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유연한 개입이 필요하다.

2014. 6. 13. 11:29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이미지 출처_ flickr by Alejandro Castro




어느 시절보다 읽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반가운 일이죠. 따지고 보면 언제 우리 사회에 읽기 문화나 읽기 교육에 관심 있었나 싶습니다. 읽는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어 교육이나 사회의 관심영역에서 제외되었죠. 좋게 보아 당연하다고 여겨서고, 나쁘게 보아 필요 없다 여겨서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죠. 읽기능력 없이는 기업이 바라는 창의나 혁신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달았으니까요. 여기저기서 인문학이라는 말로 읽기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_ flickr by Nottingham Trent University 


분명히 만시지탄(晩時之歎)이죠. 세상이 변해서 비로소 강조하는 일이 아니라, 바탕힘이니 미리 다져놓았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미리 가르치고 알려주지 못한 채 서둘러 읽기 문화를 확산하려 하죠. 이러면 될까요? 새로운 세대를 둘러싼 문화 환경은 읽기 문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영상매체와 인터넷이 결합하고, 이를 손안의 미디어로 즐기는 시대에 읽기는 우선 관심의 대상이 아니죠. 귀찮고 번거로운 대상일 따름입니다. 일반인들은 과도한 업무와 우리나라 특유의 회식문화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아우성인데요. 그러면서 다른 문화매체에 대한 소비는 여전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언가를 읽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게 됐습니다. 큰일이죠. 이제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읽기 문화를 확산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_ flickr by J R 




문제의 초점을 일반인들에게 제한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저녁이 있는 삶’입니다. 한 야당인사가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내건 표어이기도 하죠. 이를 빌어 말하면, ‘일하는 시간을 줄이지 않고서는 읽기 문화가 확산할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견에 저는 일단 동의합니다. 절대 시간이 부족하면 읽는 시간이 없을 수밖에 없죠. 대체로 6시에 일을 마무리하면 이런저런 일로 7시경 회사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8시에서 8시 반, 씻고 밥 먹고 9시 뉴스 보면 10시가 되죠. 다음날 일찍 일어나려면 12시에는 자야 하니, 남은 시간은 두 시간밖에 없습니다. 이때 가사를 돕거나 육아를 분담하면 책 읽을 시간은 줄죠. 더욱이 야근이라도 하면, 아예 책 읽을 시간은 없는 셈입니다.

 

이미지 출처_ flickr by rachel a. k. 


설혹 ‘저녁 있는 삶’을 누리더라도 책 읽을 짬을 내기는 어렵습니다. 의지가 있다면 주말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러나 누가 주말에 집에 있으면서 또는 가까운 곳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을까 싶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문화 활동이나 동료와 즐기는 레저 즐기기에도 빠듯한 것이 현실이니까요. 이제 남는 것은 출•퇴근 시간밖에 없습니다. 일반인들이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서 가정을 꾸리기는 어렵죠. 한 두 시간 내의 인근 도시에 살기 십상입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출•퇴근 시간에 짬을 내어 책을 읽어야 하는 법이죠.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은 아예 책을 읽을 수 없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졸거나 스마트 폰하고 놀기 급급하니까요. 짬이 나면 책을 읽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이미지 출처_ 위키백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책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공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읽어야 하는 이유를 일반인이 수용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하죠. 회사에서 책을 읽도록 제도적으로 후원하고, 공공도서관이 저녁이나 주말에 강의를 개설해야 합니다. 회사나 공공도서관에서 이런 것들을 하고 있다면 그 정도에 만족할 일이 아니라, 더욱 늘려야 합니다. 그래서 읽고자 하는 의지를 북돋우고, 읽는 방법을 가르쳐 주며, 무엇을 읽을지 알려주고, 읽고 난 다음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해주어야 하죠. 그냥 놔두어도 읽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배려하고 지원해야 비로소 왜 읽기 문화가 중요한 가치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만큼 중요해지면 자신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는 짬을 쪼개 읽기를 하려고 노력하겠죠.

 

이미지 출처_ pixabay by tpsd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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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읽기 방임주의에 반대합니다. 그럴듯하고 좋아 보이지만, 위험한 발상이랍니다. 읽기는 제도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재미있고 즐겁고 가치 있는 행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다양한 장치를 동원해 끼어들어야 하죠. 정치영역에서만 규제를 푸는 일이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문화에도 세련되고 유연한 개입은 필요한 법이죠. 더 늦기 전에 지혜를 모아보면 어떨까요?


이권우 | 도서평론가. 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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