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29. 11:01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제가 신문과 책을 정독하는 습관을 들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였습니다. 매일 일간지를 광고면까지 구석구석 읽으며 생활한자도 익히게 됐지요. 매일 읽는 신문과 책을 보면서도 그때는 신문 읽는 습관이 저의 운명까지 바꾸게 해줄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죠. 삶의 방향을 바꾼 신문 읽기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대학 4학년 9월 말, 갑작스럽게 찾아온 결핵성 늑막염으로 한 달간 대학부속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졸업시험도 리포트로 대신 내고 졸업식에만 겨우 참석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에는 여성에게 대학의 졸업 이후 결혼과 취업의 길 밖에 없었죠. 그나마 취업이 되어도 결혼을 하면 직장을 그만 두는 풍조였습니다. 대학은 마쳤으나 병으로 종일 방안에 누워서 안정을 취하며, 결핵약을 한줌씩 세 번씩 먹어야 했죠. 결혼도 취업도 모두 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의사는 책도 많이 읽지 말고 누워서 안정을 취하라고 하더군요.
밖을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집 안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던 저는 마치 사육 당하는 동물 같은 처지인 제 자신을 비관해서 우울증까지 생길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9개월간 의사의 처방대로 방에만 있어야 했죠. 이때 유일하게 삶의 희망과 즐거움을 선물해주던 것이 매일 배달되는 조간신문이었습니다. 긴 시간 지루하다면 지루하고 길다 하면 긴 시간을 신문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 ‘평소에 쓰고 싶었던 소설을 써보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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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펜을 들었고 글 쓰는 방법은커녕 일기도 제대로 쓰지 않았던 제게 무모한 도전이었지요. 일단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신문에 있는 글도 베껴 써보기도 하고, 제 나름대로 바꾸어 써보기도 했죠. 아픔과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심란했던 정신을 다른 곳으로 집중해보려는 시도였습니다. 의외로 이런 노력은 제게 도움이 됐지요. 삶에 대한 즐거움도 생겼고 우울했던 마음도 긍정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지금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일을 만들어서 몰두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때 얻은 선물이랍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던 어느 날 신문의 광고면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단 두 줄뿐이었지만, 묘하게 시선이 계속 머물러 있었죠.
교사 구함 / 경기도
○○○-○○○○
전화를 해보니 경기도 평택 소재의 남자 중•고등학교였습니다. 수학, 물리 교사를 모집하고 있더군요. 비활동성 결핵을 앓고 있었지만, 그동안 집에서 요양을 했기 때문인지 건강도 많이 좋아졌던 터라 망설임 없이 학교에 전화를 했었답니다. 전화를 내려놓고 바로 이력서를 썼습니다. 평택이라는 도시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동안 집에만 있었기에 이력서를 들고 학교를 찾아갔죠. 생각했던 것보다 학교는 컸습니다. 한 울타리에 남자 중학교, 고등학교와 여자 중학교, 고등학교가 같이 있었으니까요.
1974년 당시에는 남자 고등학교에는 여교사가 전혀 없었고 남자 중학교에만 두 세 명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면접에서 교장선생님은 긍정적으로 평가를 해주시며 “중3의 수학을 가르칠 수 있으십니까?”하고 물어보셨는데, 다음 날 바로 “근무 할 수 있습니까?”하며 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그 후 남자 중학교 앞 하숙집을 얻어서 평택으로 갔습니다. 집에서 쉬다가 학생들을 가르치니 무조건 감사했고 교사라는 직업이 제게 큰 보람으로 다가왔죠. 퇴근 후에는 하숙집에서 전에 쓰던 소설을 계속 썼습니다. 원고지 1,200매의 완성된 소설을 우편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응모했죠. 제목은 설목(雪木)으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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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보내고 나니, 대학 2학년 때 40세에 등단한 박완서 선생님의 소식을 신문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더군요. 선생님의 자전적인 소설 <나목(裸木)>을 읽고 소설가의 꿈을 가졌던 그때로 돌아갔었답니다.
이후 11월 ‘여성동아’ 지면 합격자 발표를 통해서 본선에 올랐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미흡하다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제 소설은 본선 8편 중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무척 기뻤지요. 제 자신에게 고마웠고 그동안 읽었던 신문과 책이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한 번 더 고마웠습니다. 스스로에게 가능성을 선물 받아 기뻤죠.
다음 해에 저를 뽑았던 교장 선생님은 같은 재단의 여자 고등학교 교장으로 발령을 받아 자리를 옮기셨죠. 저도 그 학교로 데려가셨고요. 그해 인연이 닿아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중매로 이루어진 결혼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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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돌아보니 제가 ‘신문과 책을 정독하는 습관이 없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기약 없이 시간이 지나가던 오랜 투병 생활을 이겨냈을지도 장담할 수가 없더군요. 그때 신문과 책이 긍정적인 사람으로 저를 바꾸었기에 직업을 가질 수 있었고, 남편도 만나게 한 것이겠지요. 이후에도 남편이 출판사에 근무하는 동안 제가 책 대여점을 12년 동안 운영을 했습니다. 지금 남편은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서점을 하고 있으니 평생 신문과 책은 제게 있어서 오랜 친구이자 늘 함께 곁을 지켜준 선물이었답니다. 여러분은 그런 선물 갖고 계신가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신문과 책 읽기로 삶의 선물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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