서관을 찾아갑니다. 차례차례 열람하던 끝에 마지막 상자에서 그는 해법을 찾아냅니다. 그것은 바로 가로 7.5cm, 세로 2.5cm 크기의 엄청난 양의 종잇조각 뭉치들이었습니다. 각각의 종잇조각에는 단어가 하나 적혀 있었고, 그 뒷면에는 다른 언어로 같은 의미의 단어가 하나 적혀 있었습니다.





신비로운 비법을 기대하신 분들에게는 역시나 ‘고된 노력’이 그 방법이라니 좀 싱겁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저자가 비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건 언어를 배우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즐거움’이라는 겁니다. 저자는 언어학습을 위해서는 언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자신만의 처지를 만들라고 조언합니다.


예컨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일본어를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다수의 언어가 사용되고, 그 다수의 언어를 배우고 학습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물질적 보상이 되는 곳에서 살아가고 일하는 것이야말로 언어학습의 가장 지름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아무 필요도 없는데도 단지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때론 스펙이나 취업을 위해서, 하는 수없이 영어를 공부해야만 하는 우리들은 정말 불쌍한 게 아닐까요.


언어의 즐거움은 뭐니 뭐니해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싶습니다. 메조판티 추기경의 임무 중에는 외국인 전용 고해성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 처형될 외국인 사형수들이 죄 사함을 얻은 채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인데요. 메조판티는 죄수들을 만난 뒤 하룻밤 만에 그 언어를 공부했고, 다음 날 아침에는 이들이 처형대로 가기 전에 하느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내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형은 안타깝지만 어쨌건 그들에게 작은 영혼의 휴식이나마 선사할 수 있었으니 보람이 있지 않았을까요?


이쯤 되면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 그런 언어가 있긴 있습니다. 한 번쯤 들어보셨을 국제공용어인 ‘에스페란토’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에스페란토를 쓰지 않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겠지만 정치적인 방해도 컸다고 하네요. <위험한 언어>(갈무리)는 그 에스페란토가 어떻게 고난과 박해를 받아왔는지를 다룬 책입니다.




[출처 - 교보문고]


에스페란토는 만들어진 언어입니다. 성경의 바벨탑 얘기 다 아시죠? 그 얘기를 듣고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인간들이 저지른 죗값으로 언어의 혼란이 생겼다면, 오늘날은 반대로 언어의 혼란이 범죄를 야기하는 건 아닌가.” 바로 1887년에 에스페란토를 발표한 안과의사 라자루스 자멘호프 박사(1859~1917)입니다. 유대인이었던 자멘호프 박사는 여러 민족이 섞여 살았던 폴란드 비알리스토크에서 성장하면서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민족들 간 차별과 적대감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9개 언어에서 공통점과 장점만을 뽑아내 에스페란토를 만들었고, 곧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인류 공통어로 모든 사람이 형제처럼 가까워지고, 사회악도 없어질 것이다.”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이런 생각을 품었다. 1908년 ‘세계에스페란토협회’를 창립한 헥토르 호들러는 “민중들 간의 우애를 부르짖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전통적인 국제주의나 평화주의보다 에스페란토 사용이 훨씬 더 구체적인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3-10-26]에스페란토 박해의 역사… SNS를 통제하려는 이유와 다르지 않은



그러나 ‘평화주의자’였던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너무 순진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선 에스페란토는 자국 언어의 영향력 감소를 우려한 프랑스의 반대에 부딪힙니다. 무엇보다 나치와 구 소련의 박해를 받게 되는데요. 에스페란토를 ‘유대인의 언어’라며 적대시한 나치는 그렇다쳐도 구 소련은 왜 그랬을까요. 바로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스탈린 치하 구 소련의 비참한 실상을 서방세계에 알렸기 때문이지요. 따지고 보면 나치 역시 독일 실상을 고발하는데 앞장섰기 때문에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을 싫어했습니다.


독재권력자들은 늘 시민들이 민족, 지역, 종교, 언어를 뛰어넘어 서로 자유롭게 만나 대화하고 깨닫고 분노하고 각성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에스페란토가 달가울 리 없었지요. 에스페란토 지지자였던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예외적인 기적이나 석판 위에 하느님의 손으로 기록한 율법 등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들 상호 간의 행동과 발언을 통해 진실을 전달하면서 전파되는 것이다.” 언어를 배우는 참된 즐거움이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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