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11. 13:44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딩동댕’, 4교시를 마치는 수업종이 울린다. 먼저 점심을 먹으려고 서로를 밀치면서 급식실로 뛰는 친구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그 틈바구니에 끼어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급식보다 굶주린 마음을 달래줄 양식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종이 쳐도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나. 그런 모습을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기던 친구들 몇몇이 어느덧 내 옆자리에 앉아 있다. 우리는 식사마저 잊어버리는 대단한 마법에 걸린 게 틀림없다. 추호의 망설임 없이 가방 속에서 꺼내드는 것, 바로 신문이다.
중학생 때부터 늘 하겠다고 큰소리쳤던 ‘신문 읽기’. 그러나 그것은 실천 없는 계획일 뿐이었다. 큰 맘 먹고 구독을 해도, 읽으려는 노력은 일주일을 채 넘기지 못했다. 좋다는 것은 알아도, 내 눈에 지루한 신문보다는, 생동감 넘치는 TV가 더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게 변화가 온 것은 지난 가을이었다. TV에서 G20을 한창 언급하던 그때, 수업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G20의 G가 무엇의 약자인지 아니?” 그 별것 아닌 질문의 대상은 바로 나였다. G와 관련된 단어를 떠올리다,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글로벌’을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런데 웬걸, 답은 ‘그룹’이었다.
친구들은 그것도 모르냐며 비웃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세계적 행사인데, 차라리 대답을 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창피함 가득했던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영석아, 너한테 창피를 주려한 건 아니야. 그런데 학교공부를 착실히 하는 것만큼 세상에 대한 관심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단다. 오늘부터 신문 읽는 습관을 가져보는 게 어떻겠니?” 그때부터였다. 선생님의 진심 어린 충고가 씨앗이 되어, 내 생활에 신문 읽기란 습관이 싹튼 것은.
우선 G20을 찾아보았다. TV로만 들어 머릿속을 뒤죽박죽하게 했던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신문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퍼즐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마구 흩어졌던 정보들이 머릿속에 G20이란 개념의 지도를 확실히 그려주었다.
지도를 그린 순간 시선은 자연히 더 넓은 세상으로 향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조금이라도 알거나 흥미로운 내용과 마주칠 때마다 계속 지도를 그렸다. 그때마다 신문은 나에게 관대했다.
생소한 용어에 각주를 달아 이해의 나침반을 제공해주는 친절함까지 보여주면서 말이다. 억지로 읽으려 할 땐 지루해 보이기만 하던 녀석이, 진심으로 원할 땐 이 세상 누구보다도 친근하고 흥미진진한 친구가 되어준 것이다.
기쁘게 지도를 그려나가면서 난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순간의 느낌만으로 날려버리기에는 아까운 좋은 글들이 눈에 띈 것이다. 고민을 하다가 오답노트를 만들 때처럼, 마음에 드는 칼럼 등을 오려 스크랩해두기로 했다. 그렇게 내 마음에 드는 기사들을 차곡차곡 노트에 모아두는 것을 새로운 습관으로 삼게 되었다.
이따금씩 자습을 하다 지치고 힘들 때 노트를 펼쳐보면 언제라도 마음의 갈증이 해소된다. 또 필자가 남긴 교훈을 되새기며 내 책임을 깨달을 때, 자습에 대한 집중력은 전보다 한층 더 높아지곤 한다. 새삼 신문이 가진 무한한 매력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처음엔 자습시간에 공부 안하고 뭐하냐던 친구들도 노트를 한번 빌려본 뒤에는 관심을 보이며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신문이 정말 도움이 돼?”, “질리지 않아?” 신문에 대해서는 동년배가 아닌 선배인 나의 대답은 매한가지다.
신문은 내가 간절히 원하는 만큼, 아낌없이 베풀어 준다는 것이다. 고고한 선비처럼 앉아 있는 글씨들을 읽는 데 드는 수고는 언뜻 보면 신문의 단점인 듯하다. 하지만 한번 말을 붙이면 쉴 새 없이, 이 세상 누구보다도 깊은 이야기를 해 주는 큰 스승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오늘도 나와 내 옆 친구들은 신문을 꺼내든다. 오늘도 우리를 위한 정보로 가득찬 진수성찬을 차려준 신문. 그 속에서 한없이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맛있는 지식을 마음껏 먹는 우리다!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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