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끝자락, 역사 속 5월을 만나다.

2014. 5. 28. 17:37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해마다 5월이 오면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모른 채 훌쩍 지나가곤 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챙겨야 하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언제나 ‘벌써?’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짜가 지나있죠. 게다가 따뜻한 봄의 기운과 푸른 여름의 기운을 모두 받고자 결혼하는 이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주중도 주말도 정신없이 지나가기 일쑤입니다.


그러다 보니 2014년의 5월도 어느새 이틀 남았군요. 돌아보면 바쁜 만큼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을 통해서 삶의 위안을 받고 용기를 내고 한 걸음 더 걸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이렇게 보내지만, 역사 속의 5월에는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모두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래서 5월이 찾아오면, 기쁘게도 때론 슬프게도 보내게 됩니다. 오늘은 그렇게 우리에게 기억에 많이 남아 있는 역사 속 5월을 만나러 떠날게요. 함께 가실 준비 되셨죠?




5월에는 여러 기념일이 많은 것처럼 역사적으로도 유독 특별한 날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깜짝 놀랄만한 사건도 있었죠. 많은 사건이 있지만, 그중에서 독특한 세 가지 사건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해 드릴 사건은 1907년 5월의 일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한글판 신문이 탄생했는데요. 바로 <대한매일신문>의 등장입니다. 이 신문은 1904년에 창간된 <대한매일신보>를 국한문 혼용판과 영문판 외에 새롭게 순수한 한글로만 신문을 발간한 것이죠. 당시에 일본의 사전 검열이 심각했으나, 유일하게 사전 검열을 받지 않았던 신문이었답니다. 발행인이 영국인 베델로 되어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 신문을 통해서 보도되는 내용과 논평이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것이라서 발행 부수가 1만 부를 넘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당시 중요한 화제였던 일본군과 싸우는 우리 의병에 대한 기사를 사전검열을 통해서 비하한 표현을 사용하도록 강요하였으나, 한결같이 사실 그대로 보도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커다란 용기와 위안을 주었답니다. 

 

이미지 출처_ 위키백과


두 번째 사건은 1996년 5월에 있었던 사건인데요. 북한 공군 소속이었던 조종사 이철수 대위가 미그 19 전투기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 망명한 것입니다. 그날 북한으로부터 미그 19기가 고속으로 남하하자 공군 전투기 F16, F4, F5 전투기 8대를 발진했죠. 날개를 상하로 흔드는 미그기의 망명 의사를 확인하고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수원 비행장으로 유도했습니다.


그때의 기록으로 북한 공군기가 망명한 것은 83년 이후 13년 만이라 했으니 시대적으로 사람들에게 가슴을 놀라게 했던 사건 중에 하나랍니다. 망명한 그는 짧은 기자회견을 통해서 “이북체제에서는 살 수가 없어 이남으로 넘어왔다.”고 망명 동기를 밝혔죠. 이후 그는 대한민국 소령으로 새롭게 출발해서 2010년에는 대령으로 진급했답니다.

 

이미지 출처_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한겨레 1996.05.24.


세 번째 사건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중대한 유적이 발굴되었던 것도 5월입니다. 2000년 5월 23일 미국 시카고 대학 동양학연구소가 시리아 동북부 텔 하무카르 지역에서 약 6,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도시 문명의 유적을 찾아냈죠. 그때까지 약 5,100~ 5,500년 전 현재 이라크 땅인,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수메르 지역에서 도시문명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이로써 메소포타미아 남부 수메르 지역에서 문명이 시작되어서 북쪽으로 전파되었다는 기존의 이론이 깨지고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지역에서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학설에 힘을 실어 주게 되었죠. 세계의 역사가 바뀌는 중요한 시기 역시 5월이었답니다.


 이미지 출처_ 위키백과




역사 속에는 기쁨도 있지만, 아픔과 슬픔도 함께 있습니다. 5월의 역사 속에도 우리가 지나쳐서는 안 될 아픔이 있었죠.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인데요. 그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이 내린 비상계엄령 철폐와 신군부 세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면서 전개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_ 네이버뉴스 라이브러리 한겨레 1998.08.15.


5월 18일 오전 10시, 하루 전 휴교령이 내려진 전남대학 정문 앞에 200여 명의 학생이 모여 있었죠. 계엄군이 물러가길 요구했던 학생들에게 계엄군은 무차별 곤봉세례를 가했습니다. 참여했던 학생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까지 마구잡이로 살상•폭행이 계속되자 광주 시민들은 두려움을 넘어 분노로 거리에 나와 시위에 참여하게 되죠. 점점 민주화운동은 번져나갔습니다. 격렬한 저항이 이어지자 계엄군이 선택한 것은 무차별적인 집단 발포와 무력으로 전남도청을 점령하는 것이었죠. 그로 인해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약 200여 명을 비롯해 부상자 약 4,300여 명을 낳고 잊을 수 없는 아픔을 역사에 남겼습니다.

 

이미지 출처_ 네이버 영화1   / 네이버 영화2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5월은 많은 사람이 욕심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 중 대서양에서 독일 잠수함 U-20에 의해서 루시타니아 호라는 민간여객선이 침몰하여 약 2천여 명이 사망했죠. 독일 잠수함으로부터 어뢰 공격을 받았고 큰 폭발이 있으면서 18분 만에 침몰했습니다.


당시 루시타니아 호 침몰 사건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문명국가도 일반인이 타고 있는 비무장 선박을 공격해서 침몰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이 사건으로 전쟁의 중립국을 지키던 미국이 참전하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이미지 출처_ 위키백과


바다에서만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힌덴부르크호 화재사건‘이죠. 힌덴부르크호는 수소를 이용해서 운행했던 비행선이었습니다. 1937년 대서양 횡단을 17차례나 하는 등 당시의 유럽에서 부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을 타볼 만큼 인기가 높은 비행선이었죠. 하지만 연료로 사용하는 수소는 화재에 취약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화재사고 당시 작은 스파크에 인해 폭발이 있었고 대형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이 참사가 유럽과 미국에 큰 충격으로 와 닿았고, 폭발 위험성이 큰 수소 비행선을 통해서 여객수송을 하는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_ 키백과




5월을 마치면서 돌아본 역사에는 행복도 슬픔도 함께 있었습니다. 해마다 우리는 5월이 되면 그 감정들을 모두 느끼면서 살죠. 아픔이 있었기에 다시는 그 아픔을 안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고, 기쁨과 행복이 있기에 그것을 이어가기 위해 힘쓰게 됩니다. 그래서 5월은 우리에게 “현재를 사는 것은 역사로 남아 다시 만나게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얼마큼의 시간이 흐르면 5월을 기억하는 역사가 새롭게 생기겠죠. 그때는 막 피어난 장미가 선보이는 싱그러움처럼 아름다운 일들이 가득하길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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